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엔노시타 치카라 드림 

 Pacemaker 


 캐붕과 날조 주의. 


 *이름 있는 드림주(후지노 아키)가 등장합니다. 



 아직 다 밝지 않은 하늘에 내뱉은 숨결이 형체를 이루었다가 흩어졌다. 아무리 몰아내도 끈질기게 달라붙은 졸음이 눈꺼풀 밑에 대롱거리는 느낌에 엔노시타 치카라는 손을 들어 눈가를 한 번 매만진 다음 출발선에 섰다. 


 남자 배구부의 평소 아침 연습시간보다도 이른 오전 여섯 시의 하늘은 카마이유 배색. 언뜻 보기에는 동일한 색이라고 생각될 만큼 명도와 채도가 비슷한 색들을 함께 놓는 배색법...이라고 떠올린 순간 미술 3학기 기말 테스트의 범위는 왜 학년 전체인 것일까 하는 괴로운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팔자에도 없는 구도와 배색과 황금비율에 대한 지식을 줄줄 외워야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타나카나 니시노야처럼 서예 과목을 신청할 걸 그랬다. 


 “류! 예능 과목은 무엇을 선택할 셈인가!”

 “그야 당연히 서예로 정해져 있지 않나, 노얏상!”

 “서예라니?”

 “졸업생인 누나의 정보에 의하면, 서예는 지필고사 비중이 적어 시험의 부담이 아주 적다고 하네!”

 “그렇다면!”

 “서예로!”


 순식간에 불타올라 뜻모를 구호를 합창하는 동기들을 말끄러미 바라보던 엔노시타 치카라는 설문지의 희망과목 칸에 [미술]이라는 단어를 꾹꾹 눌러 썼다. 뭐야, 치카라. 후지노는 음악을 선택했다고 하지 않았어? 따라 가지 않는 거야? 치카라는 자신들과는 달리 리얼충의 길을 걸을 줄 알았다며 시끄러워진 바보들을 엔노시타 치카라는 가늘게 뜬 눈빛 하나로 물리쳤다. 


그 후로 일년이 지나도록 지치지도 않고 시끄러운 동기들과, 어느새 그 소란스러움까지 고스란히 닮아버린 후배들을 바라보며 엔노시타는 확성기의 구령에 맞추어 상완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히나타, ...최단 기록 경신으로 붙자.”

 “바라던 바입니다. 카게야마 군.” 


 뭔가 걸어 볼까요? 패배자가 일주일간 요구르트를 사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난 기록 측정 때 최고 도달점에서 밀려버린 뼈아픈 패배를 되갚아주겠다며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제자리뛰기를 시작한 히나타와 그에 질새라 점핑을 시작한 카게야마의 뒷덜미를 나리타와 키노시타가 얼른 하나씩 잡아채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승부도 좋지만, 얼마간은 참아 주라...”

“출발점부터 2킬로미터 구간까지는 육상부의 속도제한을 따라 달리며 워밍업하는 구간이니까 말이야.” 

“네? 왜요?” 

“웜업은 끝냈습니다!”


 그야 너희들은 그렇겠지만... 복잡한 얼굴의 선배들 대신 츠키시마가 대답했다.


 “이건 그냥 평범한 학교 마라톤이지 전력질주가 아니니까. 난생처음 산책 나온 개떼처럼 뛸 생각 말고 얌전히 있지 그래?”


 개떼…! 금방이라도 츠키시마를 물어뜯을 것처럼 아르릉거리기 시작한 1학년들을 잠시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던 엔노시타가 앗차, 하고 덩어리진 후배들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오합지졸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후배들을 솜씨 좋게 손아귀에 넣고 굴리던 선배들은 이제 없다. 봄고 이후, 이미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3학년들은 차기 주장으로 엔노시타가 낙점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전에 “주장은 엔노시타지?” 라고 선수를 쳤다. 

멍청한 얼굴로 어째서 자신이냐고 질문하자 왜 네가 아니라고 생각하나며 오히려 반문해오는 선배들에게 엔노시타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팀 내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두로부터 날아드는 한 치의 의심 없는 신뢰는 종종 엔노시타의 발을 묶어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리곤 했다. 



 *** 



 “...치카라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

 “생각을, 안 하는 사람도, 있어?”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되물음에 나란히 옆을 달리던 소녀가 대번에 부루퉁해졌다. 뭐야,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면서. 말하기 싫으면 말으라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발디딤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학교 마라톤 대회의 60분 페이스메이커 준비를 위해 전체 페이스를 6분 대로 조정하는 연습 중이면서, 순식간에 시야에서 벗어나 앞을 달리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엔노시타 치카라는 흐트러지려는 호흡을 가다듬어 말했다. 


 “아키. 오버 페이스야.”

 “알아!”


 뾰족한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얌전히 엔노시타의 옆으로 돌아온 아키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동안 엔노시타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니시노야는 리베로라 안된다고 쳐도, 타나카도 있잖아.”


 아마 본인 앞에서는 죽어도 입 밖에 내지 않을 거지만, 타나카 류노스케라는 녀석은 의외로 배포가 큰 남자다. 엔노시타는 흉내도 못 낼 정도로 멘탈의 강도가 남다른 동기라면 주장 직도 잘 맡아서 할 수 있을 텐데. 


 “치카라. 혹시 타나카가 주장이라면 치카라보다 훨씬 든든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생각을 읽힌 듯한 부끄러움에 엔노시타는 딴청을 부렸다. 그의 속마음 한 귀퉁이를 절묘하게 읽어낸 소녀는 달리던 그대로 고개를 기울여 가며 집요하다 싶게 엔노시타와 시선을 맞추려 노력하다가, 툭 터뜨리듯 웃음지었다. 나란히 달려나가는 페이스와 비슷한 리듬으로 웃음소리가 팔랑팔랑 흩어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소꿉친구를 위해 아키는 기꺼이 입을 열었다. 


 “치카라도 알겠지만, 육상부 주장은 필드와 트랙 모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부주장과 주장을 같은 파트나 같은 성으로 하지 않잖아? 그래서 여름에 선배들이 은퇴한 다음 누구를 주장으로 해야 할 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생각이 많았어.”

 “전 주장은…”

“필드였어. 장대높이뛰기.”


 엔노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쾌활해 보이는 남학생이었지. 인터하이 장행식에서도 봤고, 운동장에서 몇 번 마주친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트랙, 여자 차례네? 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고개를 돌려서 내 쪽을 보는 거야.” 

“우와….” 

“응, 우와....였지. 투표도 없이 속전속결로 결정이 되는데, 당사자인 내 의견은 아무도 묻지 않는 거야!” 

“그래도 아키는 주장으로서 잘 해내고 있잖아.” 

“뭐, 선배들도 어떻게든 했던 거고. 다들 여러모로 도와주니까...아니,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그때 다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후지노네, 아키잖아. 후지노 주장님! 이라고들 말해서 왜 나야? 라고, 나도 치카라처럼 똑같이 물어봤어.”

 “그래서?”


 엔노시타의 소꿉친구는 부활동을 위해 학교 성적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상부를 사랑해 마지않는 소녀다. 부장으로 정해지자마자 육상부 주장 n년차 느낌을 내던 아키도... 엔노시타의 생각 너머로 아키의 말이 이어졌다.


 “다들 나보다 더 놀라서 그러게? 라고 외치고는 조용해졌어. 그러고는 한마디씩 한다는 게, 그냥. 왠지. 다른 사람이 주장인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 어울려서요. 역시 그렇지? 이렇게.”

 “…그건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니야?”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까, 나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담스럽지는 않았어?”

 “글쎄…부담이라기보다는...”


 아, 어떻게 잘 표현이 안 되네. 어쨌든, 남자 배구부의 다음 주장은 치카라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는 거야. 그리고 치카라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근성 있으니까! 아키는 말을 마친 후, 잠시 휴대 전화의 페이스 기록을 살피며 숨을 골랐다. 6분 대의 기록을 확인한 다음, 생각에 잠겨 달리는 엔노시타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정적으로 치카라, 주장을 아주 하기 싫은 건 아니잖아?”

 “그건….”


 확실히 ‘정말 하기 싫다’ 와는 달랐기 때문에, 엔노시타는 이번에도 애써 아키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



 [...오늘의 코스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정문에서부터 출발, 후문쪽 언덕을 올라 산간도로에 진입합니다. 도서관 앞에서 5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의 코스가 갈리게 되는데, 5킬로미터 코스는 붉은 옷을 입은 진행요원을, 10킬로미터는 노란 옷을 입은 진행요원들을 따라 달리면 됩니다. 5킬로미터는 그대로 상점가를 지나 시민 체육관으로 가서 학교로 돌아오고, 10킬로미터는 그대로 직진, 천변을 따라 달리다 소학교 진입로 앞에서 시민 체육관 방향으로 우회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카라스노 고등학교 마라톤 대회를 시작합니다!”


 어쩐지 신이 난 것 같아 보이던 교감의 마이크가 확성장치와 충돌하며 귀를 막고 싶어지는 소음이 일었다. 육상부의 깃발이 휘청이다가 솟아오르는 것을 신호로, 모두들 실수로 담청색을 떨어뜨린 수채화 물통 같은 새벽을 달려나갔다. 


 정문을 벗어나자마자 카라스노 운동부의 트레이닝 명소인 심장마비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단숨에 대시해서 오르는 언덕길을 노랗고 붉은 옷을 입은 육상부원들의 리드 하에 천천히 달려올라가자니 어쩐지 조금 편안한 것 같은데..


“헉… 대체 B코스 뽑은 사람이 누구야!”

“그, 그래도 여기만 지나면 도서관까지는 ...내리막이잖아.”

“그럼 뭐해! 학교가 언덕 위에 있는데...”

“난 여기까지,인가봐. 먼저들 가라….”


 ...뛰기 싫으면 걷기라도 해라! 뒤쪽으로 쳐진 학생들을 향해 오노 선생님이 소리를 높였다. 벌써 조금 무거워진 다리를 떼어 놓는 엔노시타의 앞쪽에서 달리는 아키의 모습이 보였다. 옆의 부원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바쁘게 지시를 내리던 그녀가 후미의 소란에 슬쩍 뒤를 돌아보다 엔노시타와 눈이 마주쳤다. 멍하니 눈만 깜박이는 그를 향해 아키는 한번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시 앞을 향했다.


 언덕의 끝, 완만한 내리막의 산간도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 



 “카게야마.”

 “왜.”

 “저기, 도서관 앞 사거리에 진행요원 있는 거 보여?”

 “어.”

 “그렇다는 것은!”

 “승부의 시작이군.”


 저기... 두 사람, 코스는 외우고 있는 거지? 불안한 기색이 옅게 내려앉은 야마구치의 말에 두 개의 머리통이 뱅글 돌아갔다. 


 “대충!”

 “결승점은 학교잖아!”


 그야 그렇지만.... 일찌감치 두 사람에게서 신경을 끄고 헤드셋을 뒤집어쓴 채 달리고 있는 츠키시마를 힐끗 바라 본 야마구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제대로 학교로 돌아오기만 하면 괜찮겠지? 


“지금부터 자유 달리기입니다! 5킬로미터 참가자는 붉은 옷의 30분 완주 페이스메이커를, 10킬로미터 참가자는 노란 옷의 60분 완주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달려 주세요!”


 안내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라스노 배구부 1학년 콤비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새라 각 운동부의 준족들이 맹렬히 그 뒤를 쫒았다. 선두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달리고 있던 아키는 뒤쪽에서 날아드는 선뜻한 기운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가라, 에노모토, 하시카미! 너희로 정했다!” 

“…우리가 포켓몬이야?”

“아무리 육상부 전체가 실행위원이라고 해도, 그래도 마라톤인데! 1위를 타 운동부에게 빼앗길 수는 없어! 카라스노 육상부의 명예를 위해 달려!”

“…알겠습니다! 후지노 선배!” 

“그냥 상품이 탐나는 거라고 해, 아키.” 

“헤헤헤…. 1등 해 줄 거지?”


 아키의 웃음에 에노모토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페이스메이커가 필요 없는 선발대가 떠나고 난 뒤, 아키는 페이스메이커의 본분을 다해 1킬로미터를 6분 대로 주파하는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도서관을 지나 천변으로 접어들었을 즈음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고생이 많네, 육상부.”

 “안녕! 타나카, 니시노야.”


 너네 1학년 둘, 벌써 아까 지나갔어. 아키의 말에 두 사람이 캬캬캬 웃었다. 


“벌써부터 힘을 빼 봐야 소용 없는데. B코스는 시민 체육관부터가 진정한 승부처라고!” 

 “하지만 그 바보들, 체력 하나는 좋으니까.” 


 걱정보다는 즐거움이 앞선 말투로 니시노야가 말을 이었다. 


“치카라는 아직? 아까 뒤쪽에 있는 것 같던데.” 

“곧 오겠지. 치카라는 슬로우 스타터니까.”

“참, 후지노. 그, 치카라를 좀, 잘 부탁해.”


 아키가 답지 않게 더듬거리며 말하는 타나카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니시노야가 그 뒤를 이어 말했다. 


 “후지노는 주장 선배니까, 치카라한테 도움이 될 수 있잖아!”


 치카라가 우리한테는 말도 안 하고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아마 우리가 다음 주장은 치카라밖에 없다고 밀어붙여서 그러는 걸 텐데, 우리도 이건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서 말이야. 


 “후지노, 카라스노에는 치카라가 꼭 필요해.”


 이래서 바보 콤비인가... 그런 건 본인에게 직접 말하란 말이야! 아키가 뭐라고 말하려고 돌아보았을 때, 뒤쪽 무리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앗, 치카라다.”

 “뭐?”

 “안 돼!”


 치카라의 이름만 듣고도 두 사람은 펄쩍 뛰어오르더니 포식자에 쫒기는 톰슨가젤같은 기세로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멀어진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아키는 곧 곁으로 다가온 엔노시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치카라, 늦었네.” 



 ***



 “내리막길에서 얏쨩이 발을 접질러서 잠깐 보고 오느라.”

 “어? …히토카쨩? 왜? 염좌? 심해?”

 “아주 심하진 않은 것 같았는데, 통증이 있어서...일단 에어파스랑 테이핑 하고 타케다 선생님 차로 병원에 가 보기로 했어.”


 저런... 많이 아프겠다. 육상선수의 주적인 발목 염좌 소식에 아키는 제가 다친 것 마냥 몸서리를 쳤다. 엔노시타는 한동안 숨을 고르며 아키와 나란히 달렸다. 대부분의 여학생들과 달리기에 자신 없는 학생들은 5킬로미터 갈림길에서 체육관 쪽으로 돌아갔으므로 천변을 달리는 학생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달리기에 나름 자신이 있거나 운동부거나 했다. 별도로 페이스메이커가 필요 없는 달리기 환경이었지만 아키는 연습했던 그대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쉼없이 달려나갔다. 엔노시타는 그 옆을 말없이 따라 달렸다. 


 지면을 밀어낸 운동화 끝에서 빛이 튀었다. 스스로를 태우는 불티처럼 아키가 달려나가는 방향으로 빛이 꼬리를 물며 흔들렸다. 뺨에 와 살랑거리며 부딪히는 머리카락이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똑바로 앞을 향한 눈길은 흐트러짐 하나 없다. 엔노시타는 아키가 이쪽을 봐 주었으면 하면서도 왠지 지금 절대 그녀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에서 달리고 있는 소꿉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키는 망설이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 옆에서 엔노시타는 차츰 제 호흡을 찾았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모자라던 숨이 편안해지고 천근같던 다리에서 무게가 사라지는 순간, 엔노시타는 말했다. 


“아키. 있잖아.” “응.” 

“주장, 해 보려고.” 

“…응.”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어!”


 자신감 없이 스르르 내려가던 고개가 큰 소리에 놀라 다시 올라왔다. 어느새 혼란한 물통 같던 새벽이 맑아지고 있었다. 담청색의 비율이 높아진 아침을 앞서 달리기 시작한 아키가 여전히 시선은 앞에 둔 채 말을 이었다. 


 “치카라는 근성 없는 게 아니야. 자신의 약한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을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연습에서 한번도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보다, 스스로에게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 더 대단하고 멋있어!”


 단숨에 외치고는, 고개를 돌려 엔노시타를 바라보았다. 빛이, 담청색 하늘의 명도를 높이고 있었다. 희게 타버릴 것 같은 엔노시타의 시야 한가운데에 아키가 있었다. 달리려는 다리를 쉬게 두었더니 조금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호흡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아키는 가만히 서서 엔노시타를 바라보다 환하게 웃어 보였다.


 “주장 선배인 내가 보장할게!”


 그러고는 곧 몸을 돌려 언제 멈추었냐는 듯 곧게 앞을 향했다. 엔노시타는 슬며시 웃으며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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