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후타마이 : 사랑니
@odknocker
진짜 성가셔 죽겠다. 후타쿠치 켄지의 인생에서 계집애들이란 그저 먼 발치에서 꺅꺅거리거나 저들끼리 떼지어 다니며 시끄럽게 구는 새떼들 같은 존재였다. 개중에 조금 예쁜 것들은 지들이 예쁜 줄은 또 귀신같이 알아서 적당히 살랑거리며 무언가를 바라는 눈으로 후타쿠치를 노려보곤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니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줄 생각도 없어.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는 건 좀 그만 해라. 부활동을 위해 설렁설렁 걷는 옆에서 살랑거리는 여자애들에게 적당히 대꾸해주고 있는데 뒤통수에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미친 후타쿠치 자식아! 빨랑 안 와?”
…저건 새도 아니다. 프테라노돈이지. 후타쿠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야! 넌 좀! …여자애가!”
“뭐래, 후타쿠치가. 주장 주제에 제일 늦는게 말이 되냐!”
애들 다 와 있어. 거만한 턱짓으로 체육관 쪽을 가리킨 나메츠 마이가 살벌하게 입꼬리 끝을 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선배님들도 오신다고 했으니까,
“그 망할 엉덩이 차 버리기 전에 빨랑 움직여라?”
“진짜… 모니와 선배 대할 때 반만이라도 해 주면 안 되냐…”
딱 하나 있는 여자 매니저가 전혀 상냥하지 않아서 위로가 안 돼… 이젠 화낼 기력도 없다는 듯 똥 씹은 표정으로 나메츠의 옆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후타쿠치를 향한 마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웃기지 마 후타쿠치 켄지. 나는 너희들에게 위로가 되려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려고 있는 거야.”
그리고, 너랑 모니와 선배가 같냐? 감정 없이 툭 떨어진 단어가 후타쿠치의 잇사이에서 바스라졌다. 지끈거리는 통증이 어금니 깊숙한 곳에서부터 잇몸을 찢고 머리 끝까지 타고 올랐다. 형펀없는 얼굴이 된 후타쿠치를 등진 마이가 체육관 근처에 선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여어, 새 주장! 오늘도 굉장한 표정이구만 그래?”
“후타쿠치, 무슨 일 있어?”
익숙한 비아냥과 그보다 더 익숙한 상냥함 사이에서 후타쿠치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 익숙한 반응을 했다.
“카마사키 선배, 요즘 아주 한가하신가봐요? 취업은 손 놓으신 겁니까?”
“뭣이? 요 건방진 녀석아, 이미 면접까지 마치고 오는 길이다!”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군! 덤벼라! 애송이 스파이크 따위 몇번이고 막아세워주지! 씨근거리며 체육관을 향하는 여전히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선후배의 뒤에서 나메츠와 모니와가 서로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
“코가네가와! 만세 블로킹 하지 말랬지!”
“죄송합니다악!”
“토스를, 좀, 보고, 뛰어엇!”
“흐읍! …네,에엑!!”
모니와 선배의 토스가 그립다… 네트 너머의 카마사키 선배가 ‘너희한테는 모니와 없지- 모니와는 우리 세터지-’라는 듯 빙글빙글 웃고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아,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인사도 하는 둥 마는둥 하며 체육관 벽 한쪽에 기대어 앉았다. 급습하듯 시작된 어금니의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아주 환상적이구만.’
땀으로 시린 눈가에 나메츠의 모습이 보인다. 선배들에게 타월과 음료를 가져다 주며 웃고 있었다. 수준급 연기력이다. 연극부에 갔으면 여주인공은 떼 놓은 당상일걸. 후타쿠치는 대충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 내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젠장…병원은 싫은데.
“그러게 병원 가라니까.”
“??!!!?!”
“우리 새 주장님은… 참 손이 많이 간단 말이야.”
그러니 넌 모니와 선배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어 멍청아. 나메츠의 웃음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수건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볼에 닿는 차가운, 약간 살얼음이 낀 음료 병과…
“그거라도 먹고 끝나자마자 병원 가. 알았어?”
손 안에 떨어진, 작은 진통제 한 알.
순간, 머리를 통째로 쥐고 흔들던 통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타쿠치는 떠억하니 앞에 버티고 선 나메츠를 올려다보았다. 입꼬리가 또 살벌하게 늘어졌다. 너 말야, 여자애…라기보단 인간으로써 그 표정 어떻게 좀 안 되냐.
“…이제야 좀 봐줄 만 하네.”
정말로, 성가셔서 죽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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