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주제 : 진실이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비밀을 지키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드림
네임버스 AU. 카게야마 드림인데 카게야마 안 나옴 주의.
어서 오십시오. 쿠로오는 후우-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 손님은 이제 막 학생 티를 벗은 것 같은 젊은 여성이었다. 무언가 큰 각오를 한 듯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는 것이 귀여웠다. 쿠로오의 가게에 오는 손님은 딱 세 부류로 정해져 있다. 타투를 사랑하는 매니아, 상식의 나침반이 살짝 삐뚤어진 위험한 종자들, 네임을 숨겨야 하는 네이머들. 저 귀여운 아가씨는 아마도 세번째일듯 했다. 그녀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가게는 아가씨의 취향에 맞을 만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장르가 달라. 예를 들면 소녀만화와 악마숭배 비디오 테잎만큼이나 다르다. 하지만 그녀는 곧 쿠로오 쪽으로 곧장 다가왔다. 손님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위해 쿠로오는 담배를 눌러 끄고는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재떨이를 꺼냈다. 애연가이지만 작업장에 담배꽁초를 쌓아두는 것은 취미가 아니었으니까. 눈앞에까지 다가온 그녀는 확실히 더욱 어려 보였다. 성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성년자는 안 받는다는 말을 해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했다. 쿠로오의 고민을 알아챈 듯, 그녀가 살짝 웃었다.
"저 학생 아니예요."
아, 네... 배시시 웃는 그녀에게 이끌려 저도 모르게 헤죽 웃어보인 쿠로오는 손가락을 깍지낀 후 물결을 타듯이 움직여 손을 풀며 질문했다.
"네임히든은 영구적이지 않아요. 아시죠?"
"네."
그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아플 거구요. 길게 가야 두 달? 보통은 한달 보름 정도면 다시 오셔서 작업해야 합니다. 엄-청 아프다는 말에 그녀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럼요. 아프고말고요. 이렇게 겁을 줘 놓으면 대부분의 네이머들은 얼마나 아픈데요? 라고 묻는데, 그럼 쿠로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네임이 새겨질 때 만큼 아파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한 반수 정도 되는 네이머들은 뒷걸음질치며 가게를 나서곤 했다. 하지만 이 아가씨는 당돌하게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려둘 수만 있다면 괜찮아요." 라는 말과 함께 내민 오른쪽 손목 안에는 유려한 글씨체로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이름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지,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읽어낼 수는 없다. 글자라기보다는 문양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대가 가까이 있을 때에만 문양 속에서 이름이 타오르는 듯 붉은 빛을 띈다. 이 아가씨의 경우에는 엄지손가락 아래 토톰하게 살이 올라와있는 부분부터 시작되어 손가락을 대면 맥박이 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약간 길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얼핏 보면 검은 날개같은 문양이다. 모양이 꽤 예쁘게 빠졌다. 쿠로오는 흥미로운 듯 네임을 살피며 말을 걸었다.
"네임을 꼭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왕 생겨난 거, 주인 찾아서 예쁜 사랑 하시면 되잖아요."
"사랑을, 하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쿠로오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고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네이머 할아버지가 와도 못 찾게 꼭꼭 숨겨드리겠습니다." 장난스럽게 대꾸한 쿠로오가 도구를 준비하고, 네임 부위를 고정시켰다. 어째 청소년에게 못할 짓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신분증도 확인했으니 거리낌은 없었다. 네임부위에 감염방지를 위한 소독을 한 후 얇게 연고를 발랐다. 맥박이 뛰는 부위의 네임히든은 매우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므로 쿠로오는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잊어버린 채 조심스럽게 바늘을 움직였다.
"이제 한달 뒤에 한번 더 손보도록 할게요. 처음 네임히든을 하면 새겨질 때 처럼 타는듯이 아플거예요. 이름 주인 쪽에서 손님을 찾느라 그런다더군요. 한 일주일 정도만 기다리면 안정화가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1~2개월에 한번씩 보수작업만 해 주면 되죠. 어때요? 문양은 마음에 드시나요?"
쿠로오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손목의 네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날개와도 같은 문양의 아웃라인을 잡고, 붉은색으로 날개를 사로잡은 가시장미덩굴을 그렸다. 절대로 들키지 말라는 기원을 담은 문양이었다. 타투이스트 쿠로오 테츠로의 회심의 역작을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마음에 들어 했다.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가게 문을 나서려는 그녀에게, 쿠로오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아무래도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애인분은 네임이 없으시다면서요. 그럼 애인분께 손님의 네임이 새겨질 수도 있는 건데 왜 굳이 그렇게 숨기려고 하죠?"
그녀는 가게 문을 잡고 나가려던 자세 그대로 뒤돌아섰다. 쿠로오가 네임히든을 하는 내내 본 중에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제 진실이 그 애를 다치게 한다면, 비밀을 만들어 지키는 게 더 나으니까요."
그러고는 다시 한 번 꾸벅,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딸랑, 하는 도어벨 소리가 청량하게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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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 드림 아닙니다...(쿠로오쿠로오쿠로오 남발을 하며 적어놓은 자가 할 말은 아님)
쿠로오 은근히 손재주 있을 것 같다...타투이스트를 할만한 아이들을 생각해보았는데 쿠로오만한 인재가 없었다.
네임버스 설정 흥미롭다...완전한 혼파망과 앵스트가 가능한 설정.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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