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째 주제 : 첫눈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

 

 

 

오이카와 토오루는 어쨌든 기본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다. 스포츠 강호교의 주전 세터이자 주장, 미남 고교배구 선수로 스포츠 잡지에 기사가 실릴 만큼 (오이카와는 기사를 보고 “분명히 미남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 강조하는 건 조금 싫을지도-” 라고 태연히 종알거린 후, 이와이즈미에게 후두부를 강타 당했다.) 멀쩡한 얼굴을 하고서 시끄럽게 꺄-꺄- 거리며 따르는 여자아이들에게도 팬서비스는 확실히.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특정 인물들과 대면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시 예의를 잃지 않는 처세는 그 나이대의 소년이 몸에 익히기에는 너무 완벽한 것이어서 약간의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그에 대하여 일찍이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저 녀석의 일생이 가증스러운 연기로 점철되어 있다” 라고 평했다. 그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고, 오이카와는 “너희들 사이에서의 내 취급, 좀 너무하지 않아?” 라며 칭얼거렸다. 오이카와를 향한 세간의 평을 비웃으며 이와이즈미나 그녀의 오이카와에 대한 취급이 하찮은 이유는 그가 소꿉친구인 두 사람의 앞에서는 완전히 풀어지다 못해 늘러 붙은 것 같은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쩍 차가워진 공기에 옷깃을 여미는 날이 많아지는 어느 밤 창문 밖에 소리도 없이 눈송이가 쌓여가고 있었다면, 오이카와는 당장 휴대전화를 들어 라인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할 것이다.

 

[밖에 봤어?]

 

한참 동안 대답이 없는 라인 창을 바라보다 오이카와는 또 메시지를 작성할 것이다.

 

[눈 와! 함박눈이야! 첫눈인데! 진짜 많이 온다니까?]

[ㅇㅇ봤음]

[어 눈 많이 오네.]

 

두 사람의 심드렁한 대답에 일단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너희들과 함께 첫 눈을 보고 싶다는 말을 구구절절이 라인창에 두다다다 쏴대기 시작하는 오이카와 덕분에 쉴 새 없이 웅웅거리는 휴대전화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채팅창의 알람을 꺼둘 것을 고민하고, 그녀는 겉옷을 챙기며 짧은 한 마디를 적을 것이다.

 

[...나와.]

 

그리고 매번 그랬듯이, 세 사람은 나란히 공원에 앉아 그녀가 텀블러에 담아 가져온 차나 이와이즈미의 어머니가 챙겨 주신 주전부리들을 나누며 멍하니 내리는 눈을 바라볼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눈 구경 모임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셋 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첫 눈은 셋이서 맞이하는 것이 관습처럼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센다이 역 앞에 서서 상기된 얼굴로 오늘 오후부터 저녁 사이, 미야기 전역에 올해의 첫 눈이 내릴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는 지역의 아침 뉴스 기상 캐스터의 순서가 다 지나가도록,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감기 몸살에 장염이 겹친 것 같은 색의 하늘이 하루 종일 흐느적거리다가 부활동 일지와 음료박스를 들고 제 2체육관으로 향하는 그녀의 소매 위에 눈송이를 하나, 둘 떨어뜨렸다.

 

“눈?...벌써?...”

“오후부터 시작되어 밤늦게까지 내린다고 했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그녀가 뒤를 돌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 꾸벅, 폴더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여 보인 카게야마가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손? 뭐? 왜? 의문을 담아 눈을 깜박여 보아도 카게야마의 입은 꾹 다물린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아, 하는 작은 탄성과 함께 어깨에 맨 박스의 손잡이를 카게야마에게 건네자, 그제서야 만족한 듯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받아 들었다.

 

아이고, 도와주고 싶었으면 말을 해야지 이 어린 백성아...... 그녀가 딱한 마음에 카게야마의 어깨와 팔 사이를 토닥여 주었더니 카게야마는 전면에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 사이 눈송이는 점점 커져서, 손바닥을 내밀고 있으면 그 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가 곧 체온에 녹아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수만 개의 패턴이 모여 만들어진 눈송이들이 주위의 소리를 잡아먹으며 내려앉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그녀가 문득 중얼거렸다.

 

“올해의 첫 눈은 카게야마와 함께, 인가? 매번 쿠소카와나 이와쨩과 함께였는데.”

“......”

“원래 첫 눈은 보고 싶은 사람과 함께 보는 거랬는데. 미안하게 됐어,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그녀의 말에 문득 가슴이 선뜻해졌다. 저지의 지퍼는 제대로 잠겨 있었고, 온도 자체는 낮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다지 춥지도 않은데. 어째서일까. 답하지 못한 채로 괜히 음료 박스만 추스르던 카게야마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라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어순이 고장난 어학용 기기 같은 카게야마를 보던 그녀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밖에 보고 있어?]

[응]

[지금 밖이야]

 

...송신. 짧은 답변이 전송되고 잠시 후, 통화를 요청하는 진동 소리가 울렸다. 세이죠는 부활동 중 아니야?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아 든 그녀의 귀에 얄미울 정도로 활기찬 말소리가 차랑차랑 울렸다.

 

“얏호, 올해 첫눈이야! 저녁에 나올 거지?”

“거절한다, 쿠소카와. 끊는다? 나는 이미 첫눈 봤으니까.”

“...누구랑?”

 

그녀는 순간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마이크 부분을 막고, 약간 떨어져 있던 카게야마를 손짓해 불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 선배입니까? 라며 순순히 다가왔다. 장난 좀 쳐 보자. 카게야마, 오이카와 선배,는 빼고 그냥 인사만 해? 자. 하나, 둘!

 

“지금 옆에 있어. 자, 인사해.”

“...안녕하십니까! 오이카와 선배!”

 

오이카와 선배, 는 빼고! 그녀가 옆에서 미간을 찌푸렸지만 오이카와는 저 우렁찬 안녕하십니까! 에서부터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린 듯 한 톤 낮아진 소리로 답했다.

 

“...토비오쨩?”

“에- 너무 쉬웠어. 저 자동응답기를 믿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저녁에 이와쨩이랑 나올 거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그녀와는 달리 수화기 너머의 오이카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약간 길어진 침묵에 그녀가 ...오이카와? 라고 부르자, 호흡을 고르는 작은 한숨과 함께 오이카와가 답했다.

 

“미안, 지금 집합이라. 끊을게.”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끊겨버린 통화에, 그녀는 잠시 멍하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통화 종료를 알리는 화면에 끊임없이 눈이 부딫혀 녹아버리고 이내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