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드림


 

대화가 필요해

 



 



승리 팀인 그린 로켓은 물론 마지막까지도 결과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승부를 보여 준 C대의 선수들에게도 관중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녀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코를 훌쩍이는 스태프 야마다 씨에게 티슈를 건네며 덩달아 붉어지려는 눈시울에 힘을 주었다. 아니, 쿠로와시키 리그전에서 탈락했다고 배구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눈이며 코끝이 발개진 야마다 씨가 그녀의 중얼거림을 잡아챘다.


“그치만 아깝잖아요? 이길 수 있었는데! 게다가 쿠로와시키는 사쿠사 선수가 C대 팀으로 뛰는 마지막 대회잖아요!”


코 먹은 목소리로 연신 눈물을 닦아 내면서도 할 말은 모두 마친 야마다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질겁하며 외쳤다.


“저기 잠깐? 울지 마요!?”


메이크업 지워지잖아요! 아, 안 돼! 이제 곧 3경기 시작인데! 야마다 씨의 야단에 그녀는 눈을 흡뜨며 머릿속으로 카게야마 군의 카레 CF를 떠올렸다.

 



***

 



C대의 드라마틱한 패배는 온갖 매체와 방송사의 훌륭한 기삿거리가 되었다. 거의 모든 취재진들이 화제의 주인공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줄을 섰고, 따라서 사쿠사는 또다시 인파에 둘러싸인 채 궁지에 몰린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리코 아츠시가 옆에 있다. 이리코는 무릎에 고정장치를 착용한 채였지만 밝은 미소와 씩씩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반면에 사쿠사 키요오미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뚱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아 잡고 우뚝 서서 이리코 아츠시를 노려보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쿠사 선수는 다가오는 시즌부터 MSBY 블랙 자칼에서 프로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는데요. 소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각오 한 마디 들려주시겠어요?”


불쑥 들이밀어진 마이크에 사쿠사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딱 떨어지는 대답에 마이크를 쥐고 있던 기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틈을 타서 사쿠사가 사람들 몰래 이리코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질문을 기다리던 이리코가 옷자락이 당겨지는 느낌을 받자마자 아, 하고 오른쪽 다리의 고정장치를 내보이며 말했다.


“제가 오래 서 있기 힘든 상황이라... 취재는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을까요? 추가 질문이 있으신 기자님께서는 팀 매니저를 통해 학교 쪽으로 요청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이리코의 옆에서 사쿠사도 살짝 목례한 후 이리코를 길잃은 양 몰 듯이 몰아치며 인터뷰 존을 빠져나왔다. 사쿠사는 잠시 후 시작될 B조의 제3 경기를 위해 코트와 좌석을 정비하느라 어수선해진 체육관을 먼 눈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제3 경기의 인터뷰를 맡을 예정이라고 했었지. 어쩌면 오늘, 사쿠사는 그녀와 인터뷰를 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린 로켓의 누군가와 인터뷰를 했겠지.’


키류 와카츠나 고시키 츠토무의 곁에서 웃음짓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 사쿠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기던 이리코는 그 표정을 보고 제가 무언가 잘못했나 싶어 쭈글해져서 사쿠사의 눈치를 살폈다.


긴 복도를 지나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맞은편의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났다. 곧 코너를 돌아 체육관 쪽을 향해 다가오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이리코를 발견하고 손가락을 올렸다.


“앗, C대의 이리코 선수...와...”

“???”

“사쿠사 선수...!?”


손가락을 올리며 놀라워하는 야마다 씨의 곁에서 그녀가 자연스럽게 삐거덕거리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벽으로 향했다.

 



***

 



“두 분 다 정말, 진짜로, 대단한 활약이었어요! 저는 스포츠N의 야마다라고 합니다. 이리코 선수, 다리는 괜찮으세요?”

“아, 인카레 때 인터뷰.. 감사합니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교체당해서 괜찮습니다!”

“4세트는 정말 너무너무 아까웠어요! 저도 이 친구도 경기 끝나자마자 눈물이 나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났었다니까요?”

“...야마다 씨.”

“응? 왜? 우리 둘 다 사쿠사 선수 팬이잖아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요... 그녀는 야마다 씨의 말에 묘하게 시무룩해진 이리코가 야마다 씨에게 ‘그럼 제 팬은 아니신 건가요’ 라고 중얼거리고, 그 말에 크게 당황한 야마다씨가 ‘오늘 이리코 선수가 얼마나 훌륭한 플레이를 했는지 새롭게 팬이 되었다’는 장황한 얘기를 어느새 척척 죽이 맞아서 이야기하는 동안, 끈질기게 얼굴에 달라붙는 사쿠사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

“......”


결국 눈맞춤에 실패한 사쿠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울었습니까.”

“안 울었는데요.”

“빨갛네요.”


...그럴 리가! 가라앉은 거 확인하고 나왔는데? 그녀는 황급히 휴대전화 카메라 어플을 켜고 눈가가 말짱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그녀를 속인 사쿠사의 눈을 노려보았다. 이제야 시선이 맞은 것이 퍽 만족스러운 듯, 사쿠사가 눈에 힘을 풀며 질문했다.


“왜 울었습니까.”

“...야마다 씨 위로하다가요.”


아. ‘야마다 씨한테 다 이를 거야’의 야마다 씨가 저 사람이었군. 이리코와 호각으로 설전을 벌이는 여자를 흘깃 쳐다본 사쿠사가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그대로 굳었다.


“...왜 우는 겁니까.”

“???”


그녀는 사쿠사 선수가 말하기 전까지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기껏 수습하고 왔는데 또 망칠 수는 없다. 그녀는 카게야마군의 멍뎅한 표정을 생각하며 필살 눈물 말리기 주문을 외웠다.


“파워- 카레로 서비스 에이스. 파워- 카레로 서비스 에이스. 파워- 카레로...”

“...?”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는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떠올리라고들 하잖아요. 요즘 본 것 중에 카게야마 군의 CF가 제일 웃겨서, 눈물 방지책으로 쓰고 있어요. 딱 한 번 눈을 깜박이면 똑 떨어질 것 같은 물방울을 매달고, 그녀가 웃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순간

사쿠사는 생각보다 먼저 손을 움직였다.


완벽하게 손질되어 있는 길고 힘 있는 손가락이 섬세한 유리 공예 잔에 새의 속 깃털이 닿는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으로 그녀의 눈시울에 닿았다.


손가락을 적시는 물방울은 의외로 따뜻했고, 그녀의 손에 닿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종류의 불쾌한 감각도 일으키지 않았다.


“...사쿠사?”

“......?”


어느새 설전을 멈춘 야마다와 이리코가 멍하니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사쿠사의 손이 닿았던 눈시울에서부터 붉은 열기가 얼굴 전체를 향해 달음질친다. 사쿠사는 손 닿은 곳부터 천천히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보기에 심히 좋았다.

 



***




오타쿠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최애의 완벽한 인생에 나라는 오점을 남기고 싶다.’


널리 알려진 말이었기에 그녀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몇 번쯤 인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코트 밖 사쿠사 키요오미의 인생에 자발적, 적극적으로 엮일 생각은 해본 적 없었을 뿐더러, 그 인생에 정말로 유일하게 될 오점으로 남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없어야 했다. 없어야 했을 텐데...


그녀는 지금 제3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며, 프레스석의 간이 테이블이 보이는 체육관 기둥에 기대어 이쪽을 빤히 노려보고 있는 사쿠사 키요오미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저기, 사쿠사 선수가 자길 엄청 보고 있는데...”

“...눈 마주치지 마세요.”


마주치면 일직선으로 다가온단 말이에요. 최애를 무슨 직선 귀신처럼 설명하는 그녀에게 야마다 씨가 질문했다.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사쿠사 선수가 남의 눈물을 닦아 주다니... 대사건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격하게 동의했다. 남들 눈이 없는 대기실 앞 복도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제의 엘리베이터 선언은 농담이 아니었는지 사쿠사 선수는 무섭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공식 웜업을 위해 블랙 자칼과 센다이 프로그스의 선수들이 들어왔다. 그녀는 혹시 히나타 선수가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실수로 기둥에 기대어 선 사쿠사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히이익...!’


사쿠사 키요오미가 천천히 기둥에서 몸을 떨어뜨리며 똑바로 섰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일직선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전에도 이 광경을 본 것 같은데. 분명히, 다음 대사가


“...남는 자리 없습니까.”


그래. 저거다. 그녀는 스르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없는데요...”


그, 우리, 카메라 많은 데서는 좀 모르는척 하고 그럽시다. 네? 그녀의 마음 속 외침을 알 길 없는 사쿠사가 앉아있는 그녀의 높이에 맞추어 허리를 숙이고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그것 참 잘 됐네요.”


제게 마침 두 자리가 있어서요. 사쿠사가 티켓 두 장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지난번의 보답을 하게 해 주시죠.”


결국 그녀는 야마다 씨의 협박 같은 응원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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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토시 군 어디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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