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번째 주제 : 이유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드림

미래날조 주의 / 캐붕주의





손끝이 화끈거린다. 아무리 히나타의 스파이크라지만 3학년이 되면서 제법 파워가 실렸다. 손끝을 노려 터치아웃을 만드는 연습이라 히나타가 성공을 하면 할수록 손끝이 화끈거리게 된다. 저 자식, 내가 세터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연습광이다보니 매번 이렇게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적당히 좀 하라며 티격태격하는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때마다 달려와서 떼어놓고 혼내 줄 사람이 없어 매번 야치를 곤란하게 해버리고 만다. 테이핑을 다시 해야 하나, 생각했다가 시계를 보고 관두었다. 곧 끝날 시간이군. 야마구치와 야치가 감독님, 타케다 선생님에게 불려간 지 30분 정도 지났으니 곧 돌아올 것 같았다. 보통 리베로 다음으로 신장이 작은 포지션인 세터가 이 정도로 블로킹을 연습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블로킹도 스파이크도 서브리시브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배구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내 손 안에서 통제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다. 공을 만지는 순간, 카게야마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이, 카게야마! 츠키시마! 다시 한 번!"


네트 건너편의 히나타가 기세좋게 외쳐 온다. 카라스노의 새로운 작은 거인께서 1학년 세터와 속공 연습을 맞춰보겠다며 카게야마와 츠키시마를 벽으로 사용하시는 중이었다. 몇번쯤 히나타의 스파이크를 완전히 막아버리고 "어라, 셧아웃 해버렸네. 미안!" 비아냥거리는 바람에 히나타를 팔짝팔짝 뛰게 만든 츠키시마가 네트 옆에서 이죽거렸다. 


"꼬맹이, 왕님이랑 삼년 쯤 호흡을 맞추더니 대왕님이 다 되셨나?"


이 녀석은 주식이 뱅글뱅글 꼬아 만든 곤약 조림인가. 그래도 1학년때처럼 찌르고 벨 것 같은 느낌은 많이 누그러졌다. 굳이 비교하자면 네코마의 주장이었던 쿠로오 씨의 능글능글한 모습이 조금 더해진 느낌. 아직도 네코마 OB와 우리 선배들은 종종 연락하며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느라 바쁘다고 했다. 쿠로오 씨는 네코마가 봄고 진출, 카라스노는 미야기현 준우승에 최고급 초밥을 걸었고, 스가와라선배와 다이치선배는 카라스노의 봄고 우승에 마츠자카 소고기를 걸었다. 쓰레기장의 결전은 우리 대에도 숙명이 된 셈이다. 다시 한 번, 도쿄의 오렌지 코트로- "히나타 선배, 갑니다!" "응!" 카게야마가 도무지 도움되지 않는 방법으로 알려 준 토스를 1학년 세터는 당연하게도 잘 따라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의 토스든, 어떤 토스든 고맙기 그지없는 토스니까 반드시 결정짓는다는 히나타답게 훌쩍 날아올랐다. 


"!!!" 이번엔 츠키시마를 노렸다. 오른손 윗부분을 살짝 닿고 옆으로 떨어져내린 공은 아슬아슬하게 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다. 네트 반대편에 가볍게 착지한 히나타가 한껏 개구지게 웃었다. "뭐야, 츠키시마! 너도 연습이 되니 좋잖아!" 그리고 이걸로 동점이니까! 자신만만하게 허리에 손을 댄 히나타가 츠키시마를 올려다보자, 츠키시마는 불쾌하다는 듯 안경을 치켜올렸다. 


"이녀석들, 다음 주가 시합이잖냐! 그만 뛰고 잽싸게 집에가서 밥 팍팍 먹고 자라!"


마침 돌아온 우카이 감독님의 목소리에 떠밀려 정신없이 쿨 다운이다, 체육관 정리다 뛰어다닌 후, 언제나처럼 다 같이 학교를 나왔다. 야마구치가 "오랜만에 다 같이 고기만두라도 먹을까?" 라고 운을 띄웠다가 부원 모두의 고기만두 값을 지불하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불과 이년 전이었는데 굉장히 아득하게 느껴졌다. 말 없이 손에 놓인 동그란 카레만두를 들여다보았다. 하나는 처음에는 고기만두, 그 다음에는 야채만두를 골랐다가 카게야마가 먹는 카레만두를 보고 배를 잡고 웃은 다음부터는 카레만두만을 고집했다. 어쩐일인지 물끄러미 만두를 바라보기만 하는 카게야마에게 야치와 야마구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카게야마. 어디 안 좋아?"

"아... 아니. 괜찮아."


멍하니 들여다보던 카레만두를 입에 가져다 대는 카게야마를 보면서, 야마구치와 야치는 서로를 쳐다보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응. 대화 같은 눈길이 오간 끝에 야치가 살짝 운을 띄웠어.


"저기, 카게야마. 하나한테 전화나 메일 안 왔어?" 응. 카게야마가 만두를 입에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카게야마 너는 하나한테 전화나 메일 한 적 없어?" 응. 고개 끄덕임 버튼이라도 달린 것 같은 반응에 야치와 야마구치가 다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한 번도?" 응. 변함없는 끄덕끄덕에 야치가 한숨을 쉬었다. 타다시, 하나가 이탈리아로 간 지 얼마나 됐지? 이제 두 달 다 되어가. 헤어진거야? 너희들? 야마구치는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카게야마의 다른 쪽 옆에서 제 몫의 만두를 와구와구 다 먹어치운 히나타가 끼어들었다.


"왜 하나한테 연락 안 했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아?"

"당연히 궁금하지 히나타 멍청아!"

"멍청하다고 하는 사람이 멍청한거야 카게야마 멍청아! 그리고 궁금하면 연락하면 되잖아! 왜 안했는데!" 이제 야마구치와 야치는 숫제 싸울 기세인 두 사람을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망설이는 사이에 한 입에 남은 카레만두를 우겨넣은 카게야마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해서, 뭐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이유도 용건도 없이 전화하는 건 실례고. 시차, 도 있으니까. 혹시 안 받으면 어쩌지. 하고..."


뜻밖의 말에 세 사람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귀가길에는 풀숲의 귀뚜라미 소리만 울렸다. 그 때, 헤드폰을 낀 채 살짝 뒤에서 떨어져 걷던 츠키시마가 한숨을 쉬며 헤드폰을 내려 목에 걸었다. 


"이유가 꼭 있어야 해?"

"뭐?"

"왕님은, 이유가 없으면 연인에게 전화도 걸지 못하는건가, 하고."


크윽, 하고 분한 듯 카게야마가 뒤돌아섰다. 금방이라도 도화선에 불꽃이 붙을 것 같은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한동안 안 싸운다 했더니. 괜히 하나의 이야기를 꺼냈나 싶어 야마구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때,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카게야마. 이유가 뭐가 필요해?" 히나타가 제 편을 드는 일이 거의 없는 츠키시마가 놀라는 사이, 히나타의 경쾌한 목소리가 밤 하늘을 울렸다. "그냥. 보고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게 이유잖아. 다른 용건이 꼭 필요해?" 


[다른 용건이 꼭 필요해?]


히나타의 목소리가 머릿속의 망설임을 싹 지워버린 것 같았다. 국제전화는 전화요금이 많이 나올테니까, 라며 야치가 하나와 통화할 때 많이 쓴다는 프로그램을 휴대전화에 설치해 주며 사용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카게야마는 침대에 정좌하여 앉은 후 심호흡을 했다. 두어 번 숨을 고른 후, 비장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끊겼다. 약간의 침묵 후.


"토비오?"


하나의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참고 있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역시, 이유는 필요 없었다. 

---------------------------------

억...너무 늦게시작해서 한시간 조금 넘었는데 거의 종료시간에...마침.

하나가 미국....아니 이탈리아 가버린 직후의 이야기.

이전의 전력 "너를 생각하는 밤" 보다도 살짝 전으로, 이 다음부터는 전화를 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