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 토비오×야치 히토카



두 번째 주제 : 짝사랑


  


“야, 야치, 히토카 입니다!”


작다. 살면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게야마보다 작았지만 새로운 매니저는 심각하게 작았다. 카게야마는 바들바들 떨며 시미즈 선배의 뒤에서 나와 겨우겨우 인사를 마친 새 매니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느낌. 찬찬히 기억을 역재생하던 카게야마가 딱, 하고 재생을 멈췄다.


 ‘동물 코너의 햄스터.’


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완전히 무시당했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갑자기 심각해진 카게야마의 표정에 히나타가 기겁을 하며 카게야마의 등짝을 두드렸다.


 “야, 카게야마! 그 표정 그만 둬! 야치가 무서워하잖아!”

 “뭐라고? 히나타 멍청이가!”


 그만 습관대로 히나타의 멱살을 잡아 올린 카게야마는 눈앞의 작은 새 매니저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싸...싸움은 안 돼....히나타, 카,게야마...사이 좋게....지내야지...?” 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깔끔하게 손을 놓았다. 공중에 붕 떠서 바둥거리던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손에서 해방되자마자 착, 하고 가볍게 착지해서 마치 체조선수라도 된 것처럼 야치 쪽을 향해 양 팔을 벌려 보였다. 아무 이상 없음을 알리는 유서 깊은 제스쳐에 그제서야 야치가 가슴 앞에 손을 대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카게야마는 그 모습에 덩달아 제 심장께에 손을 얹었다.


“저, 카게야마 군?”

 “...???”


 이제 정식으로 카라스노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의 매니저로 입부하게 된 야치가 방금 로드워크를 마치고 체육관으로 돌아온 카게야마를 향해 다가왔다. 조금씩 가까워 질만 하면 카게야마가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아무리 다가가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에 야치가 제자리에 멈춰서자, 그제서야 카게야마도 그 자리에 멈춰섰다. 카게야마의 걸음으로는 네 걸음, 야치의 걸음으로는 일곱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심각한 표정이 된 야치가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전부터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만...”

 “...아, ...응.”

 “내가 너무... 카게야마군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고 있는 걸까?”


 혹시 불편하거나 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축 처진 야치의 말에 카게야마가 물음표를 띄웠다.

  

“퍼스....뭐?”

 “개인적 공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친밀도에 따라 불쾌감을 느끼는 거리가 다르다는 말.”


츠키시마가 슬그머니 다가와 카게야마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물론 닿기도 전에 둘 다 진저리를 치며 떨어졌다.


“...뭐 하는 거야!”

 “왕님은 머리가 나쁘니까, 예를 들어 줘야 할 것 같아서.”


 네가 슬금슬금 도망치니까 묻는 거잖아, 바보 왕님. 여유롭게 웃으며 멀어져가는 츠키시마를 향해 으르릉거리던 카게야마가 축 쳐져서는 가만히 손을 모으고 대답을 기다리는 야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불쾌감이라고?


“그런 건, 아니야.”


 일단 부정을 던져 놓은 카게야마가 멍하니 생각했다. 불쾌감이라기보다는....


 “조금, 무서워져서.”

 “.....무서워?”


 카게야마군이? 나를? 왜? 물음표 투성이가 된 야치를 바라보며 카게야마가 말을 이었다.


 “...작으니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어. 올려다보면, 아플 거고...”

 “그러니까... 카게야마 군은 키가 크니까, 가까이에서 대화하게 되면 많이 올려다보아야 할 거고, 그러면 내가 목이 아플 거니까?”


 그래서 일부러 떨어진 거라는...걸까? 이거 맞아? 영 재생이 시원치 않은 카게야마의 말을 야치가 솜씨 좋게 이어 보였다. 카게야마의 고개가 작게 위 아래로 흔들렸다.


 걱정해준 거였구나! .......고마워!


노랗게 피어나는 듯한 웃음이었다. 카게야마는 그 미소에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무엇보다도 네가 무서워할 것이 무서웠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얼핏 크리스마스 트리를 떠올리게 하는 배색의 공이 카게야마에게로 날아갔다. 조용히 눈빛으로 공의 궤적을 따르던 카게야마가 가만히 손을 들어 토스를 준비했다. 전달이 끝나기 전까지는 도무지 공이 어디로 토스될지 알 수 없을 만큼 깨끗한 자세라는 평을 듣는 카게야마의 셋업을 야치는 사양 않고 마음껏 바라보았다. 지금은 바라보아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을 페트병에 떨어뜨려 맞춘다는 일 이외에는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집중하는 카게야마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서 학급의 친구들이 곧잘 화제에 올리는 ‘쿨한 매력을 가진 3반의 카게야마 군’의 얼굴에 가까워져 있지만,


“...좋았어!!”


유려한 자세로 날려 보낸 토스가 의도한 대로 페트병 위로 떨어져 내리며 쓰러지는 소리를 낼 때, 카게야마는 팔을 휘두르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입가에 살짝 미소를 담는다. 히토카는 이때의 카게야마를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다음, 부탁드립니다.”

 “...네, 넷!”


 얌전히 공을 기다리는 카게야마에게로 야치가 다시 공을 올려 주었다. 사실은 한참 전부터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기세가 오른 카게야마를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 보였다.


카게야마의 걸음으로는 네 걸음, 야치의 걸음으로는 일곱 걸음. 아직도 줄어들지 않은 채인 거리.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든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또 말하지 못할 말들이 쌓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