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와라 코우시 × 야치 히토카
세 번째 주제 : 크리스마스, 그리고 마지막
※ DVD 6권의 오디오 드라마<카라스노 고등학교 배구부 크리스마스>의 내용이 일부 들어있습니다.
카라스노 남자 배구부의 크리스마스 파티. 부원들 간의 친목을 다진다는 명목으로 매년 12월 25일, 연습이 끝난 후의 부실에 모여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나름대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써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흐뭇한 전통에는 한 가지 즐거운 여흥이 덧붙어 있는데-
“아사히, 이 책! 이거 들어 봐!”
“...올해도...하는 건가. 결국...”
“아사히 선배, 머리는 풀어야 돼요!”
“어어, 오...옷은 벗기지 마! 시미즈랑 얏짱도 있잖아...!”
카라스노의 파워, 에이스 스파이커 아즈마네 아사히가 입부한 이래 시작된 ‘의식’ 이었다. 의식...이요? 눈이 동그래진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작은 매니저에게 스가와라가 음료수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처음엔, 우리도 선배들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에 이걸 안 하고 넘어가기엔 아쉬워져서...”
그리고, 의식 때의 아사히에게서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생겨서 말이야... 거기에 대고 ‘내년에야말로 전국대회에!!’ 라고 기원하고 나면, 뭔가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니까! 세간에서 상큼하다고 평가받는 미소였지만 야치의 눈에는 왠지 장난기가 가득 들어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냥, 아즈마네 선배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고요...?
야치가 돌아본 곳에는 수상쩍은 흰 천으로 몸을 감싼 아사히가 쩔쩔 매며 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험악하기 그지없다고 생각될 아사히의 얼굴에서 야치는 당혹과 곤란함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그야 여름부터 계절이 얼굴을 세 번 바꾸는 지금까지 함께 지내며 아즈마네 선배의 외면에 가려진 다정함이나 강함, 부드러운 배려 등을 잔뜩 받으며 지내 왔으니까.
‘누군가, 말려야 하는 것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이치나 니시노야, 타나카는 아사히를 장식하는 데에 바빴고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그 옆에서 연신 “굉장해!!!!!!!” “아즈마네 선배!!! 멋지십니다!!!!!” 라며 감상하기에 바빴다. 야마구치마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을 목도한 야치는 자연히 그 근처에 있을 츠키시마의 모습을 찾았다.
‘츠키시마 군!’
말려야 하지 않을까? 라는 간절한 의문이 담긴 야치의 시선을 츠키시마는 고갯짓 하나로 털어버렸다.
‘귀찮은 일은 사양할게.’
부실 한쪽 벽에 몸을 기댄 채 흥미 없다는 듯 헤드폰을 뒤집어 쓴 츠키시마에게서 시선을 돌린 야치가 발견한 사람은...
“스가와라 선배!”
“응? 얏쨩. 왜 그래?”
눈이 흔들리고 있는데...?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아사히와 스가와라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한 야치를 보며 스가와라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엔노시타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이 부실 안의 열기를 더했다. 선반에 장식해 두었던 꼬마전구까지 동원되어 점점 근원을 알 수 없는 토템이 되어 가는 아사히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야치가 거의 울기 직전이 되어서야 스가와라가 입을 열었다.
“얏쨩- 있지, 아사히는 저렇게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아마도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폭, 가볍게 야치의 머리에 손을 올린 스가와라가 착하지, 착하지- 하는 템포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안심이 되는 마음에 야치가 날뛰는 심장 앞에 손을 대고는 후,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리가 카라스노 배구부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마지막 크리스마스니까, 아사히도 아사히 나름대로 각오를 한 거야.”
어제는 우리랑 위엄 넘치게 서 있는 방법과 표정에 대해서도 얘기했다니까. 우리 에이스님은 정말 바보 같을 정도로 성실하고 착해 빠져서, ......저기 좀 봐.
스가와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빛나는 전구들을 머리에 쓰고 흰 천으로 몸을 두른 채 한 손에는 책을 든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연신 절을 하거나 비는 포즈를 취하며 “카라스노가 봄고 우승을 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외치기 시작한 후배들을 보는 아사히의 눈길이 한결 따스해졌다. 평소의 사람 좋은 미소로 돌아온 아사히는 정말로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 줄 것만 같았다. 이제야 여유를 찾은 듯 주위를 둘러보던 아사히가 야치와 눈이 마주치고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게, 선배들과 마지막...’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가면 팬클럽에게 살해당할 것 같았지만, 누구보다도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키요코 선배.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그 뒷모습 하나로 모두를 지켜온 주장 사와무라 선배. 겉모습과는 달리 항상 야치를 걱정하고 살뜰히 살펴 주었던 아사히 선배. 그리고.
야치는 제 옆에서 즐거운 듯이 웃고 있는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한 순간도 다정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스가와라 선배.
‘마지막이라니, 그런...!’
즐거운 날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울컥, 하는 슬픔을 입을 꾹 다물어 삼켰지만 멋대로 새어나온 눈물이 속눈썹에 매달려 고이기 시작했다. 저렇게 즐거워 하시는데. 울면 안 돼...!
순간, 아사히를 밝게 비추던 작은 전구들의 불이 꺼지고-
“에? 정전? 이런 타이밍에?”
“우와, 어두워!”
“히나타 멍청아! 발 밟지 마! 뛰지 마!”
“왕님 시끄러워.”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묻히지 않는, 작은 속삭임이 들려 왔다.
[...울지 마, 얏쨩.]
그리고 가만가만 손을 짚어 아직 흐르지 못한 눈물을 닦아낸 손가락이 잠시 야치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가 떠나가는 것과 동시에 작은 전구들에 불이 들어왔다. 그새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이 빛에 적응하는 동안, 야치는 귀 끝까지 발개진 얼굴을 어쩌지도 못하고 손으로 덮어버렸다.
[다음 크리스마스까지도, 계속 함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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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선배들이 유급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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