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야 유우x오이카와 토오루

바람에 대하여


@odknocker


 완전한 날조와 캐붕 주의.


 

 

미야기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10월 중순을 넘으면서부터 내쉬는 숨결에 형체가 생기기 시작하고, 11월부터 3월까지는 언제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가 이어진다. 요즈음에는 이상 기후의 탓인지 4월에도 눈발이 날리곤 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일년의 반을 겨울과 겨울 언저리에서 보내는 것이다.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다니며 자라는 미야기산 청소년들은 자연 추위에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오이카와 토오루의 경우는 그러지 못했다.

 

‘3월이면 봄이잖아? 도쿄에는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투정을 삼키며 오이카와는 걸음을 재촉했다. 얼른 집에 가서 코타츠에 들어가고 싶다… 그래도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이 달라진 것을 보니 봄이 오기는 할 모양이었다. 바짝 말라서 얼음 알갱이들이 쨍하니 깨질 것 같던 겨울바람이 아니다. 겨울의 끝을 알리는 것은 보통 땅을 밀어올리며 자라는 녹색 잎사귀나 부드러운 꽃잎-이를테면 벚꽃 같은- 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오이카와는 로드워크 중에 불어오는 바람에게서 봄을 예감하곤 했다.

 

“이와쨩, 바람이 녹았어. 이제 봄이야!”

 

라고 말하면 묵묵히 옆을 달리던 이와이즈미가 저게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곤 했지만…오이카와는 평소라면 이와이즈미가 있었을 옆자리를 곁눈질하며 바람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미소구치 코치에게 잡혀 귀가가 늦어지게 된 이와이즈미를 기다리지 않고 오이카와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오늘이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월요일은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의 오프일이고, 오이카와 토오루의 조카 타케루가 [프로 선수와 함께 하는 어린이 배구 교실]에 참여하는 날이기도 하다. 타케루는 이제 겨우 소학생인 주제에 방과 후 교실이나 지역 참여 프로그램 등으로 분주히 달음질친다. 부활동을 마친 토오루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소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잡으러 이와쨩과 함께 근교의 숲 속을 뛰어다니며 나무를 타거나 물가에서 피래미를 잡는다고 첨벙거리거나 TV중계에서 본 스파이크 서브를 따라하느라 흙투성이가 되었던 기억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요즘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타케루가 빠뜨리고 간 배구교실 가방-배구화나 운동복, 수건 등이 들어 있는 앙증맞은 사이즈의-을 전해 주라는 퀘스트가 토오루에게 주어졌다. 느긋하게 걸어서 삼십 분 정도의 적당한 거리. 모처럼의 오프에 이게 뭐냐며 대문을 나서면서 조금 툴툴거렸지만 배구 교실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타케루가 혼자서만 코트에 들어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한 오이카와는 재촉하는 이 하나 없음에도 걸음을 빨리 했다.

 

***

 

코흘리개를 갓 벗어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들락거렸던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체육관의 두 겹 유리문을 열었을 때에는 조금 전까지 왜 이렇게 추운 거냐고 투덜거렸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직 수업 전이었는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떼를 지어 어딘가를 바라보며 시끄러웠다. 코치 선생님께 목례한 오이카와가 타케루의 모습을 찾으려 한 바퀴 크게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마유쨩, 레프트!”

“…!!!”

 

옆 코트를 사용하는 마마즈 팀의 연습을 구경하느라 아이들의 뒤통수가 올망졸망하게 모였다. 세터의 손에서 공이 포물선을 그리자 네트 뒤쪽에서 마유쨩 이라 불린 스파이커가 날아올랐다. 서드 템포의 묵직한 스파이크가 사선을 그리며 네트 너머로 내리꽂혔다. …저건 받기 어렵겠는걸.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오이카와의 눈에 작은 체구의 소년이 비쳤다. 순간 아이들의 함성과 삐걱거리는 배구화 소리로 가득차 있던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타케루보다 조금 큰 정도의 키. 소학생…인가? 배구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마마즈 팀에, 라고 생각한 순간 다음 토스가 올라가고 소년이 움직였다. 빠른 반사신경. 기다렸다는 듯이 스파이크의 예상 낙하지점에 달려든 소년은 끝까지 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볍게 맞잡은 손을 내밀었다.

 

통,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뾰족하게 내리꽃히던 공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세터가 기다리고 있는 전위로 향했다.

 

“유우쨩! 나이스 리시브!”

“저 형아, 마유코 아줌마 스파이크를 받아냈어!”

“우와아…!!!”

  

유우쨩, 이라 불린 소년이 갤러리의 환호에 답하듯 고개를 돌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검은 머리칼의 한가운데가 노랗게 빛났다. 나름대로 멋을 낸 것 같은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디서 봤더라…? 오이카와가 가만히 눈동자를 굴리는 사이 다음 공격이 이어졌고 소년은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를 등진 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년의 티셔츠 등판에 새겨진, 지금까지 왜 알아차리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글자가 시선을 빼앗았다. …일기당천(一騎當千)? 시내 상점가의 구석. 사자성어나 명언이 거친 필체로 적힌 티쳐츠가 그득그득 널려 있던 수상하기 짝이 없는 가게에서 이와이즈미가 아주 마음에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집어들었던 근성론(根性論)티셔츠만큼이나 괴상했다.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이와쨩 같은 게 또 있네… 설마 같은 가게에서 구입한 건가?

 

“토오루!”

 

착, 하고 작은 손바닥이 오이카와의 등허리에 달라붙었다. …이와쨩을 삼촌인 나보다 더 잘 따르더니만. 이런 것까지 배울 필요는 없잖아? 오이카와는 신음을 삼키며 타케루를 향해 돌아서기 전에 짐짓 엄격해 보이는 얼굴을 만들어 놓고는

 

“타케루, 토오루 삼촌이라고 해야지!”

 

라고 나무랐지만 곧 얼른 가방이나 내어 놓으라는 듯이 내민 타케루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가방 끈을 쥐어줄 수 밖에 없었다. 건방진 표정과 여유로운 손끝과는 달리 차가운 체육관의 마루 바닥에 양말만 신은 발가락 끝이 꼼질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이 쑤시는 모양이지. 가방을 건네받자마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분주히 신발을 꿰어 신고 있는 타케루에게 오이카와가 물었다.

 

“타케루, 저 애 알아? 같은 배구교실?”

“아니, 유우쨩은 마마즈 팀 연습에만 들어와. 아마 중학생일걸? 가쿠란, 입고 오니까.”

 

중학생? 오이카와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중학교 때… 저만큼 리시브가 안정적인 녀석이 있었던가? 공을 만질수도, 들고 있을수도 없는데다가 공중에 머물던 공이 상대편 코트에 떨어지는 순간 득점하는 종목의 특성상 리시브는 배구를 시작하는 모든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이다. 하지만 리시브 연습을 좋아하는 배구소년은 드물고, 그러한 연유로 배구교실이나 중학교 부활즈음까지는 리베로 지망의 선수가 별로 없는 것이 보통이다. 와탓치만 해도 중학교 때 까지는 세터였다. 그러니 아직 중학생인데도 저런 리시브를 한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치도리야마 였나? 내 서브에 끈질기게 달라붙던 리베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녀석, 몇학년이었지?

 

발끝을 톡톡 코트 바닥에 굴러 가며 신발의 상태를 점검한 타케루가 코치의 집합 호루라기 소리에 파드득 뛰어나갔다. 어차피 배구교실이 끝날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오이카와는 주변의 적당한 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조그만 리시버의 움직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유우쨩, 지금부터 스파이크랑 블록 연습 할 건데…”

“그럼 저, 블록 커버를 해도 될까요??!”

“그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잠깐 유우쨩, 팔 괜찮은 거니?”

 

어느 새 소년의 주위를 둘러싼 어머니들의 걱정에 소년은 괜찮다는 듯이 팔을 휘둘러 보였다. “전혀! 괜찮아요!” 쌩하니 소리가 날 정도로 휘두르는 팔은 멀리서 보기에도 썩 상태가 좋지 않은것 같았다. …멍이 남겠는데.

 

“어머, 팔이 얼룩덜룩해!”

“운동하는 아이가 몸을 이렇게 막 다루면 안 돼요!”

 

한참 돌아가며 요란한 주의를 받은 ‘유우쨩’은 어머님들의 손에 이끌려 양 팔에 에어파스가 잔뜩 뿌려진 다음 ‘20분간 휴식이에요!’ 라는 다정하고 엄격한 말과 함께 체육관 한쪽에 앉혀졌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작았고, 생각보다 더 단련되어 있었다. 유연한 근육이 알맞게 붙어 있는 팔이 키에 비해서 꽤 길었다. 성장기를 잘 보내 준다면 좋은 선수가 될 것 같은데. 딴에는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지켜본답시고 흘긋거리다가 이제 아예 대놓고 바라보기 시작한 오이카와의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연습이 한창인 코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의 이동경로를 따라 눈동자가 움직이며 선을 그렸다. 블록을 피해 스파이크의 궤도가 변하자 의자에 앉은 채인 손가락 끝이 움찔거렸다. 코트 바닥에 내려앉은 공이 벽을 들이받은 후 코트 밖으로 굴렀다. 받아내지 못한 스파이크가 점수로 변하는 휘슬 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내려 물끄러미 제 손을 들여다보았다.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는 민들레 홀씨도 흔들리지 않는다. 무거운 고요함이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저 불안정한 침묵을 알았다. 마음 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누를 줄 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달력 외에는 어디에서도 봄을 찾기 어려울 3월, 그림으로 그려놓아도 좋을 한가로운 시민 체육관의 오후와 어울리지 않는 소년에게 오이카와는 약간의 흥미가 생겼다.

 

***

 

“야, 쿠소카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의기양양하게 펼쳐 든 책의 어느 한 부분에 의도적으로 올려 둔 가운데 손가락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왜 하필 가운뎃손가락이야, 이와쨩. 툴툴거리는 오이카와를 본체만체하며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책을 톡톡 두드렸다. 손가락 끝에 가 닿은 시선에 오이카와 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그 이름 아래의 사진에는 작은 물고기가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가만히 보니 여러 마리. 주변 자갈과 비슷한 보호색을 가져 잘 보이지도 않는 물고기들은 그야말로 평범. 재미없음. 고만고만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거 이름이 오이카와라고? 묻는 듯한 시선에 의기양양함이 15%정도 더해진 이와쨩이 턱을 조금 더 치켜들었다.

 

“왜 의기양양한 표정인거야…?”

 

바위는 대부분이 못생겼지만, 그 정도로는 마음에 차질 않았다. 오이카와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바위 사진을 찾기 위해 백과사전들이 가득 꽂혀 있는 서가를 한 바퀴 돌았다. 두 바퀴쯤 돌았을 때, 오이카와는 찾으려던 광물 대백과 대신 참고용 서적을 펼쳐 두는 열람대에 펼쳐진 조류대백과 사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작고 동그란 새였다. 흰색과 갈색, 옅은 갈색과 검은색이 조화롭게 섞인 새의 이마에는 선명한 노란색 깃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었다. 가는 나뭇가지에 열매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서 그 새의 이름이…

 

“상모솔새다!”

“???”

 

나시노야의…정확히는 그 머리모양을 처음 보았을때부터 어디선가 본 것 같았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새를 생각하고 보니 진짜 닮았다. 오이카와는 앓던 이가 빠진 듯 개운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 가리가리군을(아직 3월인데도!) 와작와작 깨물어 먹는 니시노야를 바라보았다. 크게 베어문 얼음과자를 흔들며 니시노야가 눈을 깜박거렸다.

 

“상모솔새가 뭔데요?”

“…궁금하면 나중에 한번 찾아 봐. 그나저나 니시노야 군, 전에 말한 선배랑은 그 일 이후에 만난 적 없어?”

 

마지막 한 입으로 소다색 얼음과자를 해치운 니시노야가 볼이 볼록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이후로는 한번도 못 봤어요. 저는 부활동 금지라 체육관에 갈 수가 없고, 선배도…시간이 필요하겠죠. 아사히 선배는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강하면서 이상한 곳에서 마음이 약해서!”

 

이어서 니시노야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아사히 선배’의 멋짐과 강함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적당히 니시노야의 말에 대답하며 생각에 잠겼다. 선배…라. 중학 시합은 인터미들이 끝 아닌가? …공식전이 아니었던 건가? 그나저나 그 에이스란 녀석도 어지간히 멘탈이 약한가 보군. 그래서야 어디 시합에 쓰겠어? 에이스라면 적어도 우리 이와쨩처럼…

 

“…그래서, 다시 팀에 돌아가게 되면 절대로 블록 커버를 실패하지 않을 거니까!”

 

이제 연습하러 가죠! 이어지던 오이카와의 생각이 활기차게 자리에서 일어난 니시노야의 말에 흩어졌다.

 

니시노야 유우. 시민 체육관의 마마즈 팀원들 사이에서는“유우쨩”으로 불리는 소년은 그야말로 열대우림에 내리는 스콜 같았다. 팔의 멍을 이유로 마마즈 팀의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니시노야에게 넌지시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말을 건넨 순간부터 지저귀는 새나 쏟아져 내리는 폭포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특히 오이카와의 서브를 보고 나서부터는 대 흥분상태가 되어 몇번이고 다시 서브를 보내 달라고 소리를 질러서 결국 배구 교실의 코치님에게 사이좋게 혼이 나고야 말았다.

 

“대단해! 굉장해! 오이카와씨 서브 더 받아보고 싶어!”

 

아. 뭐지, 이 느낌…? 16년간의 일생 대부분을 곁에 있었던 친우가 불행하게도 칭찬보다는 질책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오이카와는 니시노야의 직설적인 칭찬이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간질간질한 느낌. 뭔가 이렇게… 사람을 일으키는 듯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말. 순수하게 배구를 좋아하고,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리베로로서의 자신과 자신의 힘을 믿는 선수. 오이카와는 네트 너머에서 조용하게 집중하기 시작한 니시노야를 바라보았다. 곧은 시선이 못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정말! 월요일은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 배구부의 오프일이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자타가 공인한 무모할 정도의 연습벌레이지만 휴식할 때에는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녀석은 싫지 않으니까.’

 

오이카와의 양 손바닥 사이에서 노란색과 푸른색, 흰색이 섞인 공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

 

3월에서 4월로. 저 남쪽에서부터 봄이 조금씩 밀려오는 동안 니시노야의 팔에는 멍든 자국이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조금 옅어질만 하면 하나씩 늘어나는 검은 얼룩이 보라빛이 되었다가 초록색, 노란색 등으로 색을 달리하며 얼룩덜룩했다. 그 때마다 마마즈 팀의 어머님들은 팔짝팔짝 뛰며 건재함을 과시하는 니시노야의 뒷덜미를 잡아다 쉬게 하거나 엉망인 팔에 무언가를 발라주거나(멍을 빼고 진통효과가 좋은 연고라고 한다)하며 돌보았고, 월요일마다 타케루의 보호자 자격으로 체육관을 드나드는 오이카와에게 절대로 니시노야의 개인연습에 어울려주지 말 것을 당부하고 돌아가곤 했지만

 

“오이카와씨! 연습!!!”

“그래, 그래. 니시노야 군은 참 씩씩하기도 하지…”

 

당연하다는 듯이 코트를 가리키며 외치는 니시노야를 마주하면 오이카와는 어째서인지 설렁설렁 대답해주며 웜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마지막이니까, 전력으로 서브리시브 해 주세요!”

“그래, 그래… 응?”

“다음주부터 부활동 해도 된다고 허락받았어요!!”

“…그래…?”

 

네! 돌아가면 바로 골든위크 합숙에 대회 준비도 해야 되서 바빠질 것 같아요! 오이카와를 올려다보며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니시노야를 보던 오이카와가 말없이 웜업을 마치고 서브포지션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사양 않고.”

“바라던 바입니다!”

 

마마즈 팀 연습이 끝나는 시간부터 어린이 배구 교실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동안 체육관 한쪽 코트에서 이루어지는 연습이라 말할 시간에 공을 한 번 더 띄우는 것이 급했다. 한참 오고가던 공이 오이카와의 손 위에서 멈추었다. 서브토스하려던 공을 다시 손 위에 올린 오이카와가 벽면 한쪽의 시계를 가리켰다.

 

“니시노야 군, 이제 시민 체육관에는 안 오는 거야?”

 

니시노야는 대답대신 고개를 숙여보였다. 지금까지 연습에 어울려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이카와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며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 니시노야에게 오이카와가 가볍게 말했다.

 

“그럼, 학교. 세이죠도 한번 생각해 봐.”

 

니시노야 군이라면 분명히 이곳저곳에서 추천 입학 제의가 들어올 거야. 나는 니시노야 군이랑 한 팀은 못 되겠지만, 세이죠에도 훌륭한 리베로가 필요하니까. 자, 안녕! 오이카와는 곧 탈의실에서 나온 타케루와 함께 체육관 문을 나섰기 때문에 뒤에 남은 니시노야가 저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약 2개월 후, 인터하이 예선일.

 

밉살스러운 토비오를 놀려주고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더! 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오이카와의 앞에 검은색과 주황색의 배색이 반대인 카라스노의 유니폼이 들어왔다. 리베로인가. 연습 시합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무심히 지나치려던 시선의 끝에 카라스노 리베로의 옆얼굴이 들어왔다. …유니폼에 감싸였지만 얼핏 봐도 작은 체구와 헤어왁스로 세운 것이 분명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니시노야 군?’

 

얼핏 보이는, 이마 쪽에서 노랗게 빛나는 머리카락. 잘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저런 머리가 이 좁은 미야기에 두 명 있을 리가 없다. 오이카와는 1회전 시합을 마치자마자 쿨다운도 마다한 채 니시노야를 찾아 얼굴을 마주하고 물었다. 다행히 시합 후의 체육관 뒷편 수전 근처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카라스노였어?”

“몰랐어요?”

 

어? 말한 적이 없나?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보이는 니시노야에게 오이카와는 속으로 한껏 딴죽을 걸었다. ‘말한 적 없어!’ 곧 니시노야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래서 세이죠에는 못 가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제 알았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듯한 니시노야의 표정에 오이카와는 괴성을 지르며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천재들 다 죽었으면. 큰 문제잖아. 카라스노라고? 토비오네 팀! 내가 정정당당하게 아주 밟아주겠다고, 쳐부수어 주겠다고 했는데! 혼란에 빠진 오이카와를 보며 니시노야가 또 다시 씨익, 웃어보였다. 쓸데없이 청량감 있는 미소였다.

 

“물론 지금은 다른 팀이고 적으로 싸울 거지만, 그래서 오이카와 씨의 서브를 더 많이 리시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요! 두근두근하네!”

“…좋아해야 하는 일이야?”


그럼요! 니시노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태도에 오이카와는 그만 웃음이 났다. 그게 뭐야.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운 그대로 니시노야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오이카와씨의 등 뒤도 지킬 거니까!”

 

내일,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씩씩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니시노야의 뒷모습을 보며 오이카와는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태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