하이큐 십이국기 AU : 어느 날, 바람이 바뀌고
기린 카게야마와 차주후 오이카와, 그리고 그들의 왕인 그녀의 이야기.
진짜 느림 주의 / 설정파괴 및 캐붕 주의 / 본편에 안 나오는 인물 주의
"비공, 또 차주후 막사에 가셔요?"
날이 밝자마자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채비를 서두르는 검은 기린에게 세이카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네!"
"안 돼요! 오늘 오전에는 진향을 나오셔야… 비공!"
"…점심때까지는 돌아올 테니까!"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쌩하니 줄행랑을 놓은 검은 머리채가 기둥 사이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샛길을 골라 승산객들의 마을 쪽으로 향하는 소년의 얼굴이 발그레했다. 세이카나 여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가지 않으면 이와이즈미 장군에게 토우세츠(糖雪)를 길들이는 방법을 배울 수가 없으니까. 그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오이카와 님에게는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왜 제가 꼬마ㅉ… 비공에게 추우를 길들이는 법을 가르쳐야 하죠?"
애초에 기린이 기승을 길들여서 어쩌자는 겁니까. 공 자체가 세상에서 제일 빠른 기승이잖아요. 열 번 다시 생각해 전변하기가 귀찮아서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사령은 안 쓰고 궤짝에 넣어두실 건가요?
추우가 다니는 길목과 둥지를 여러 곳 알고 있다는 것과, 이것을 가르쳐주는 대신 추우를 길들이는 법을 알려 달라는 비국 기린의 말에 두 사람은 실례라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한없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제 나라의 기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황해의 오산을 놀이터삼아 다니며 요마를 사령으로 삼는 기린이라고 해도 주로 사기가 강한 밤에 활동하는 요수, 그 중에서도 흔적을 숨기는 습성이 있어 자취 찾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추우의 이동경로와 둥지까지 꿰고 있다니. 사실일까?
불신의 눈길을 받은 밤하늘색 기린은 금강산의 가장 험한 골짜기 한 곳을 가리키며 저쪽에 가면 흰 털에 은색 무늬를 가진 추우가 있으며, 해시 즈음에 둥지에서 내려온다고 말했다. …인의의 현신인 기린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그동안 추우 사냥을 위해 황해를 오간 세월이 약간 아까워졌다.
"대체 그런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것도 기린의 능력입니까? 약간 억울해 보이는 오이카와의 질문에 작은 기린은 동그란 눈을 두어번 깜박인 후 "스가와라 님께 배웠습니다!" 라고 답했다.
'스가와라 님?'
'대 타이호.'
'아….'
'그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왠지 굉장히 뿌듯해 보이는 자국 기린의 표정에 두 사람은 더는 이에 대해 묻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마쳤다. 대국 재보의 비밀한 취미 덕분에 비국의 주후와 금군 장군, 비국의 새로운 기린으로 구성된 추우 원정대는 마침내 눈송이처럼 하얀 바탕에 은빛 무늬가 아름다운 추우 한 마리를 사로잡는 것에 성공했다.
"어때, 이와쨩! 내 완벽한 신호!"
"…잘 했다!"
"조금 더 섬세하게 칭찬해 줄 수는 없는 거야?"
이와이즈미는 만약의 사태를 위해 조금 떨어진 하늘 위에서 사쿠후우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기린을 올려다보았다. 알맞은 위치에 정확한 신호로 그물을 던진 덕분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요수의 흰 터럭에는 한 방울의 피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와도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내자 소리도 없이 날아내려온 기린이 조심스럽게 새하얀 짐승의 앞에 섰다. 한참 기세좋게 날뛰는 녀석을 두 사람이 이리저리로 끌어대며 힘을 빼 놓아서인지 새하얀 호랑이 모양의 요수는 얌전히 그물 안에서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기린은 깨어진 유리알같이 빛나는 추우의 흑록색 눈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공께서 이 녀석의 이름을 지어 주시겠습니까."
이와이즈미의 말에 기린이 눈을 들었다. 그래도 돼요? 라고 묻는 듯한 밤하늘빛 눈동자가 추우의 것 못지 않게 빛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어떠냐'는 듯한 눈으로 오이카와 쪽을 바라보았고 오이카와는 흥,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린은 이제 완전히 기가 죽어서 얌전히 이쪽을 바라보는 요수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토우세츠(糖雪), 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좋은 이름이군요. 토우세츠…."
"…당밀과 눈이라니. 얼음과자입니까?"
이와이즈미가 시원하게 웃으며 얄미운 소리를 뱉는 오이카와의 옆구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금군 장군의 정권을 맞은 오이카와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펄펄 뛰거나 말거나 이와이즈미는 토우세츠에게 굴레와 몸줄을 씌우고 재갈을 물린 뒤 고삐를 메어 자신의 기수와 함께 끌고 돌아왔다.
요수를 사로잡은 뒤부터 안정적으로 사람을 태우기까지는 반드시 일정 기간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고, 기수를 얼마나 잘 다루어 길들이는가로 장수의 능력을 가늠하기도 한다. 비국은 바람과 질 좋은 기수가 많은 나라로, 자연히 훌륭한 조련기술을 가진 자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시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바람의 흐름을 읽어 내어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부리는 비국 출신의 기사들은 각 나라의 왕사나 주청에 천거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비국의 금군 장군이자 왕의 주위를 책임지는 사인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비국에서 손꼽히는 기사이기도 했다.
차주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는 천막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간 소년이 추우의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와이즈미 님, 오이카와 님!"
"밤새 편안하셨습니까, 비공."
"…여선들에게 제대로 말씀하신 후에 오시라고 했을 텐데요?"
비공이 매번 이렇게 멋대로 뛰쳐나오시니 보도궁의 여선들이 저를 천하의 불한당이나 된 것처럼 대하지 않습니까! 억울함이 쌓인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어깨를 살짝 움츠리던 기린이 저도 할말이 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행선지와 시간은 말하고 왔습니다! 점심 전까지 돌아가겠다고…!"
오전 중에 있을 진향은 어쩌고 오신 겁니까…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한 오이카와의 입에서 또다시 긴 잔소리가 쏟아지기 전에 이와이즈미가 재빨리 기린의 손에 작은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건넸다.
"아시겠지만 추우는 옥을, 그 중에서도 마노를 좋아합니다. 포상으로도 고기보다는 마노가 더 효과가 좋지요."
하나의 명령을 가르칠 때마다 보여주고 맡게 해서, '이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즐거운 일들이 계속된다'는 암시를 거는 겁니다.
네! 기운찬 대답과 함께 검은 기린이 주머니 속에서 마노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토우세츠가 개다래나무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하며 가르릉, 하고 목을 울렸다. 완전히 흥분해버린 기린이 한 걸음씩 다가서며 마노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추우의 흑록색 눈동자가 기린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다. 다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려던 기린의 뒷덜미가 단단한 손길에 붙들렸다.
"자~ 기린쨩 님, 거기까지."
돌아보는 시선에 오이카와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놓았다.
"거기서 더 가까이 가시면 피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토우세츠가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자주, 많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답니다."
아주 조금씩, 신중하게. 저 녀석은 물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잠시 말을 멈춘 오이카와가 동그래진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기린을 내려다보며 슬쩍 미소지었다.
"불필요한 의심을 살 수도 있거든요."
그런 의미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요. 이제 그만 보도궁으로 돌아가세요. 시무룩해진 기린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이카와가 웃는 얼굴 그대로 비국의 기린을 염소 몰듯이 몰아 보도궁 앞까지 모셨다. 더 오래 추우와 함께하지 못해서인지 잔뜩 볼이 부은 기린을 모시고 온 이가 '그'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것에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린 여선들에게 보란듯이, 오이카와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오전의 진향을 마치시거든 토우세츠를 만나러 오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거짓말일지도 모르지요."
거짓말…! 울상이 되기 직전인 기린을 향해 오이카와가 웃어보였다.
"점심을 드신 후, 미시 이후에 뵙겠습니다. 그 이전에 오시면… 도망칠 겁니다."
굳게 결의를 다지는 밤하늘색 기린의 앞에서 예를 다한 평복을 마친 두 사람이 보도궁을 등지고 자신들의 천막으로 향하는 장면을 그 날 아침 일찍부터 뜰에 모여 기린의 등장과 진향의 순서를 기다리던 수많은 승산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곧 승산객 사이에서 발없는 말들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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