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쿠사 키요오미 드림


 

대화가 필요해

 



 

 



“왜 그러세요?”


그녀는 ‘너희 팀 선배가 지금 나한테 주말드라마 남자주인공 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혹시 뭔가 아는 게 있니?’ 라는 의문을 가득 담아 카게야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미야기 2대 물음표 중 하나인 카게야마 토비오는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앗! 하고 깨달음을 얻은 듯 말해 왔다.


“혹시 내용물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구겨지지 않게 넣고 왔는데!”


...아냐, 됐어. 물어볼 상대를 잘못 택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보기만 해도 황송스러운 고급 종이와 티켓을 향기나는 봉투에 집어넣은 다음 파일 홀더에 끼워놓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게야마 선수! ...감독님, 시작해도 되나요?”

“...???”

“잠깐, 조정 좀 하고... 오케. 시작합시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멀뚱하니 카메라를 바라보는 카게야마에게, 그녀는 카메라의 불이 들어오기 전에 양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반사적으로 그녀를 따라 입꼬리를 끌어올린 카게야마의 표정이 마침 슛에 들어간 카메라에 찍혀 아주 볼만해졌다. 맞은 편의 스탭들이 오디오를 먹지 않는 볼륨 내에서 빵빵 터지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눈썹 한올 흐트러뜨리지 않고 멘트를 시작했다.


“네, 오늘 시합의 일등공신! 세계선수권에서 5연속 서비스 에이스로 프랑스를 흔든 파워 서브를 유감없이 보여 준, 슈바이덴 애들러스의 카게야마 토비오 선수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카게야마 선수!”



 

***



 

배은망덕한 후배의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마키노 선배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응해 주셨다. 역시 브이리거들의 여신! 감사의 의미로 바친 깔루아 밀크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자세로 음미하며, 선배가 예의 그 황송스러운 봉투에서 티켓을 꺼내 들었다.


“...쿠로와시키?”

“네에.”

“올해는 C대랑 센다이 프로그스가 나오겠구나.”

“그흐렇습니다아~”

“그런데 우시지마 선수는 굳이 왜 이걸 너에게?”

“그으러니까요!”


이쪽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걸 굳이 보내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애초에 이 고급진 초대석의 위치보다 그녀의 지정석인 프레스석 근처가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기에는 더 좋다. 그, 물론, 일하러 가지 않을 거면서 붙어 있기에는 좀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눈치를 봐 가며 몰래 사쿠사 선수를 응원할 수 있는 자리를 따로 만들어 뒀는데에! 


남몰래 분해하는 그녀를 느긋한 얼굴로 바라보던 마키노가 내용물이 반쯤 남은 컵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쓸며 말했다. 아레나 1열의 좋은 점은... 그거지.


“스파이커의 동작이 잘 보인다?”

“선수들과 시합 중 아이컨택이 가능하다.”

“에?”

“뭐야, 그게.”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고, 또 동시에 반응을 한 다음 잠시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스파이커의 동작이 잘 보인다...”

“일하러 안 간다면서.”

“공부예요, 공부.”

“아주 속이 시커먼 공부구나.”


헤헤, 웃으며 얼버무리는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얼마 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 그럼 나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스피치 강습을 받든가 해야지...]

[...???]

[문답무용. 배구선수라면 더 좋은 플레이로 보답하시죠.]


“아 맞다...!”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한 그녀의 옆에서 여유롭게 바텐더에게 빈 잔을 들어 추가 주문을 마친 마키노가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맞아?”

“얼마 전에... 사무소로 전화를 걸어왔었어요. 까맣게 잊고 있었네.”

“헤에- 정말-?”

“와, 선배 진짜 남의 일이라고....”

“아하하, 아니야. 정말 궁금하다니까? 그래서,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데?”



 

***



 

“......누구시라구요?”

“우시지마 와카토시입니다.”


자기 이름 말하면서 동굴 같은 에코가 깔리는 남자가 이 나라에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왜 전화한 거지? 내가 저번 인터뷰 끝나고 욕하고 가서 그러나? 그보다 사무소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머리를 굴리느라 길어지는 침묵을 얌전히 기다리던 우시지마가 다시 말했다.


“구단에 부탁해 사무소 번호를 받았습니다.”

“아, 네...”


‘그런데 그쪽이 여기에 전화할 일이 뭐가 있으신지?’를 최대한 양식 있는 현대인의 언어로 포장해서 전하자, 이번에는 우시지마가 침묵했다.


음, 보인다 보여... 눈을 한번, 두 번 깜박이고 시선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흐른 다음, 손가락으로 턱을 감싸 쥐고 잠시 멈출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수화기 너머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지난번 인터뷰에서의 실수와 부적절한 기사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전자는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사과지만 후자는 아닌데요?”

“실수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으니 내 몫이 맞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습니다.”


고분고분하니 좋네. 그녀는 한결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됐어요. 우시지마 선수랑 그런 기사 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앞으론 서로 조심합시다.”

“혹시 또 당신을 곤란하게 할 수도 있으니,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 그럼 나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스피치 강습을 받든가 해야지...’


“...???”


아차, 내가 방금 소리 내서 말했나? 그녀는 서둘러 덧붙였다.


“문답무용! 배구선수라면 더 좋은 플레이로 보답하시죠.”


우시지마는 그녀의 말에 잠시 대답이 없다가, ‘후후’하고 낮게 웃었다.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십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다행입니다.”


귓속에 묵직하게 꽂히는 목소리가 바쁘신 중에 실례 많았다는 더럽게 예의바른 인사와 함께 끊어지고 난 뒤에도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방금 나랑 통화한 이 사람, 인터뷰 때마다 두 문장 이상 말하지 않는 그 우시지마 와카토시 맞아?



 

***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마키노 선배는 흐응- 하고 짧은 대꾸를 한 뒤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선약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신이여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결국 마키노 선배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테이블 위에 메모를 놓아 두고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필체에서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힘 있고 곧은 정자. 심지어 사인도 이렇게 정성 들여 꾹꾹 적어넣은 이름 넉 자다. 뚝뚝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 카게야마군 마저 하트가 들어가는 꽤 팬시한 사인을 쓰고 있는데 말이지. 


한 번 사인 바꿔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봐야지. 그녀는 피식피식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우아한 종이 위에 적힌 열한 자리 숫자를 눌렀다. 멘트나 음악도 일절 없는 정직한 통화연결음이 웃겨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데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우시와카?”

“......”

“대답하시오, 우시와카아!”

“......와카토시 군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낮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살짝 올랐던 취기가 싹 사라졌다.


“...사쿠사 선수?”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갑작스러운 최애의 등장에 그녀는 완벽하게 당황해 허둥거리며 외쳤다.


“어, 그, 이거, 우시와카 번호...어? 맞는... 근데 사쿠사...어??”

“와카토시 군 번호로 거신 것 맞고, 대신 받았습니다.”


모임 중에, 와카토시 군 휴대전화에 익숙한 이름이 떠 있길래. 말끝을 약간 웅얼거리는 습관과 약하게 내쉬는 한숨 같은 숨결이 남는 것까지 귓가에 지나치게 생생하다. 이거...심장에 나쁜데.


“역시 꿈인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최애가 후, 하고 날숨에 미약한 웃음기를 섞어 보냈다. 이것 봐라.


“웃어...?”

“실례. 와카토시 군이 돌아오면 전화가 왔었다고 전하겠습니다.”

“네에- 부탁합니다아.”


헤헤헤, 하고 웃는 사이 전화가 끊어졌다. 이상하기도 하지. 우시와카한테 전화를 했는데 왜 우리 사쿠사 선수가 전화를 받냐. 신기한 체험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스르르 잠에 빠졌다.



 

***



 

“......”


사쿠사는 끊어진 휴대전화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테이블의 구석 자리는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데다가, 히나타 쇼요와 미야 아츠무, 카게야마 토비오가 모여 있는 반대쪽 테이블이 워낙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서 모두의 주의가 그쪽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마스크로 가려진 코와 입은 어떤지 알 수 없었으나 우시지마의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쿠사의 커다랗고 검은 눈이 아주 약간, 누그러져 있는 것을 오늘 모임에 참여한 블랙 자칼과 애들러스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사쿠사. 혹시 전화가 왔었나?”


단정히 접힌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으며 우시지마가 자리로 돌아왔다. 우시와카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사쿠사는 아무렇지 않게 우시지마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말했다.


“아니, 와카토시 군 배경 화면이 궁금해서 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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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