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키요 : 각자의 싸움 


지켜보는 사람의 예의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


 

 * 건축관련 정보에 대한 허위사실 및 날조 주의 

* 캐붕과 날조 주의







 …카라스노 고교 제2 부실동은 平成18년 3월 28일 준공되었으며 철근 콘크리트 기반 위에 경량 목구조의 2층 건물을 올린 다음, H강과 철골로 계단을 만들어 붙인 복합구조이다. 층마다 3개의 6첩방과 2개의 8첩방이 있다. 축구부, 테니스부, 배구부, 육상부의 부실이 위치해 있으며 2층 끝에는 남녀 탈의실과 샤워실, 1층 끝에는 공용 세탁실과 창고가 위치해 있다. 준공 당시 부실의 배치는… 


“저기, 시미즈. 지금 사와무라가…!”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시미즈 키요코가 읽고 있던 종이더미를 가방 안에 넣으며 일어나 뒷문을 향했다. 빠른 속도였는데도 당사자가 워낙 침착하게 움직이고 있어 속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걸음을 옮기던 시미즈가 돌아서서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 라고 말했다는 것과 청소를 위해 뒤로 밀어두었던 책상 때문에 뒷문이 막히자 가볍게 손을 짚고 뛰어넘어 소리도 없이 문 밖에 착지한 다음, 무섭게 빠른 속도로 사뿐사뿐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시미즈 키요코가…”

 “고맙다고 말했어…!” “복도를 질주하고 있어?”


  엇갈리는 캐해석에 대한 반응을 뒤로 한 채 시미즈는 부실동으로 향했다. 탈의실에 들러 체육복으로 갈아 입은 다음, 언제나처럼 수건과 음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3학년 선배들이 없는 분만큼 남게 된 음료 박스 안의 공간을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며 박스를 닫았다. 여벌 열쇠로 체육관의 문을 열고, 부활동 일지에 시간을 기록했다. 용구실에서 볼카트를 하나 끌고 나왔을 때쯤 부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키요코 선배! 안녕하십니까!”

 “…제,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니시노야와 타나카가 볼카트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엔노시타가 잡았다. 놀랍게도 목덜미 부근을 틀어잡힌 것만으로 얌전해져서 사이 좋게 지주와 네트를 가지러 갔다. 가볍게 목례하는 엔노시타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인 다음, 시미즈는 아즈마네를 향해 질문했다.


 “아즈마네. 사와무라랑 스가와라는 아직 교감실에 있어?”

 “아, 그게… 지금은 직원실에 있을 거야.”


  우물쭈물하던 아즈마네 아사히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다이치도 징계를 받게 될 것 같아. 무단 결과에다가 교직원 회의에서 결정된 일에 대한 항의를 교감실에 쳐들어가서 말해버렸으니까… 교감 선생님이 배구부 전체에 대해 활동 정지를 내릴 거라고 펄펄 뛰었어. 안경 너머로 가라앉은 시미즈의 표정을 살피며 아사히는 어쩔 줄을 몰랐다. 


 “잠시만 타케다 선생님을 뵙고 올게.”


  스트레칭은 우리끼리 해도 되니까, 다녀와. 아사히가 가까스로 입술을 끌어올렸다. 입술 끝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시미즈는 체육관을 나와 본관과 연결되는 회랑을 향해 걸었다. 


 “시미즈!” 

 “…스가와라.”

 

  사와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벌써 눈으로 알아들었다. 스가와라는 이럴 때마다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뭐, 좋은게 좋은 거지. 읽어낼 수 있고, 알아듣는다는 게 중요한 거야. 암. 그렇고말고. 


 “교감 선생님하고 면담 중이야. 아마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는 않을 것 같아. 긴 면담과 더 긴 반성문 정도? 자기 선에서 끝내야 현민체육대회 출장에 무리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어디 가? 최대한 가볍게 묻는 말에 시미즈는 평소와 같이 대답한다. 잠깐, 타케다 선생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흐응, 그래. 수고해. 스가와라는 산뜻하게 손을 흔들어주고 전력으로 체육관을 향한 몇 걸음을 뛰었다.


 “이 녀석들! 내가 왔다!”

 “스가 선배!”

 “스가아!”


 시끌시끌해진 체육관을 뒤로 한 시미즈는 직원실을 향해서 2층 복도를 걸었다.



 ***


 “시미즈 군, 무슨 일인가요?”


  서류보다 담배 꽁초가 더 높이 쌓인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타케다 잇테츠가 백지를 한 장 앞에 놓은 채 곤란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시미즈는 잠시 머뭇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편 후, 결심한 듯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 교직원 회의에서 결정된 제2 체육관의 사용시간과 부실 위치 변경 건에 대해서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시미즈가 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건넸다. 타케다는 상당한 양의 종이뭉치를 빠르게 독파해 나갔다. 중간중간 백지에 내용을 정리해가며 읽는 약 삼십분의 시간 동안 시미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굳게 서서 타케다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시미즈를 마주한 타케다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이거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시미즈의 얼굴에 옅은 물이 들었다. 타케다는 급히 흘려 쓰느라 알아보기 힘든 백지 위의 글씨들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에 학생은 손에 넣기 힘들지만 교사의 위치에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몇 가지 증빙자료만 더해진다면… 


  “학부모회의 정례 회의에서 결정이 뒤집힐 수도 있겠네요.”


  자, 그럼 다음주 정례 회의에 맞추어 몇 가지 준비를 해 두어야겠어요.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타케다에게 시미즈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께는 폐가 될 것 같은 부탁이라….”

 “괜찮아요. 원래 어른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켜온 카라스노 배구부를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순 없잖아요.”


  그렇죠? 하고 웃는 얼굴에 끌려, 시미즈도 살며시 웃음을 띄웠다. 



 ***



 “키요코 선배!”

 “오,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타-나-카, 니시노야! 업 스트레칭 하다 말고 어딜 가!”


  사와무라 다이치의 노성에 시미즈를 향해 달려가던 두 사람이 딱 굳었다. 눈동자만 굴리는 두 사람을 향해 잠시 시선을 둔 시미즈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다나카와 니시노야는 마법이 풀린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키요코 선배가… 우리를 봐 줬어…!”

 “지난 1년 동안 눈도 안 마주쳐 주었는데!!!”


  그나저나 다이치 선배, 여자 농구부한테 체육관 사용시간 넘겨주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된 거예요? 엔노시타의 물음에 다이치가 멋쩍게 웃어보였다. 


 “나도 오늘 막 타케다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라서… 우리 부실동 건축과 관련한 문제와 여자 농구부 감독의 연임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 건이 터지는 바람에 우리 쪽 일은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나…? 그리고 지난 교직원회의의 구성에도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그 때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다음번 학부모회에서 재심하기로 했고 그 때에는 학생회와 각 부 부장의 의견도 모아서 심의하기로 했대.”


  그럼 잘 된 건가…? 당분간은 다른 부에 시간을 양보하라느니 하는 소리를 안 들을 테니까, 잘 된 거 아냐? 와글와글 떠들며 2인 1조의 하체 스트레칭을 위해 타나카의 등을 인정사정없이 짓누르던 스가와라는 그 순간, 무대 쪽에서 음료와 수건을 자리에 놓고 있는 시미즈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시미즈가 웃고 있었다. 

그건 승리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스가, 스…가 선배! 저 주…죽어요!”

 “아, 미안.” 


  창자가 눌린것 같다며 엄살을 부리는 타나카를 대충 달랜 후 다시 돌아보자, 시미즈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말끄러미 스가와라를 마주 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아냐.’


 …역시, 이것도 지켜보는 사람이 가져야 할 일종의 예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