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드림
대화가 필요해
오후의 제 3시합을 위해 근처 체육관에서 몸을 풀고 있던 C대의 선수들은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소식에 황급히 마루젠 아레나의 코트를 밟았다. 어제 애들러스 전에서 피로가 쌓였는지, 트레이닝 코치에게 다녀온 뒤 오른쪽 무릎에 테이핑이 덕지덕지 붙은 이리코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 불쑥 말을 걸었다.
“...괜찮은 거냐.”
“!!!”
이리코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말한 게 정말 사쿠사가 맞는지 의심하는 듯 했다. 사쿠사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왜.”
사쿠사가! 그 사쿠사가 괜찮냐고 물어봤어! 어쩌다 부상을 입으면 부주의하기 짝이 없다고 비난하고, 감기라도 걸려서 오면 자기 근처에는 접근도 못 하게 하면서 병원균 취급을 하던 그 사쿠사가!
“너, 사쿠사 맞냐?”
“......”
말 안 해. 사쿠사가 마스크를 올려 쓰며 이리코를 지나쳐갔다. 이리코는 차갑기 그지없는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온 얼굴을 사용해 웃으며 주위의 팀원들을 불러 자랑했다.
“호도타! 야스카와! 니죠! 봤냐? 사쿠사가 말이야...!”
“시끄러워.”
“코사이! 방금 사쿠사가!”
“......”
떠들썩한 C대 코트의 반대편에서 호쾌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사쿠사 선수! 안녕하십니까!”
“...누구지.”
“시라토리자와 고교 출신! 고시키 츠토무입니다!”
시라토리자와 출신, 이라는 말에 사쿠사는 기억 속에서 자를 대고 자른 듯한 앞머리를 가진 1학년 스파이커를 기억해냈다.
“...와카토시 군 뒤에 있던.”
“~!!!”
“인터하이 홈런 스파이크.”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력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벌개진 얼굴로 항의하는 고시키를 본체만체하며 사쿠사가 말했다.
“...와카토시 군 외에는 흥미 없어.”
“그 말씀, 후회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좋을 대로. 눈썹을 한 차례 꿈틀한 사쿠사가 먼저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던 고시키는 웜업을 시작해야 하니 이쪽으로 오라는 키류의 말을 듣고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쿠로와시키 리그전 3일 차 제 2 시합, 아즈마 제약 그린 로켓과 C대의 대결을 위한 공식 웜업이 시작되었다.
***
그녀는 뻑뻑한 눈꺼풀을 겨우 내려 눈을 감았다. 밤새 뒤척이느라 결국 제대로 눈을 붙인 건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용량 초과로 과부하가 걸려 있던 머릿속이 어제 사쿠사 선수가 던진 폭탄으로 초토화되었다.
[...상대가 바뀌면, 이전 사람과의 기사는 사라지게 되겠지.]
아니, 사라지는 건 기사가 아니라 내 사회적 입지와 이미지가 될 거다.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안될 일이다. 우시지마로도 모자라 사쿠사 선수까지 엮이게 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녀를 저주하는 신전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녀는 뇌를 점령한 무서운 상상을 떨쳐내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순간 펜스 너머의 웜업존에서 상완 스트레칭을 하던 사쿠사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자꾸 이상한 타이밍에 눈이 맞네... 머쓱해진 그녀가 슬그머니 팔을 내리는데, 사쿠사가 턱짓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설마 따라 하라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은 사쿠사가 잠시 고개를 들어 그녀가 보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긴 몸을 앞으로 굽히고 팔을 뻗어 손목을 안쪽으로 둥글리며 누르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저게 어떻게 되는 거야...?’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한번 보기 시작하면 넋을 놓고 계속 지켜보게 된다던 히나타 군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사쿠사의 손목 스트레칭이 끝나자 박수를 치고 싶어졌다. 사쿠사 선수는 곧 양다리를 벌린 채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녀는 쭉쭉 늘어나는 그 기다란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문득 한쪽 팔을 들어 간이 테이블 위에 올리고 방금 사쿠사 선수가 하던 것처럼 손바닥이 팔뚝 안쪽으로 가도록 눌러 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은 어정쩡한 갈고리 모양이 될 뿐 더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래. 안 될 거라고는 생각했어. ...그래도 이 각도는 아니지!’
조금이라도 더 눕혀 보려고 애를 쓰던 그녀는 갑자기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펜스 너머에서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외면하는 사쿠사 키요오미를 발견했다.
‘봤구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저건 분명히 본 사람의 반응이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내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앉아 자료를 들여다보는 척을 했다. 거, 빨리 경기 시작합시다. ...민망하고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웜업 시간은 차분히 흘러가고 있었다.
***
좀처럼 공이 떨어지지 않는 시합이었다. 양 팀의 수비진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붙었다. 1세트부터 듀스로 이어지는 흐름을 고시키 츠토무의 스트레이트로 결정지으며 그린 로켓이 선취하자마자 C대는 세터 이리코가 중앙과 C퀵을 절묘하게 사용하며 25점까지 따라붙은 그린 로켓을 2점 차로 떨쳐내며 2세트를 빼앗아왔다.
그리고 3세트. 요괴세대 고교 3대 에이스 중 하나인 키류가 실력을 드러냈다.
“와카츠 씨!”
세터의 셋업 자세가 흔들려 평소보다 토스가 짧게 올라갔다. 도움닫기 자세를 잡으며 키류 와카츠는 무지나자카 고등학교를 떠올렸다.
‘와카츠 선배는 어떤 공이라도 칠 수 있으니까요!’
그 말대로다. 이제 그는 어떤 공이라도 칠 수 있는 에이스가 되었다. 키류의 점프가 완성되는 것에 맞추어 C대의 블로킹도 완성되었지만, 공중에서 어깨를 돌리고 그 힘으로 그대로 내려치는 키류의 파워에 당해내지는 못했다.
[나쁜 공 치기의 달인 키류 와카츠! 오늘도 그 명성에 걸맞는 플레이입니다!]
[짧은 토스를 정말 잘 내리꽂았어요.]
20점까지 따라온 C대를 비웃는 듯한 24점째의 스파이크가 떨어지고 나자, 사쿠사 키요오미의 서브 차례가 돌아왔다.
“한 번에 끊자!”
“네엡!”
긴장이 가득한 코트 위에 사쿠사가 공을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잠시 공을 잡은 채 집중한 다음, 8초를 신중하게 사용한 서브가 날아들었다. 고시키 츠토무는 시야를 메우며 날아오는 공을 보다가 문득 카라스노와의 봄고 미야기현 예선 결승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웃인가?
‘방심하지 마!’
이번에도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고시키 츠토무에게서 서비스 에이스를 받아냅니다, 사쿠사 키요오미!]
[네, 사쿠사 선수의 스파이크도 그렇지만, 특히 서브는 손목의 회전 덕분에 아주 받아내기가 어렵지요.]
올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역시 그 회전이 문제였다. 언더 리시브 자세에서 미끄러지며 방향을 바꾼 공을 쫒아갔지만 결국 손이 닿지 않았다. 고시키는 이를 갈며 네트 너머를 노려보았다.
‘이 빚은 갚아 주지!’
사쿠사의 두 번째 서브 턴. 이번에는 코트의 반대쪽을 향한 서브에 그린 로켓의 리베로가 반응해 띄워 올렸다. 귀중한 찬스볼을 누구에게 맡길까. 포물선을 그리는 공을 향해 셋업 자세를 취하던 세터가 슬그머니 미소지었다. 우리 애 기죽는 건 또 못 보지.
“고시키!”
“넵!”
뚫어버려!
백 토스로 날아온 빠른 공을 고시키가 안테나에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스트레이트로 처리했다. 아래로 휘날리는 붉은 깃발과 함께 세트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세트 스코어 2:1, 그린 로켓이 계단 하나를 앞서 오르기 시작했다.
***
4세트. C대에게는 마지막 세트가 될 수도 있는 위기였지만 코트 위에는 긴장감이나 불안의 조각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너희들, 제대로 연습하잖아.”
그러면 됐지. 두 손을 위로 올리고 이리코의 서브를 기다리며 무심하게 내뱉은 사쿠사의 말에 팀원들은 완벽한 평정을 되찾았다. 이어서 대학 리그의 빅 서버 이리코 아츠시의 스파이크 서브가 그린 로켓 코트 엔드라인에 내리꽂혔다. 그 서브를 신호탄으로 삼아 C대는 4세트 내내 그린 로켓을 리드하며 20점에 다다를 때까지 흐름을 내주지 않았다.
어쩌면 십몇년 전 쿠로와시키 대회의 전설처럼 프로팀을 하나하나 물리치며 결승에 도전하는 대학팀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그녀를 비롯한 아레나 안의 모두가 마음속에 희망을 품었을 때.
이리코의 무릎이 고장났다.
가장 먼저 이상을 알아챈 것은 사쿠사였다. 4세트 추격의 시작이었던 서브의 착지 이후, 아주 약간이지만 오른쪽으로 딛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이 보였다. 테이핑이 있으니까 위화감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넘겼지만, 몇 차례의 랠리가 계속될수록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사쿠사는 미간을 사정없이 구기며 감독을 향해 타임을 요청했다.
“이리코 아츠시. 빠져.”
“뛸 수 있어!”
“......”
눈으로 오만가지 욕을 하는 사쿠사의 시선을 피하며 이리코가 중얼거렸다.
“이번 대회가, 이 멤버로 뛰는 마지막이잖아...”
이런 것까지 이이즈나 선배를 떠올리게 할 필요가 있나? 그보다 이건 어딘가의 고등학생이냐. 헛웃음을 지은 사쿠사가 으름장을 놓았다.
“오늘만 뛰고 배구 안 할 거면 나오든가.”
뭐라고 반박할 듯 눈을 부릅뜨는 이리코를 트레이닝 코치와 감독이 제지했다. 결국 22대 21, 결착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C대의 세터가 교체되었다.
백업 세터는 갓 벤치에 들어온 2학년이었다.
눈에 훤히 보이는 허점을, 상대가 놓칠 리가 없었다.
23대 25. 세트 스코어 1:3으로 아즈마 제약 그린 로켓이 A조 2위로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
...한없이 배구 청춘물에 가까운 드림입니다(포기)
C대는 이 드림에서만 나옵니다. 당연히 원작에는 안 나옵니다.
댓글과 하트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드림 > hq: 대화가 필요해(우시지마,사쿠사 드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 대화가 필요해 15 (0) | 2020.08.07 |
---|---|
[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 대화가 필요해 14 (0) | 2020.08.06 |
[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 대화가 필요해 12 (0) | 2020.08.03 |
[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 대화가 필요해 11 (0) | 2020.08.01 |
[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 대화가 필요해 10 (0) | 2020.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