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전력 60분
70번째 주제 : 이게 마지막 사랑이기를
하이큐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
67번째 주제인 [첫눈] 과 이어집니다.
오후가 반쯤 기울었을 때부터 시작된 눈은 저녁이 가까워지도록 그치지 않았다. 가랑눈이었다가 소복한 함박눈이 되어 쌓이고, 잠시 주춤했다가도 금세 흉흉한 기세로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니 이 밤 내 꽤나 쌓일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콧노래를 흥얼거려 가며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파닥거리던 오이카와가 별안간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을 본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별일이라는 듯 눈썹을 모았다.
“뭐야, 쿠소카와. 오늘 오프인데 무슨 집합?”
“...이와쨩. 나, 심장이 아파.”
이미 슬립모드로 들어선 지 오래인 휴대전화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오이카와가 과장된 몸짓으로 제 앞섶을 쥐어뜯었다. 기껏 키워놨더니! 다 소용없어! 이제 우리랑은 첫눈도 같이 안 보겠대! 훌쩍훌쩍 입으로 우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한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의 매운 손끝이 가 닿았다. 등판 정 중앙, 손도 닿기 어려운 부위에 짝! 하고 달라붙은 에이스의 손길에 오이카와가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등 뒤로 돌려 보았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고 눈물만 쏙 빠졌다.
“아프...잖아!”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냐, 멍청카와. 아프라고 때린다니까?”
“안 그래도 아프다고! 마음이! 글쎄 뭐라는 줄 알아? 토비오쨩이랑 첫눈 봤으니까 저녁엔 안 나오겠다고 했다니까?”
이게 말이 돼? 일곱 살 때부터 한 번도 안 빠지고 같이 첫눈을 봤으면서, 뭐? 토비오쨩?
이와이즈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빼액거리는 오이카와를 내버려두고, 불빛이 반짝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발신인은 오이카와를 시끄럽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너희 둘의 문제는 너희들끼리 얘기하면 안 될까? 이와이즈미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이 한 조각 걸렸다.
“어, 나야. 오랜만이네.”
[안녕, 이와쨩! 멍청카와는 옆에 있어?]
“응. 바꿔 줘?”
[아니, 됐어. 오프에 집합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어.]
한껏 비아냥대는 목소리에 이와이즈미가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까지도 징징 여운이 남는 등 언저리를 쓰다듬던 오이카와가 그 웃음소리에 이쪽을 돌아보았다. 큼큼, 목을 한 차례 가다듬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향해 휴대전화를 건네자, 오이카와는 고개를 팽 돌리며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희가 일곱 살짜리 애냐. 전화기를 돌려받은 이와이즈미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힘들다고?”
[우리 합동연습이 여섯시 반까지니까, 일곱 시 이후에는 괜찮아.]
그녀는 그 다음에 오이카와의 무례함과 쪼잔함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거 참, 장난 좀 칠 수 있지! 토비오가 인사 한 번 했다고 바로 끊냐? 얘 또 표정 찌그러져서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바보카와에게 제대로 반성하라고 전해 줘! 그럼 일곱 시 반에 거기서 보자. 두 사람 다 따듯하게 입고 나와. 알겠지?
뭐라 답할 새도 없이 다다다 이야기하고는 이쪽이야말로 집합이라서 끊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가 종료되었다. 이와이즈미는 어느 새 수화기 반대편에 귀를 가져다댈 듯 다가온 오이카와의 머리에 가볍게 제 머리를 갖다 대었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오이카와가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하는 꼴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개운한 얼굴로 웃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언제부터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았냐고 묻는다면 오이카와 토오루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첫 번째 꽃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때부터, 첫 번째 나뭇잎이 얼굴에 물을 들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첫 번째 눈송이가 땅을 향해 뛰어내렸을 때부터.
수많은 처음을 함께 했다. 앞으로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이와쨩에게 좋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에는 넷이서 함께 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곤 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녀의 옆에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우산도 잊은 채 뛰어오는 그녀의 옆에 붙은 카게야마에게 분노했다.
“미안, 늦었지!”
“안녕하십니까, 오이카와 선배, 이와이즈미 선배.”
“오랜만이다. 카게야마.”
“넵!”
이와이즈미가 카게야마와 인사하는 동안, 오이카와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뚫어져라 카게야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의 압박을 카게야마가 눈치채기 전에, 그녀가 오이카와를 불렀다.
“토오루쨩! 너 이게 뭐야. 따듯하게 입고 나오라고 했잖아!”
“으....응?”
그녀의 말에 오이카와가 자신의 차림을 돌아보았다. 니트 스웨터 안에 티와 셔츠, 코트까지 갖춰 입었는데. 왜? 뭐가 문제냐는 듯한 눈빛에 그녀가 조용히 목에 두른 머플러를 풀어 오이카와의 목에 둘렀다.
“켁! 자, 잠깐만! 야!”
한 바퀴 휘 두르더니 콱! 하고 조여오는 통에 오이카와가 숨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대로 머플러를 당겨 오이카와와 높이를 맞추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운동선수가 말이야. 감기 들려고. 이와쨩 봐, 머플러에 장갑까지 챙겼잖아.”
이거라도 두르고 있어. 그녀는 그대로 오이카와의 목에 머플러를 칭칭 감아 리본 모양으로 매듭까지 지어 놓고는 만족한 듯 오이카와의 팔을 팡팡 두드렸다. 좋아! 이쁘다! 핫핑크 색 머플러로 묶여 예쁘게 포장된 오이카와를 보던 카게야마가 제 목에 둘린 머플러를 내려다보았다.
“선배,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 사용하십시오. 하고 카게야마가 그녀에게 제 푸른색 머플러를 내밀었다. 그녀는 너도 운동선수다, 감기 들어서 안 된다고 거절했지만 카게야마는 한사코 입 꾹 다물고서 머플러 걸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결국 그녀가 카게야마의 머플러를 집어들고는 착착 둘러서 리본 모양으로 매듭을 지어 묶었다.
“자, 이제 됐지?”
만족한 카게야마가 희미하게 웃어보이는 것도, 이와이즈미의 잠깐 있다 가라는 만류에도 가 보겠다며 인사해 놓고서는 약간 망설이며 돌아서는 모습도 오이카와만이 알아차렸다. ...싫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도 저런 식으로 보인다는 건가. 반복되는 자기혐오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한 채로 눈을 감아버렸다. 어둠 속에서는 피부에 내려앉는 섬뜩한 한기와 목을 감싼 머플러에서 나는 그녀의 향기만이 안타까울 정도로 생생했다.
이러면서도, 사랑이 아니라고? 오이카와는 자신의 멍청함에 질려 버렸다. 이와쨩이나 그녀가 바보카와라고 놀려도 반박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 오이카와 토오루가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몹쓸 것이었다니. 부디, 이게 마지막 사랑이기를.
---------------------------------------------
뭘 쓴 건지 모르겠읍니다. 좋은 밤 되세요...매번 지각 죄송합니다ㅠㅠ
'전력60분' 카테고리의 다른 글
79번째 주제 : 붙잡다 (0) | 2016.01.09 |
---|---|
71번째 주제 : 눈사람 (0) | 2015.12.14 |
69번째 주제 : 사랑받고 싶은 건 당신 뿐 (0) | 2015.12.05 |
67번째 주제 : 첫눈 (0) | 2015.11.29 |
65번째 주제 : 질투심 (0) | 2015.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