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드림


 

대화가 필요해

 



 



그녀는 메인 아레나의 주 출입구를 재빠르게 빠져나와서, 로비를 지나 서브 아레나로 이어지는 회랑 근처로 우시지마를 몰았다. 우시지마는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얌전히 그녀에게 손목 부근의 옷자락을 틀어 잡힌 채 걸음을 옮겼다. 회랑 근처의, 조경이 되어 있는 공터에 도착한 그녀가 주위에 인적이 드문 것을 확인하고는 우시지마를 놓아주고 숨을 몰아쉬었다. 


몸을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콱콱 딛으며 달려온 발목이 시큰거린다. 뒤늦게 찾아온 고통에 오만상을 찌푸리자, 우시지마의 얼굴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녀는 이를 꽉 물고 우시지마를 노려보았다.


“와카토시 군... 바로 어제, 내가 싫어하는 일은 안 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


어쩜. 누가 ‘우시지마’ 아니랄까봐 고집스럽기가 황소 같다. 그녀의 힐난에도 뚱하니 서서 침묵하던 우시지마가 볼멘소리를 냈다.


“사쿠사가...”

“오미 군이 왜요.”

“...사쿠사가 당신의 곁에 있으면 심장이 아픕니다.”


겨우 한 마디를 내어놓은 우시지마의 미간이 불유쾌한 것을 견디듯 찌그러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사쿠사 키요오미가 불편했다. 적으로 만났을 때도 마음에 거리낌은 없었던 사쿠사를 마음속으로부터 꺼리게 된 것은, 쿠로와시키 조별 리그 둘째 날 네트를 사이에 둔 사쿠사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였다.


[와카토시 군, 미안. ...아마도 시작해버린 것 같으니까, 미리 사과할게.]


무엇을? 이라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미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서 눌러버리자. 반드시 이기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짐대로 우시지마의 팀은 사쿠사 키요오미의 팀을 이겼다.


팀은 승리했지만 우시지마는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경기 이후로 그녀를 마주하는 거의 모든 순간, 그 옆에는 사쿠사 키요오미가 있었다. 사쿠사의 오랜 팬이었다는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림자처럼 곁을 지키는 사쿠사의 호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제 겨우 ‘싫다’를 벗어난 자신과는 기본 호감도가 다르다. 모두가 떠난 출발선에 한참 동안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아득함이 이따금 심장을 찌르는 통증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부터 시작해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종착점이 정해지지 않아 혼란스러운 우시지마의 뇌관을 당긴 것은 이번에도 사쿠사 키요오미였다.


“와카토시 군.”


선수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 구석에 기대어 있던 사쿠사 키요오미가 몸을 일으키고 우시지마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흐지부지하게 되는 건 싫으니까.”


절대로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희미하게 웃으며 사쿠사가 물었다.


“와카토시 군도 그렇지?”

“...그래.”


그럼, 경쟁이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옅게 남아있던 웃음기를 지워낸 사쿠사가 새카맣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우시지마를 노려보다 그대로 몸을 돌려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우시지마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곧 시선을 거두고 선수 대기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녀는 화단의 경계석에 걸터앉아 괴로운 것을 참아내는 얼굴로 그녀의 앞에 버티고 선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올려다보았다.


...이 지경이 되도록 그 감정에 이름 하나 붙일 줄도 모르면서, 바보 같을 정도로 솔직하게 마음을 맞부딪혀 오는 사람. 그녀는 흔들리는 개암빛 눈동자를 향해 말했다.


“내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부딪히지 않겠다고 했죠.”


이어지려는 그녀의 말을 잘라내듯 우시지마가 물었다.


“그래서, 싫었습니까.”

“.......”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쏟아지는 듯한 시선이 그녀의 아주 작은 반응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시선을 피한 그녀를 바라보는 우시지마의 눈동자에 미약한 기대를 담은 빛이 떠오르는 순간, 메인 아레나와 연결된 회랑 쪽에서 불쾌한 기색 가득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와카토시 군. 이건 반칙이야.”

“너와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한 기억은 없다. 사쿠사.”


순간 험악한 표정이 된 우시지마가 사쿠사를 돌아보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잠시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고른 사쿠사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시합이 끝난 직후 외에는 늘 깔끔함을 유지하던 사쿠사의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어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항상 냉정 침착하던 그 사쿠사 키요오미가, 나를 찾겠다고 땀에 젖을 정도로 마루젠 아레나를 뛰어다녔다고...? 그녀의 당황을 뒤로 하고, 사쿠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당신, 부상자라는 자각은 없는 겁니까.”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오미 군은 언성을 높이지 않을 때가 압도적으로 무섭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사과했다.


“잘못했습니다...”

“와카토시 군도. ...좋다고 끌려가? 안아 들어서라도 못 뛰게 했어야지.”


사쿠사의 말에 우시지마가 깨달음을 얻은 듯 물었다.


“...그래도 되나?”

“안 돼.” “안 돼요.”

“...그렇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우시지마가 재차 물었다.


“그럼, 업는 것은 괜찮은가?”

“...그것도 안 돼.”

“사쿠사, 상대의 신체에 닿지 않으면서 부상자를 부축하는 방법 같은 것은 없다.”

“...나도 아니까 그만 말해. 실언이었어. 잊어.”


이게 뭐야...


머리 위에서 진행되는 실랑이를 들으며, 그녀는 방금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모든 걱정들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마키노 선배의 말이 맞았다.


‘스스로를 속이려 들지 말고, 지금 당장 어떤 결론을 내려고 하지도 말고.’


잠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 언젠가, 마음이 원하는 상대가 드러날 때까지. 그녀는 언제 험악한 공기를 내뿜었냐는 듯 방금 준결승전의 시합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간 두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와카토시 군, 오미 군.”

“......???”


어쩌면 그녀는 물음표나 말줄임표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돌아갑시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겨울의 입구에서 만난 카메이 아레나 센다이 체육관. 슈바이덴 애들러스의 깃발이 가득한 로비를 지나며 취재진용 출입증을 들어 보인 그녀가 어깨가 들썩이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에어 파스 냄새!’


몇 년 전, 봄고의 취재로 카라스노를 인터뷰하던 그녀가 ‘시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이제는 블랙 자칼의 선수가 된 당시의 히나타 군이 한 대답이었다. 당시에는 ‘독특한 감상이네요.’ 라고 대답했지만, 이제는 왠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2018-19시즌 V리그 Division 1의 영원한 라이벌, 슈바이덴 애들러스와 MSBY 블랙 자칼의 1차전은 히나타군의 V리그 프로 데뷔전이자, 쿠로와시키 이후 와카토시 군과 오미 군의 재대결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오늘은 누가 마지막까지 코트에서 웃을 수 있을까. 그녀는 언제나처럼 프레스석 맨 앞자리에 마련된 그녀의 지정석에 앉아 웃음지었다.



[드디어, 카메이 아레나 센다이 체육관 도착!(사진)]

[두 사람의 오늘 시합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라인 알림을 확인한 사쿠사 키요오미가 마스크 아래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가, 대기실 밖의 소란에 질려 미간을 구겼다.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주제에 이곳저곳에서 일을 벌이고 키우는 히나타 쇼요가 또 한 건 해낸 것 같았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녀석들이 열심히 떠들어대는 가운데에서, 사쿠사는 흔들림 없이 묵직한 우시지마의 목소리를 잡아내고는 몸을 일으켜 대기실을 나섰다.


“...와카토시 군, 쿠로와시키 때에는 나를 열받게 했었지.”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사쿠사.”


오늘에야말로 절대로 너를 이길 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늘도 프레스석의 맨 앞자리에 앉아 눈을 빛내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웃는 얼굴이 몹시 보고 싶었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은 우시지마와 사쿠사가 서로에게 입꼬리만을 올려 웃어 보였다. 


어쨌든, 그들에게는 아직도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높은 전자음이 수천 명의 관객이 운집한 카메이 아레나를 휘돌아 울렸다.

 





대화가 필요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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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먼지라고 합니다.


우선 이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히 한 달 전, 이곳에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의 첫 번째 이야기를 올리는 제 앞에 지금 이 시각의 제가 펑! 하고 나타나서

‘너는 앞으로 한 달 동안 공백 포함 9만자 짜리 이야기를, 플롯도 없이 매번 실시간으로 두드리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면 저거 완전 미쳤다고 했겠지요. 제가 그 미친 짓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읽어주시고 즐거워해 주신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이 이야기의 키요오미와 와카토시를 좋아해주시고, 종종 일처다부제를 외쳐 주셔서 저도 실실 웃으면서 즐겁게 두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트와 댓글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익명성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을 위해 페잉 주소도 함께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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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다른 이야기로(외전이라든가!)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