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전력 60분

146번째 주제 : 눈에 밟히다


@odknocker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

날조 및 캐붕 주의.

 

 

 

 


"왕님은 일본인인데 전-혀 일본어 독해가 안 되는 걸까나?"

"...그래도 한자는 만점이야, 츳키."

"단순 암기만 가능하다는 거잖아. USB랑 뭐가 달라?"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현대문학 시험지를 보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마음껏 놀려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리 내 놔!"


카게야마가 와아악! 하고 츠키시마에게 달려들어 시험지를 뺏으려 하고,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바탕 몸싸움을 하는 모양을 바라보던 그녀는 피식 웃었다. 저럴때는 그냥 서로 뒤엉켜 노는 강아지들 같은데 코트 위에 서면 날카로운 토스와 서브, 블로킹이 돋보이는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의 필수 전력이 된다. 카게야마는 결국 몇번이고 점프해서 높이 올린 츠키시마의 손목을 틀어잡아 무력으로 시험지 탈환에 성공했다. 시험 전후에는 부 안의 지식인들(예를 들면 츠키시마나 엔노시타, 스가와라 같은)에게 '머리를 움직이려는 시늉이라도 해라 바보야마!' '새의 뇌 크기나 물고기의 기억력를 가진 것 아니냐'며 놀림받지만, 카게야마는 배구 관련 주제에 있어서는 절대로 바보가 아니었다.


리시브가 성공해 세터 포지션으로 공이 날아오는 짧은 시간. 1초를 나누어야 할 만큼 급박한 시간 안에 상대 블록의 위치, 스파이커의 위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많은 코스, 미끼의 여부, 상대팀 리시브의 위치를 파악해서 결론을 내리고 매번 다른 토스를 스파이커의 손바닥 앞까지 신속하게 전달한다. 말로 설명해도 짧지 않은 이 과정을 카게야마는 시합 중 수백번 이상 반복한다. 그러니 두뇌회전이 느리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배구부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이미 확인한 전력이 있다. 그러니까 카게야마는, 아마도 필요한 것에는 집중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에는 1%의 주의력도 낭비하지 않는 타입인 것이겠지.


그래서 그녀는 토요일, 부활동을 마친 후 귀가하려는 그녀를 불러세우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부탁해오는 카게야마를 얼빠진 얼굴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어, 그러니까. 카게야마?"

"네!"

"뭘...가르쳐 달라고?"

"주먹밥이 흩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법, 입니다!"

"...왜?"


이유 말입니까? 그녀가 이유를 묻자 당황한 카게야마가 못생긴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 정말 궁금해서 묻긴 했지만 진지하게 이유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더 당황스러웠다. 요리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좋아하는 음식=할 줄 아는 음식=카레 인 녀석이고. 그녀의 당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한참이나 얼굴을 자유자재로 구기던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연이은 훈련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아 근손실이 왔을 때,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단백질은 장기적으로 좋은 근육을 만드는 데에는 좋지만 탄수화물만큼 빠른 속도로 열량이 회복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빨리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으면서도 알맞은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식재료는, 쌀입니다."


오이카와 선배는 밀가루 가공품을 자주 드시는데,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빵에는 의외로 많은 지방과 당이 들어갑니다. 과도한 칼로리는 근육보다는 지방을 자라게 합니다. 의외로 풍부한 지식이 아닌가! 그녀는 살짝 놀랐다가, 이어지는 카게야마의 말을 듣고는 요즘 오이카와가 "오이카와씨 우유빵 너무 많이 먹는다고 이와쨩이 구박해! 매일매일 부활동에 살찔 시간도 없는데! 그것 좀 먹었다고!" 라고 투덜대던 것이 생각나 작게 키득거렸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 카게야마가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계속해 보라는 듯 손을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래서 주먹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모양이 나질 않고 속재료가 흘러나와 밥이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이 만들어 연습 중간에 나누어주는 주먹밥은 모양이 흩어지지도 않고, 내용물이 새어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부서지지 않는 주먹밥을 만들 수 있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마치 전설의 주방장에게 비법의 전수를 요청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부탁해오는 통에 그녀는 경련하듯 떨리는 입가를 누르며 겨우 웃음을 참고 말했다.


"언제 먹을 주먹밥인데?"

"연습 끝나고 집에 가면서...나, 야간 로드워크를 끝내고 먹을 생각입니다."


점심은? 그녀의 말에 카게야마가 시선을 피했다. 어, 설마. 한참 성장기인 애가 점심을 거르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본인이 주먹밥을 만들 생각을 하기 전에 부모님께 부탁드린다는 선택지가 있을 텐데. 당연하다는 듯이 스스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좋아, 그녀가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다음 주 연습때, 잠깐 시간을 내서 주먹밥 만드는 걸 도와 줄래? 그럼 가르쳐 주지. 그리고 네 몫으로 저녁용 주먹밥을 만들어 둘게. 어때?"


이제 여름이니까, 아침에 만들어 둔 것으로는 저녁때까진 무리라구. 손가락을 들어 안 되지, 안 돼. 하면서 흔들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한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응.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았지?


"자, 안녕! 월요일에 보자, 카게야마."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꾸벅 인사하고 언덕밑 상점쪽을 향해 걸어가는 카게야마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한참을 그자리에 서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 카게야마가 점심을 거의 먹지 않고 자판기의 멸균 우유나 마시는 요구르트 등으로 대체한다는 사실을 알아 낸 그녀는 드물게도 카게야마에게 큰 소리로 버럭버럭 화를 내며 스가와라와 키요코, 아사히가 함께하는 점심 식사에 카게야마의 뒷덜미를 고삐처럼 쥐고 나타났다.

 

 

***

 

“카게야마! 밥 먹었어?”

“넵!”

“메뉴는?!”


 미트볼과 샐러드, 조림과 계란말이. 그리고 새우튀김입니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오늘의 점심 메뉴를 묻는 그녀에게 카게야마는 술술 도시락의 내용물을 외치고는 뿌듯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아. 합격! 경쾌하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향해 카게야마가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고는 부실로 달음질쳤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에 딴지를 걸 타이밍을 놓친 동기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식단 보고?”

“아직도 하고 있는 거구나….”


약간 질렸다는 듯한 아사히의 말에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점심으로 우유라니, 말도 안 되잖아?”


자기 컨디션은 손끝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녀석이 말이야, 정작 점심식사는 우유나 칼로리바, 젤리라니! 게다가 저 녀석, ‘점심 먹을 시간을 아껴 연습하겠다’라고 했다니까? 어디의 고학생이냐고 진짜!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민다는 듯 그녀가 씨근거렸다. 어쩐지 연습 끝나고 먹을 주먹밥을 만든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그녀의 질문에 시선을 회피하면서도 “점심에 먹은 젤리가 에너지가 되어 줍니다!” 라고 당당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후배의 뒷덜미를 쥔 그녀는 그대로 카게야마를 키요코쨩과 스가, 아사히가 함께하는 점심식사 시간에 강제 송환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감시역으로 히나타를 붙여서 ‘제대로 된 점심밥’을 먹도록 했다. 처음에는 남의 집에서 빌려온 고양이처럼 굴던 카게야마는 이제 꽤 히나타네와 점심을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2교시 후 도시락’타임을 갖는다고. 점심시간에는 연습을 할 테니 그 정도 시간에 먹는 게 딱 알맞다고는 하는데. 아니, 10분 안에 클리어가 가능한가? …하겠구나. 합숙 때 카레를 쓸어먹던 두 사람을 떠올리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당장은 오늘 저녁연습 때 선수들에게 줄 주먹밥의 내용물이 문제다.


‘참치마요랑, 구운 명란이랑, 매운 돼지고기랑….’


튀김, 은 안되겠고. …요즘 날이 더우니까 매실로 할까? 참치랑 명란은 조리실에 아직 여분이 있을 텐데 돼지고기랑 마요네즈가 없겠구나. 키요코쨩과 히토카에게 체육관의 일을 부탁한 그녀가 히나타에게 빌린 자전거 페달에 발을 얹었다. 

 

***

 


“얏호! 오랜만이야!”

“…너네는 연습 없냐?”


세상에 둘도 없이 하찮은 것 취급하는 그녀의 말에도 오이카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실례네! 우리는 월요일 오프라니까? 오늘은 타케루네 배구교실도 쉬는 날이라 오이카와 씨 완벽한 프리라구! 수년간 미야기 전역의 여학생들을 설레게 한 산뜻한 웃음에도 그녀는 흐응,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오늘 완벽하게 프리인 오이카와씨는 왜 마트 앞에 계시는 걸까요?”

“……심부름….”


표정과 같이 구겨지는 대답에 그녀는 참는 것을 포기했다. 토오루쨩 정말 착한 아이네…. 말 끝이 웃음기에 덮여 파르르 떨렸다. 오이카와는 “로드 워크도 겸해서니까!” 라고 빼액 외치고는 그녀의 손에 들린 봉투를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연습 중 아니야?”

“이건 주먹밥 재료. 우리 애들은 누구네랑 달리 낮밤 없이 열심이거든.”

“야, 연습은 양보다 질이거든?!”


참, 오이카와. 요즘 밥은 어떻게 먹고 있어?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오이카와가 눈을 가늘게 했다. “뭐야, 갑자기. 물론 잘 먹고 있지. 여름에는 특히 염분과 단백질 섭취에 주의해야 돼. 잠깐 방심한 사이에 축 늘어져버리거나 하니까. 그런데 왜 내 식단이 궁금해졌어?” 대답을 기대하는 듯 눈을 깜박이던 오이카와의 표정이 이어진 그녀의 말에 싸늘하게 굳었다.


“카게야마가 요즘 연습이 힘든지 식사량이 줄었거든. 자꾸 눈에 밟히네…. 애가 가뜩이나 말랐는데 여기서 더 빠지면 안 된단 말이야.”


…카레 주먹밥을 해 볼까? 카게야마가 카레를 엄청 좋아하거든. 주먹밥 속을 카레로 하는 것과 밥에 카레를 넣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오이카와? 응? 잔뜩 가라앉은 오이카와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그녀는 마침 잘 됐다며 인스턴트 카레 분말을 파는 매대로 오이카와를 끌고 갔다. 그녀에게 잡힌 팔을 맥없이 내려다보던 오이카와가 문득 중얼거렸다.


“…정말, 눈엣가시야. 토비오쨩은.”

“응? 뭐라고?”


아니야, 아무 것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부정에 그녀는 더는 묻지 않고 ‘아주 매운 맛’카레와 ‘지옥의 매운 맛’ 카레가 어떤 맛의 차이를 보일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그녀의 곁에 서서 그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쨌든 그녀가 눈에 밟히는 것은 이쪽의 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