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번째 주제 : 또 다른 세계_1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드림
손가락 두 개를 맞부딪힐 때 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새어나왔다. 방금 전까지 옴짝달싹 못하게 그녀를 잡아채고 있던 팔이 팬터마임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풀렸다. 재빨리 Y의 품에서 빠져나온 그녀가 뒤를 돌아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괴한의 얼굴은 온통 붉고, 온 몸의 근육들이 긴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금방이라도 다시 그녀를 붙잡을 것만 같아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주저앉으려는 그녀를 누군가가 뒤에서 단단히 붙들었다. 남자가 찢어놓은 윗옷 사이로 드러난 맨 어깨에 닿는 미적지근한 온도가 소름끼쳤다.
"...싫어!!"
발작적으로 닿아온 손을 떼어내려는 그녀의 어깨에 옷가지인 것 같은 천이 덮이고, 그대로 가볍게 끌어당겨졌다. 사락사락하는 결이 좋아서 장난삼아 쓰다듬다가 끝내 헝클어뜨리곤 했던 익숙한 색의 머리카락이 시야에 잡히는 순간 그녀의 반항이 멎었다. 평소 쾌활하다 못해 개구지다는 평을 듣는 오이카와에게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에 내려앉았다.
"괜찮아. ...이제 괜찮으니까."
“...토오루쨩?”
“응.”
많이 놀랐지? 달래는 듯 토닥거리는 손에 그녀는 완벽하게 안심하고 정신을 놓았다. 오이카와는 힘을 잃고 늘어진 그녀를 고쳐 안아 제 어깨에 기대게 하고는 살짝 웃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가 아직까지도 죄여있는 채인 Y를 향해서도 씨익 웃어보였다. 아직 어린아이의 태가 남아 있는 해맑은 웃음의 끝에 진홍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불꽃을 두른 오이카와가 Y를 향해 말했다.
“폐품 주제에 내 가이드를...”
딱, 경쾌한 소리가 울릴 때 마다 오이카와에게 제압당한 Y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목의 핏줄이 불거지도록 입을 쩍 벌려대는 것이 퍽 괴로운 모양이었지만, 조용한 아오바 구의 주택가 골목에는 오이카와가 일정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센티넬의 그릇을 재는 것이 파장과 이능이라면, 가이드의 그릇을 재는 것은 동조율과 안정도이다. 동조율은 가이드와 센티넬의 상성을 나타낸다. 동조율이 높은 페어일수록 센티넬의 이능은 증폭된다. 현재 등록된 페어 중 가장 동조율이 높은 페어로 알려진 예는 독일의 쌍둥이 형제로, 95.2%의 동조율을 보였다고 한다. 카게야마와 그녀의 페어가 정식 등록될 경우 세계 학계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안정도의 경우는 센티넬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흥분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통칭 리바운드-을 가라앉히는 능력에 대한 척도이다. 현행 이형능력체 관련 법령에 따르면 미성년 센티넬과 가이드 페어는 둘 중에서 나이가 어린 쪽이 성년이 될 때까지 과도한 신체적 접촉을 통한 리바운드 안정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각인 절차도 성년 이후에 진행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어린 센티넬과 가이드들에게 조금 더 적합한 페어를 매칭해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각인 이후에는 죽음이 갈라놓기 전까지는 떨어뜨릴 수 없으니까. 어쨌든 성년 이전의 임시 페어는 언제든지 센터에 의해 변경될 수 있는 것이다.
“쿠니 아저씨. 지금 이 설명, 오이카와에게는 말 못했죠?”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에 야마모토 쿠니히로가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의 가이드인 그녀는 얼핏 얌전하고 기가 약해 보였으나, 그 오이카와 토오루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손에 넣고 휘두르는 권력자였다. 센터 내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소녀가 알겠다는 듯 웃었다.
“하필이면 상대가 카게야마라 더 질색할 거예요.”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야...”
왠지 문제아에 대한 보호자 상담시간 비슷한 형태로, 야마모토는 그녀에게 오이카와가 이형능력체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집단으로 묶어 혼절시킨 사건을 추려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뭐, 자네도 가이드로써 알고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말해주는 거니까. 응응, 절대 일러바치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한껏 곤란한 얼굴이 되어 야마모토에게 거듭 사과를 한 그녀가 결연히 고개를 들었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에게는 제가 설명할게요.”
“......정말?!”
갑자기 불이 켜진 듯 환해지는 야마모토의 얼굴에 그녀가 웃었다. 네. 제가 데려왔으니 책임을 져야죠. 그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한시름 놓은 듯 야마모토도 미소를 보냈다. CIAS 센다이 지부장 집무실의 테이블에서 이루어진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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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씨 고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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