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은 기념으로 멘션온 두 캐릭터를 엮는 해시태그를 한 결과
하이큐 스가와라 코우시x타나카 류노스케
빡빡이는 사랑을 싣고
@odknocker
타나카 류노스케, 16년 인생 최대의 여난이었다.
“어-이, 타나카!!!”
매서운 소리와 함께 기운차게 등짝을 후드려맞은 타나카가 질겁하며 뒤를 돌아보자 곧 호쾌하게 비니를 벗기는 손길이 이어졌다.
“뭐,뭐야!”
“잠깐, 잠깐이면 되니까!”
변태 성희롱범의 입에서나 나올 대사와 함께 서늘해진 타나카의 정수리에 선뜻하도록 차가운 손가락들이 어지럽게 달라붙었다. 히이익! 차가워! 당혹스러움 가득한 괴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손가락들은 몇번이고 동글동글한 머리를 집요하게 쓰다듬었다. 정수리 소유권이라도 맡아 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구는 여학생들에게 타나카는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온 머리를 내어 주었다. 억울하고 서럽고 춥다. 타나카는 집에서부터 고이 지켜온 정수리의 온기를 앗은 악한들에게 항의했다.
“아침부터 뭐야 대체!?”
“미안, 타나카. 고마웠어!”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한 여학생들이 씩씩하게 뒤돌아서서 교사를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타나카는 정수리의 순결을 빼앗긴 수치스러움에 비니를 한껏 당겨 썼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톼아놔아아카악!!!”
얍, 하고 다가온 손이 정수리에 얹혔다.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이제는 대거리할 기력도 없어 멍하니 서 있는 타나카를 바라보는 반의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수근수근거리기 바빴다. 뭐야, 이거. 혹시…나, 이제와서 갑자기 주목받게 되었다거나…? 체육대회 때 부 대항 이어달리기의 활약에 힘입어 사나이 타나카 류노스케의 매력에 눈을 떴다든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타나카의 안면근육을 발견한 테니스부의 사토가 엄중한 주의를 주었다.
“헤실헤실 웃지 마, 빡빡이가!”
…라는 전개는 아니었는가보다. 타나카의 정수리는 아침부터 3교시가 끝난 지금까지 모두에게 공공재 취급을 당했다. 남학생들은 자신있게 다가와서 호쾌하게 쓰다듬었고, 여학생들은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살짝 손을 대고는 일말의 기대가 어린 표정으로 물러났다. 뭐야? 대체? 주위에 물어도 빙글빙글 웃기만 할 뿐 도무지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 4교시 수업시간을 알리는 본령이 울리자 새벽 계명성에 멈추는 강시들처럼 물러나는 녀석들을 보며 타나카는 생각했다. 이 패턴이라면, 앞으로의 휴식시간이 위험하다. 주섬주섬 교과서를 챙겨 과학실로 걸음을 떼는 타나카의 앞에 마찬가지로 이동 중인 니시노야가 얼굴을 내밀었다.
“노얏상!”
“오, 류!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우리 반 여자들이 류의 이름을 외치며 뛰어가던데!”
인기 있잖아! 어째서야? 무슨 수를 쓴 거야! 나한테도 그… 나눠줄 수 있는 거야? 거의 절규하듯 타나카에게 매달리는 니시노야에게 해탈한 부처와 같은 웃음을 돌려주며 타나카는 지금의 이 상황은 뭔가 스스로 상상했던 인기남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
“…정말이야?”
“그래! 유코 선배가 1반인데, 오늘 아침에 ‘그 사람’ 머리를 만진 다음에 점심시간 때 타케시 선배한테 고백을 했대. 그런데!”
“오케이, 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어머, 어떻게 해. 그럼 그거 진짜인가봐!”
뭐가 진짜라는 거지? 시미즈에게서 받아 온 데이터 노트를 손에 든 스가와라가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비명을 지르며 이야기가 한창인 여학생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 엄청 무섭게 생겼잖아… 괜찮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여학생을 향해 다른 여학생이 좋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그 사람, 배구부라며? 부활동 가기 전을 살짝 노리면 어때?”
“그럴까?… 그치만 그 사람 진짜 무서워서… 지난 봄에 2반 애가 그 사람한테 잘못 걸려서 울었다잖아….”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눈 딱 감고 한 번만 대 달라고 그래!”
“그래 볼까…?”
한층 혼란스러워진 스가와라의 머리 속에 여학생들이 말한 ’그 사람’의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배구부이며 인상이 굉장히 좋지 않고, 여학생을 울린 전적이 있는, 아마도…2학년일. 수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스가와라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황급히 노트를 들지 않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안녕하십니까!”
“-니까!”
“안녕-.”
남자 배구부가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제 2체육관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배구부원들의 인사와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평소라면 그 소란스러움의 중심에서 한 몫을 단단히 했을 타나카 류노스케는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체육관의 높은 창문을 향해 먼 시선을 던지고만 있었다.
“타나카 왜 저래?”
“체육관 문 열기 직전까지 계속 시달렸대.”
엔노시타와 키노시타의 대화를 들은 츠키시마의 미간이 슬그머니 찌그러졌다. 언제나처럼 냉담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츠키시마가 입을 열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믿을 정도로 절박한 것인지, 바보들인지. 그보다 그런 소원을 타나카 선배한테 빌어 봐야 무슨 소용…. 츳키잇! 하고 야마구치가 파드득 놀라 츠키시마의 말을 막으며 타나카의 쪽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뭐가 어째 인뫄아아아ㅏㅏ!!!” 라고 있는대로 험악한 얼굴을 했을 타나카는 폭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멍하니 츠키시마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게…믿을 수가 없네….”
열 다섯이야. 툭, 하고 떨어뜨리듯 타나카가 말을 이었다. 열 다섯이라니요? 무슨? 자기들끼리 속공의 연습을 시작해 버렸던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팔짝팔짝 뛰어와 물었다. 허헝, 하고 힘없이 웃어 보인 타나카가 대답했다.
“내 머리를 건드리고 가서 고백에 성공한 사람의 숫자.”
“타나카 선배! 우와! 대단해! 굉장해요! 우와!”
“그런데…. 왜 정작 나는 효과를 못 보는 건데? 내 머리잖아!”
나는 매일 만지는데! 왜 선배한테는!!! 소리죽여 오열하기 시작한 타나카에게 매트를 놓던 엔노시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일단 고백부터 하고 말하지?”
크으읍! 하고 주저앉은 타나카의 어깨를 니시노야가 토닥여 주었다. 싱겁게 끝난 상황에 흥미를 잃은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려 체육관 문 앞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서 있는 스가와라와 사와무라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평소답지 않게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은 스가와라가 신발을 갈아 신고 타나카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멍하니 앉아 있던 타나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스가와라와 사와무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타나카.”
하고 부른 스가와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손을 들었다. 평소였다면 조금 난폭하다 싶게 잔디밭 같이 잘 깎인 머리통을 괴롭혔을 스가와라의 손이 얌전히 정수리 위에 얹혔다. 곧 병아리나 강아지 등을 쓰다듬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 …이제는 네 머리를 노리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리고 나도 이제는 함부로 네 머리에 손대지 않을 거니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미안. 마지막 소리는 거의 속삭이듯이 들려왔다. 타나카는 뜬금없는 스가와라의 사과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네? 아…스가 선배, 는 괜찮은데요….”
이젠 익숙해졌고. …좋아하시잖아요, 제 머리 만지는 거. 다른 녀석들이 만지작거리는 건 이거 뭔가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들 뭔가 좋아졌다면, 괜찮겠지요. 뭐.
‘우와아…, 빛난다….’
이 녀석, 괜찮은 건가? 싶게 타나카가 침착하다. 금방이라도 후광이 번쩍일것만 같다. 옆에서 니시노야가 류! 진짜 사나이구나! 라며 시끄럽게 굴거나 츠키시마가 저 사람, 정말 바보인가…라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틈에서 스가와라는 아까보다 타나카의 머리통이 따끈해졌다는 것을 깨닫고 쓰다듬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역시나 착 감기는 느낌이 좋다.
***
“스가, 타나카 머리 가지고 노는 것 그만 둬….”
“그치만! 손맛이 있다니까? 위험해, 버릇 될 거 같아….”
“뭐가 그치만, 이야. 그리고 이미 습관이잖아!”
“다이치, 너도 한번 만져보면 사랑에 빠지게 될 걸? 그 살짝 돋아난 잔디같이 보송보송한 감촉! 만지고 나면 왠지 뭔가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후배를 지장보살 취급하는 것도 그만 둬….”
생글생글 웃는 스가와라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다이치는 엄격하게 말을 잘랐다. 그럼 적어도 1학년들 앞에서는 자제해라…. 타나카도 이제 선배인데.
“음, 노력해 볼게.”
“스가와라, 뭐야, 뭐야?”
무슨 이야기 했어? 축구부의 요츠다와 농구부 주장이 두 사람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스가와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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