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HL전력

 첫 번째 주제 : 첫만남

 


  사와무라 다이치×시미즈 키요코


 사랑없음 주의 / 선배의 선배들 날조 주의 / 여튼 주의...


 



  

“카라스노가 더 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


송충이 눈썹을 움찔거리는 카라스노 고교 남자 배구부 주장, 타시로 히데미를 향해 사와무라 다이치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제넘은 소리라고 하실 지도 모르지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돕고 싶습니다. 부디, 알려주십시오! 라며 고개를 깊숙이 숙여 오는 신입 부원을 바라보는 타시로의 표정에서 당황이 빠져나가고 옅은 미소가 자리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3학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 전부터 1학년들은 자율적으로 나머지 연습을 시작했다. 1학년들이 입부하기 전에는 쿠로카와랑 타시로, 그리고 그날그날 내키는 사람 몇 명만이 남아서 연습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와무라가,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즈마네와 스가와라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함께 남아 연습을 하겠다며 눈을 빛냈다. 사와무라는 어떻게든 선배들의 주위를 얼쩡거리며 팔이 엉망이 되도록 리시브 연습을 했고, 아즈마네는 평소에는 그렇게 쿠로카와를 무서워하면서도 서브와 스파이크의 자율 연습을 진행할 때에만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녀석들, 요즘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한단 말이지......’


운이 좋지 않았다, 고 생각했다. 마침 카라스노의 이름이 옛 전설 비슷한 무언가가 되었을 무렵. 오렌지 코트를 누비는 검은 까마귀의 아름다움에 끌려 카라스노를 선택했겠지만, 우카이 감독님이 요양 차 떠나버린 후 몇 년째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한 남자 배구부의 입지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 증거로, 올해의 신입 부원은 저 세 명이 전부다. 솔직히 ‘들어와 줘서 고마워!’ 라고 감사해야 할 정도인데. 너희에게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가 있겠어. 다만...


 “매니저가, 있었으면 좋겠어.”

 “...매니저, 요?”


응, 매니저. 이왕이면 여자 매니저로. 미인이면 더 좋고. 얼빠진 듯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후배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타시로가 싱긋 웃어보였다. 어때. 사와무라. 모집해 줄 수 있겠어? 아하하... 주장의 웃는 얼굴에 끌려 멍하니 영혼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사와무라의 시야에 야차의 형상이 되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선배들의 얼굴이 들어 왔다.


 “히데미 멍청아! 모처럼 후배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너는!”

 “왜! 뭐! 너희도 있으면 좋잖아! 매니저!”

 “...그렇긴 하지만, 있겠냐! 그것도 미인 매니저가!”


 다른 운동부에도 여자 매니저 같은 건 없어! 그런 건 소년 만화에나 있는 거라고! 투닥거리기 시작한 3학년들을 본체만체하며 나머지 부원들과 함께 웜업을 마친 쿠로카와가 다가왔다.


 “타시로 선배. 런닝 시작할 시간입니다.”

 “아, 미안. 쿠로카와.”


자, 자! 다들 모여! 런닝 시작한다! 언제 싸웠냐는 듯 웃으며 러닝화로 갈아 신는 소년들 사이에서 사와무라만이 무언가 고민 가득한 얼굴로 무언가를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곧 시작된 전력 대시에 숨을 빼앗겨 더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사와무라, 그거 뭐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황급히 뒤로 감추었지만 스가와라는 끈질기게 다이치의 뒤쪽을 공략했다. 아무것도, 아니면, 좀 보여, 줘도 괜찮잖아! 약간의 실랑이 끝에 중간이 조금 구겨진 종이가 책상 위에 얌전히 놓였다.


 “카라스노 고교 남자 배구부 부원 및 매니저 대...모집?”

 “아....응.”

 “글씨 시원시원하네! 유도부 부원 모집인줄 알았어!”

 “하하하...”


음, 그래. 세 명은 너무 적긴 하지... 3학년 선배들이 은퇴해 버리면 당장 시합가능 인원수가 간당간당해지고 말이야...리베로도.... 무언가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 스가와라의 뒤로 그림자가 지더니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뭐야 뭐야, 아... 부원 모집 포스터?”

 “아즈마네, 안녕.”

 “안녕- 사와무라, 혹시 고문 교과서 좀 빌릴 수 있을까?”

 “여기. 우리는 마지막 시간이니까, 그 전에 돌려줘.”


교과서를 받아 든 아사히가 물끄러미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1학년 세 명의 시선이 한 곳에 모여들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너무 삭막하네.”

 “...그림이라도 그려 볼까?”

 “그릴 수 있겠어?”

 “흉내라면 낼 수 있을지도.”

 “글씨도 이렇게 박력이 넘칠 필요는 없을 것...같은데...”


왠지 무서워... 아사히의 말에 두 사람이 홱 고개를 돌렸다. 무섭다고? 글씨가?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아사히가 큰 몸을 구기며 찌그러들자 어이가 없다는 듯 다이치와 스가와라의 시선이 잠시 교차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실소는 곧 폭소로 번졌다.


  “...하다하다 못 해 이제 글씨도 무섭냐?”

 “이 녀석은 안 돼, 저번에 쿠로카와 선배가 그냥 쳐다봤을 뿐인데 마시던 음료 뿜었다니까?”

 “그, 그치만 눈빛이 진짜 무서웠단 말이야...”

 “원래 그런 눈빛인 사람이야...”

 “뭐가 그치만, 이야! 덩치 값 좀 해라!”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세 사람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고 그 날 만들어진 몇 개의 종이는 복사되어 학생회의 게시 승인 도장이 찍힌 다음, 1학년 교실 뒤편 알림판에 팔랑팔랑 붙었다.


***


다음 날, 사와무라는 옆반 뒷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우리 반에서는 시미즈가 아직 부활동이 없대.’

  

진학반 뿐 아니라 다른 클래스의 녀석들에게서 귀가부인 사람들의 명단을 받았다. 그 중에서 아즈마네와 같은 반인 여학생을 처음으로 권유해 보기로 한 것이다. 스가와라는 1반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을 터였다.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

 

 “사와무라 군?”

 “우와악!”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다이치는 펄쩍 뛸 듯이 놀랐다. 하지만 겨우 가슴을 쓸어내려 진정시킨 후에 고개를 돌리자 양갈래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쓴, 등장만으로 주위가 밝아지는 것 같은 미인이 빤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이번에는 그만 식은땀이 났다. 더듬더듬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다이치가 마침내 결심한 듯 똑바로 키요코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키요코 쪽에서 당황한 듯 몸을 움츠렸다.


 “그... 시미즈 키요코, 님?”

‘...님?’ 키요코가 그 해괴한 호칭에 물음표를 띄우며 조용히 대답했다.

 “...무슨 용무라도?”

 “아...저, 그게...그러니까.”


무언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며 뒷머리를 긁어대던 다이치가 말도 없이 대뜸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 배구부 부원, 아, 부원과 매니저 모집 포스터인데!”


반사적으로 손을 내민 키요코의 손바닥 위에 A4용지가 내려앉았다. 지나치게 기백이 담긴 글씨와 용케 사람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그림의 조화가 기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전단지였다.


“...배구부?”

 “응! 남자 배구부야.”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다이치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왔다. 키요코는 잠시 말없이 광고지를 들여다보았다. 앞에 제가 있는 것을 잊은 게 아닌가 싶어 키요코를 부르려던 다이치가 손을 흔들어 보려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키요코가 고개를 들었다.


 “말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어....어?”

 “나, 스포츠는 했었지만. ...배구도, 매니저도 전혀 경험은 없어.”

 “괜찮아!”


 상쾌하기까지 한 즉답에 키요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그 움직임에 다이치가 말을 이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잘 알 수는 없잖아? 처음이니까.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 확고한 의지라거나 숭고한 동기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아. 어쩌다 보니, 돌아가는 형편에 따르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어! 같은 것이라도 좋으니까.


 “네 안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가입부라도 좋으니까, ...구경하러 와 주었으면 좋겠어.”


 그럼, 기다릴 테니까! 하고 다이치는 곧 돌아갔다. 매니저 권유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자기 자리에 돌아오고 나서야 좋을 대로 시미즈에게 말만 늘어놓았지 제대로 자기 소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카라스노 고교 남자 배구부에는 이후 수년간 미야기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될 전설의 미인 매니저가 입부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의 여름이 지난 어느 날.


“그러고 보면, 얏쨩도 입부하기 전에 꽤 망설였었지.”

“맞아, 맞아. 어떻게 우리 쪽에 입부하려고 마음먹었어? 아, 역시 히나타 때문인가!”

“마을사람 B도 싸울 수 있어요오오오오!!! 였었지?”


아하하하하하, 선배들... 왜 그러세요, 갑자기... 쑥쓰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던 야치가 빙긋이 웃어보였다. 사실, 키요코 선배가.

 

[뭔가를 시작하는 데에, “확고한 의지”라든가 “숭고한 동기”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아. 돌아가는 형편에 따라 시작한 게, 조금씩 중요한 것이 되어있다거나 하거든.]


그러면서,


“시작에 필요한 건, 약간의 호기심 정도야.”

[시작에 필요한 건, 약간의 호기심 정도야.]


 “...사와무라 선배?”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키요코가 해 주었던 말을 재생하던 야치의 눈이 동그래졌다. 깜짝 놀라 눈만 깜박이는 후배를 바라보며, 다이치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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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요코 입부 이후로 다이치는 선배들의 영웅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