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십이국기 AU : 어느 날, 바람이 바뀌고
기린 카게야마와 차주후 오이카와, 그리고 그들의 왕인 그녀의 이야기.
진짜 느림 주의 / 설정파괴 및 캐붕 주의 / 본편에 안 나오는 인물 주의
양주 영윤 테시로 타마히코는 뛰어난 균형감각과 냉정함이 특기인 관리로 조금 한가해지면 곧잘 봉래로 향하는 수도주후의 뒷처리를 묵묵히 해내는 인재이지만
{앞으로 보름동안 타이호께서 돌아와 일을 봐 주시지 않으면 금화를 비롯한 양주 성하의 물자 흐름이 칠할 정도 막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영파궁에 진상되는 물자의 양도 평시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예정이니 상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끔 천관부와 춘관부 관원들의 심장을 섬뜩하게 만드는 장계를 올리곤 했다. 그러면 육관의 재촉을 받은 대사마 야마모토 타케토라가 류국의 타나카나 동국의 니시노야에게 은밀히 부탁하여 타이호를 데려오는 것이 최근 관습처럼 굳어져 가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켄마도 쿠로오처럼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야쿠를 바라볼 수 없는 입장임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연국 기린은 슬그머니 총재의 눈총을 피하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부탁 받아서 가는 거니까.”
“부탁?”
아. 스가 군 말이지? 대국 기린의 이름자를 서슴없이 부른 야쿠가 곧 미간을 좁혔다.
“비국 기린이 명식을 일으켰다며? 그것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그럼 애써 찾아내도 이미 가망이 없다거나 하는 것 아니야?”
“으아아아! 켄마! 듣지마! 총재께서는 어째서 그렇게 섬세함이 부족하신 겁니까!”
“…그 말, 네놈 전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냐.”
소리가 새어들 틈도 없이 귓가를 꽉 틀어막고 있는 쿠로오의 손을 겨우 떼어낸 켄마가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것도 있지만…. 저쪽에 태과가, 있어.”
연 타이호 코즈메 켄마가 봉래를 빈번히 오가는 연유에 대하여, 연은 대외적으로 ‘태과 출신인 기린이 즐겨 하는 봉래의 놀잇감을 위해서’ 라고 말해오고 있지만 실제로 코즈메 켄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해객을 돌려보내거나 봉래로 흘러간 이쪽의 백성을 건져내기 위해 움직이는 일이 더 잦았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즐거움일 뿐이다. …아마도.
평소라면 결코 섞이는 일이 없는 열두 나라와 봉래는 ‘식’ 이라는 천재지변에 의해 가끔 하나로 매듭지어져 섞이곤 했다. 식이 지나가고 나면 십이국의 해변에는 봉래의 사람들이 발견되었다. 바다에서 온 손님이라는 뜻의 ‘해객’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땅을 뒤집고 제방을 무너뜨리는 식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재앙의 상징으로 여겨져 미움받았다.
가끔은 이쪽의 사람이나 난과가 봉래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었다. 십이국의 사람은 봉래의 땅과 공기에 받아들여지지를 않아서 모습이 흐릿하게 비쳐 보이거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려와 곧잘 귀신으로 오해받았다. 흘러간 난과의 경우는 임신한 여인의 태에 자리잡아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이를 태과라 했다.
봉래 태생의 태과였다가 연국의 기린이 된 코즈메 켄마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어느 쪽을 택하든 세이브 포인트가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
괜한 수고로움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답을 남긴 기린은 번다한 중에도 힘 닿는 대로 해객을 봉래로 돌려보내거나 봉래에서 태과를 주워 오거나 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태과는 뭔가, 조금 달랐다.
“이쪽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아.”
“…태과라며?”
“켄마, 그 사람이랑 만나 본 거야?”
“아니. 인터넷 게시판…. 그러니까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올려 둔 글과 그림을 봤어. 요마와, 리목이 있는 리사의 풍경을.”
란과인 상태에서 넘어간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쪽의 기억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십이국에서 나고 자란 자가 봉래로 넘어간 경우에는 봉래의 땅과 공기가 십이국의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구천을 떠도는 자가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는….
“그 태과가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겠지.”
근래에 봉산에서 식에 의해 난과가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기린이 아니라면, 켄마가 발견한 봉래의 태과는 높은 확률로 비국이나 십이국 중 어느 한 나라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게다가 지금 비국의 기린은 명식을 일으켜 다른 세계에 가 있다.
이 모든 사건이 과연 우연의 일치로 일어났을까?
켄마의 말에 한참을 생각에 빠져 미간을 모으고 있던 야쿠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말이야. 비국의 기린은, 봉래에 있는 주인의 왕기를 느끼고 명식을 일으켰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켄마도 태과였지만 쿠로오 테츠로라는 희대의 암군을 찾아낸 건 봉래에서 돌아온 다음이잖아? 자르듯 말하는 총재에게 쿠로오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왕을 암군이라고 욕하지 말라’며 딴지를 걸었다. 악우이자 충정 깊은 군신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켄마가 조용히 대답했다.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하지만, 비국 기린은 피의 저주가 씌인 채로…아, 미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며.”
야쿠의 피 발언을 듣지 못하게 또 다시 켄마의 귀를 덮으려다 실패한 쿠로오의 손바닥이 연극적인 모양새로 펼쳐졌다.
“그러니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연국의 뇌이자 척추이자 심장인 켄마가 필요한 것이지!”
“…쿠로. 시끄러워.”
말 한 마디로 주인을 조용하게 만든 기린이 품속에서 손바닥만한 거울을 꺼냈다.
열두 개의 꽃잎에 감싸인 듯한 모양의 거울 뒷면 중앙부에는 네발달린 짐승이 엎드린 자세를 한 손잡이가 달려 있고 요수를 탄 사람과 요마, 들짐승, 리목과 천녀의 조각이 손잡이를 빙 둘러 조각되어 있었다. 작은 거울에 붙은 형상은 아주 정교해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으나 물건의 주인이 거울을 자주 닦지 않았는지 녹이며 얼룩이 덕지덕지 붙었다.
켄마는 거울을 들어 무심히 영파궁의 창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햇빛 한 조각을 훔쳤다. 거울에 닿은 햇빛이 바닥을 향해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며 원을 그렸다. 테두리는 환하게 빛나고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그림자처럼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동그라미는 마침 한 사람이 가운데에 서면 딱 알맞도록 커졌다.
켄마는 그 원을 향해 한 발짝 발을 내딛고, 이쪽은 전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작게 속삭였다.
“정말로,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 한쪽 발까지 원 안에 들여놓은 순간 구불구불한 빛의 원이 순식간에 줄어들며 기린의 마른 몸을 삼켰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여전히 무심하게 창문 틈을 비집고 드리워진 오후의 햇살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 크고 작은 군신은 한동안 묵묵히 켄마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저기, 뭘 하고 있는 거야?]
[별로…아무 것도.]
[왜 밖에 나와 있어? 춥지 않아?]
[별로….]
[어, 신기하게 생긴 거울이네! …재미있어?]
[그냥, 심심풀이….]
[흐응- 그렇구나. 너, 이름이 뭐야? 나는 히나타 쇼요!]
[히나타, …쇼요.]
[응! 며칠 전에 생긴 이름인데, 제법 괜찮은 것 같아! 너는?]
[코즈메…]
[코즈메?]
[…켄마.]
[켄마인가!]
[…….]
[저기, 그 거울로 바닥을 지글지글하게 만들면 어떻게 돼?]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어.]
[정말? 우와, 켄마 대단해! 음… 그럼, 그거 나도 할 수 있어?]
[아니, 쇼요에게는 무리…일지도.]
[크윽! 왜 무리라고 하는 거야!]
[이건 우리 나라의 보물이니까…. 나 외에는 아무도 못 쓰는걸.]
[그러면 안 되는데!]
[왜?]
[히-를 찾으러 갈 수가 없어!]
[히-…?]
[그 녀석, 갑자기 구와아아앗!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없어져 버렸어.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고.]
[그렇구나.]
[찾으러 가겠다고 했더니 엄청 혼났단 말야! 기린이 멋대로 식을 일으키면 이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린다고.]
[…그렇겠지.]
[그러니까, 켄마! 부탁할게!]
[…….]
[“내 대신, 그 녀석을 찾으러 가 줘.”]
코즈메 켄마는 검은 화면에서 눈을 뗐다. 메일 수신함에는 새로 도착한 편지가 없었다. 상대의 수신 확인 시간은 그제 저녁. 지금까지 답변이 없다는 것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
휴대전화를 쥔 손을 두툼한 외투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채 무심코 돌아본 거리에 흥청거리는 불빛들은 햇살같이 웃던 작은 동족의 머리칼과 같은 주홍빛이었다. 연 타이호 코즈메 켄마는 고양이처럼 어깨를 움츠리며 따스한 색이 차갑게 넘실거리는 밤거리 속으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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