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센티넬가이드 AU



예각의 대립


오이카와 토오루, 카게야마 토비오 드림





2. 

  이마미치의 비상호출로 센터의 모니터룸에 비상대기조와 함께 CIAS 센다이 지부장 야마모토, 2연 소장 아사노, 그리고 T 프로젝트의 치프 엔지니어 무라카타가 함께 모였다. 공간의 한쪽 벽면을 꽉 채운 대형 화면에는 뿔나팔 소리로 유추한 게이트 오픈 예상지점의 하늘이 띄워져 있었다. 


“이상한데...,” 

“균열의 생성이 비정상적으로 느리군요.” 

“예상지점의 계산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무라카타의 질문에 아사노가 차갑게 대꾸했다. 


“지금까지 2연의 게이트 예측 시스템에 오류가 있었던 적은 없어. 걸핏하면 버그나 잡는 그쪽의 시뮬레이션과는 다르지.” 

  

  과연, 그렇네요! 감탄해 마지않는 말투로 무라카타가 아사노에게 말했다. 


“그래서 카게야마의 한계치 기록 측정에 그렇게 공을 들이셨군요!” 


  사이 좋게 한 방씩 먹고 먹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야마모토가 사람 좋게 웃었다. 두 사람 다 적당히 하고 준비들 하세요. 


“2연은 게이트 예측 시스템의 범위를 더 넓게 부탁합니다. 두 번째 게이트가 크리쳐가 아닌 신생물질의 통로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활동 에너지 뿐만 아니라 물질 에너지도 스캔해 주세요. 무라카타 자네는 이마미치 군에게 오퍼 넘겨받고, 그 둘이 멋대로 폭주하지 않도록 봐 줘.” 


  지금까지 없었던 특이 케이스의 출현도 모자라 하필이면 우리 괴물들의 가이드인 그 애가 얽혀 있다니. 부디 말썽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야마모토는 애꿎은 손가락을 만지작대며 주머니를 뒤졌다. 

  간신히 끊어냈던 담배가 이렇게 절실할 수가 없었다. 


  대피 명령이 한 차례 휩쓸고 간 한적한 대로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센터의 이동수단 사용 신청을 위해 정비국 건물을 찾고 있었다. 성급한 걸음이 느린 달리기 비슷한 것이 될 무렵, 머리 위에서 맑은 뿔나팔 소리가 울렸다. 


“게이트가... 또 열렸어?” 


  일반적으로 게이트는 한 번 열린 다음 곧바로 다시 열리지 않는다. CIAS에 소속된 사람들이 반쯤 농담 삼아 크리처를 ‘신의 폐기물’, 또는 ‘신의 쓰레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리처들이 일정한 주기와 지역의 차를 두고 분리배출되듯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방금 전 아오바 구 시민공원에 오픈된 게이트처럼 주기를 벗어나는 이레귤러는 예측된 주기에 생성된 게이트에서 나오는 녀석들보다 미숙한 구조를 가진 것들이 많다. 


‘그래도 일반인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게이트가 오픈되었으니 센티넬이 아닌 사람은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가장 가까운 대피 시설인 시민 체육관과 정비국의 거리를 대조한 다음 그녀는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진입했다. 앞으로 두 블록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정비국 건물이 보일 터였다. 급한 마음으로 골목에 뛰어든 순간, 그녀의 뒤편에서 서럽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나올 때 주변에 누군가 있었나?’ 


  대피 안내가 나왔을 텐데? ...설마 보호자 없는 아이인가? 그녀는 균열이 조금이라도 늦게 열리기를 바라며 황급히 몸을 돌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하늘을 울리는 뿔나팔 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성량을 따라 시민 체육관 방향으로 거슬러오자, 돌을 쌓아 만든 관목 화단과 이어진 체육관의 표지석 옆에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체리 모양의 빨간 머리끈으로 양갈래 묶음을 한 새카만 머리카락 아래의 흰 얼굴이 눈물바람이다. 검은색 원피스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빨간색 에나맬 크로스백은 잠금쇠가 풀린 채로 안이 텅 비어서 새까만 안감이 보였다. 한쪽 발은 제대로 신발이 신겨져 있지만 나머지 신발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더러워진 흰 양말 차림으로 잘록거렸다. 그녀는 마침 발끝에 채인 신발을 주워들었다. 어린 여자아이라면 한번쯤 신어 보았을 법한 메리제인 구두가 주말 오후의 햇살에 반짝 빛났다. 흰색과 검은색, 빨간색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은 아이가 하염없이 울며 들여다보고 있던 빈 가방에서 눈을 들어 정확히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와 동시에 천지간을 울리던 뿔나팔 소리가 멎었다. 

  귀가 다 먹먹해지는 정적 속에서 아이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월 떡만큼이나 흰 얼굴 가운데 기묘할 정도로 검은자위가 큰 눈이 쏟아질 듯 이쪽을 향하다가 일그러지는 듯 하더니 


“으.,으으.....” 


  와아앙! 하고 다시 눈물을 쏟아 냈다. 그녀는 얼른 아이에게로 달려가 날아간 한쪽 신발을 마저 신겨 주고, 쪼그리고 앉아 아이를 올려다보며 눈맞춤을 했다. 


“괜찮니?” 

“......” 


  집은 어디냐, 널 데려온 어른은 어디에 계시냐, 걸을 수 있느냐. 다급한 물음에 아이는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다. 그저 빈 가방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 상황에 낯선 사람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시민 체육관이 바로 요 앞이라 다행이지. 


“일단 언니랑 가자. 무서워도, 지금은 여기 있으면 안 돼.” 

“......” 


  웃으며 내민 손을 아이는 잡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에게 빈 가방을 보여 주었다. 어린이가 들기에는 조금 크지 않은가 싶은 가방 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게 칠해진 안쪽이 아주 새카맣게 가라앉은 듯 보였다. 무언가 담겨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그녀는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뭐 잃어버렸니? 찾으러 갈까?” 

“...!!!” 


  아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행여 놓칠 새라 얼른 잡은 손에는 조금의 온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겁에 질렸대도.... 이렇게까지 차가울 수 있나? 라는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그녀는 아이에게 이끌려 체육관 진입로와 맞닿은 길로 접어들었다. 신록이 무성한 길을 아이와 함께 걷는 내내 그녀의 귀에는 새 우는 소리, 풀벌레 움직이는 소리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아이의 작은 구둣발 소리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애초 카게야마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곁에 붙어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옆 블록에서 연신 험악한 소리를 내뱉으며 그녀의 흔적을 찾던 오이카와 토오루가 기어이 모니터룸에다 대고 화를 냈다. 


“무라쨩! 예측 시스템은 아직?” 


  이마미치에게 자리를 넘겨받은 무라카타가 익숙한 듯 말을 받았다. 


“진정해, 오이카와. 광범위 물질 에너지 스캔은 재구동에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잖아.” 

“사람이 죽어나가도 시간이 걸려서 안 된다고 할 거야!? ‘세계가 주목하는 2연의 기술력’ 어디 갔어?” 


  거침없는 언사에 2연 소장 아사노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분하지만 저 오만한 몬스터의 말이 틀리지는 않아 더 불쾌했다. 무리 없이 작동하던 2연의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2차 게이트 균열의 발생지점을 추적하던 중 갑자기 셧다운 되었다. 정전 대비를 위한 자가발전시스템이 있었음에도 한순간 대 혼란이 일었고, 곧 다시 가동된 시스템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또 다시 험악한 소리를 왁왁거리는 통에 무라카타가 잠시 오이카와의 오디오 연결을 끊어버렸다. 

조용해진 모니터룸에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않던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갱신된 위치가 어디입니까.” 

“이즈미자키 정비국 기준으로 반경 500m.” 


  안전 건물을 지척에 두고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지정 대피소인 시민 체육관과 그 인근을 샅샅이 찾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물끄러미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아니야, 저쪽이 더 급해. 얼른 가 봐.] 


  선배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고 있다고 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도고. 하지만 카게야마는 더 이상 모두의 행복을 위해 선배가 혼자서만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토비오.” 


그러니, 그쪽의 여러분도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장 오디오 연결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미의 손가락 언어를 몇 번이고 전한 끝에 겨우 다시 연결된 오디오가 낮게 깔린 오이카와 토오루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분노와 좌절을 먹이로 길러낸, CIAS가 자랑하는 괴물이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민 체육관의 방호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잠시 아이의 손을 놓고 문을 두드리려 했다. 모든 지정 대피소기 위험 해제 경보가 울리기 전에는 바깥에서 문을 열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문을 두드려 신호를 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경계할 때는 언제고 그 사이에 불안해졌나 싶어 그녀는 안심하라는 뜻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며 방호문의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아이의 손을 놓칠 뻔 했다. 하지만 아이는 잡은 손의 힘을 더하며 그녀를 매단 채 맞은편의 광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느꼈던 몇 가지 위화감을 차례로 떠올렸다. 기묘하게 검은자위가 큰 눈.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차가웠던 손의 온도. 자신보다 훨씬 큰 사람을 끌고 가는,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힘. 


‘이게, 어린아이의 힘이라고?’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이건’ 뭐지? 


  혼란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날아든 목소리에 끊어졌다. 


“찾았습니다, 오이카와 선배!” 

“비켜! 토비오!” 


  어디선가 카게야마와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리고, 앞서 달리던 어린아이의 머리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녀의 손을 틀어잡은 힘과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완벽한 섬멸을 위해 파장을 조준하는 카게야마를 저지했다. 


“안 돼.” 

“아직 안 죽었습니다!” 

“진정해. 네 무식한 파워로는 저 애가 맞을 수도 있어.” 


  그리고, 봐. 사라지고 있어. 과연 오이카와의 말대로 크리쳐는 잠시 주춤하더니 장난감 점토나 액체 풀처럼 검붉게 꾸물거리며 흩어졌다. 자연히 힘이 풀려 쓰러진 그녀의 곁으로 그녀의 센티넬들이 달려왔다. 


“선배!” 

“괜찮아?” 


  그녀는 그대로 오이카와의 품에 당겨졌다. 잠시 후, 오른손에 조심스러운 카게야마의 손이 닿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백 마디 말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파장이 그녀에게로 쏟아져 들어왔다. 두서없이 쌓여가는 감정과 수많은 충동이 부딪히며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간다. 그녀의 센티넬들은 잠시 모든 방어의 수단을 놓아버리고 제 가이드가 무사하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파장의 홍수 속에서 마주 안긴 채 오이카와의 어깨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안 돼!’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전원이 내려갈 것 같은 머리를 때려서라도 깨워 외치고 싶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 멍청이들아. 제발. 너희들만이라도. 


“뭐? 잠깐 토비오쨩, 조용히 좀 해 봐. ...방금 뭐라고 했어?” 

“ㄴ...희들..ㅁ...어서...” 

“어서?” 


도망쳐. 마지막 말이 소리가 되어 나왔을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의식을 잃은 동시에 사라진 척 흩어져 있던 검은 것들이 일어나 세 사람을 가두었다. 완벽한 정육면체로 그들을 감싼 크리처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고 검은 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한순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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