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번째 주제 : 창문
하이큐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
캐붕 및 날조 주의! 진짜 주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살아온 17년동안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읽기 쉬운' 사람이다. 이와이즈미는 이 사실을 한 번도 입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다. 만약에 이와이즈미가 그와 오이카와 모두를 아는 사람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다면 열에 아홉 정도는
"그야, 너희는 아주 어릴적부터 친구였다며."
라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속내를 스캔이라도 뜬 것처럼 훤히 짚어내는 것은 꼭 알고 지낸 기간이 길어서라기보다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기질 덕이 크다. 얼핏 복잡하고 섬세해 보이는 언행과는 달리, 오이카와의 아주 기본적인 성질 -특히 연애에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 은 그가 이름자만 들어도 질색을 하는 후배, 카게야마 토비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더 글러먹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이 있었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에게는 성별이 다른 또 한 명의 소꿉친구가 있다. 그녀와는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부터 알게 되었는데, 그녀의 부모님은 매우 바쁜 사람들이라 어린 그녀를 종종 남의 집에 맡겨 두고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다. 이와이즈미 가의 유일한 여성이었던 어머니는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 딸이 생긴 기분이었다나. 그녀는 처음 며칠간은 빌려온 고양이처럼 얌전히 앉아 과자와 우유를 옆에 두고 그림책을 읽거나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시는 이와이즈미 부인의 손길에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맡긴 채 잠이 들어 버리거나 했지만,
"이와쨩, 쟤는 누구야?"
"옆집 아줌마 딸."
"이...이와쨩은 내 친구거든?"
오이카와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이와이즈미에게 묻던 그 순간부터
"...? 그래서, 뭐?"
"그러니까...이와쨩은, 여자랑 친구 안 해!"
"그래? 그럼 하지메쨩? 우리 이제 친구 말고 엄마아빠 할까?"
"......"
"......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발톱을 내어놓고 아르릉거렸다.
그 후로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둘 다 지치지도 않고 아웅다웅했다. 처음엔 '이와이즈미의 진짜 친구는 누구인가'로 싸우더니 주제의 폭이 점점 넓어졌다. 그녀와 오이카와 중 누가 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느냐, 누구의 달리기와 철봉 매달리기 기록이 더 좋은가, 누가 반장선거에서 승리하는가, 발렌타인 데이에 누가 더 초코를 많이 받을 것인가(어째서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받는 초코의 양이 비슷한 것인지 이와이즈미는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등등. 시끌벅적한 소학교 시절을 지나며 배구를 시작하게 된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 는 조금씩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죽기살기로 매달리던 경쟁도 시들해졌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 오이카와는 그녀와 경쟁하게 될 때가 오면 티가 나지 않도록 적당히 힘을 빼고 있었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을 터였다. 이와이즈미는 사양하지 않고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바보카와, 적당히 바보같은 짓 그만 해라."
"...역시 이와쨩한테는 안 되네."
하지만, 요즘은 배구부 때문에 셋이서는 거의 같이 못 놀잖아! 경쟁마저 못 하게 되는 건 싫다구! 성장기를 맞아 부쩍 길다래진 사내녀석이 칭얼대는 게 보기 싫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파! 이와쨩!"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이와이즈미는 담담히 말했다.
"좋아하는거면 싸우지만 말고 확실히 말을 해! 굼벵카와가!"
"...에? 내가? 왜?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뭐가 맞아!"
"왜 억지를 부리는 거예요? 이와쨩?"
설마...혹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 오이카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읽기가 틀렸나 싶은 생각이 들어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년 뒤.
"이와...쨩!...나...어떻게 하지? 응?"
왜 하필 토비오쨩인거야?! 왜?
그녀가 카게야마 토비오와 연인이 되었다고 말해온 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기만 하는 이십년지기를 바라보던 이와이즈미는 크게 후회했다. 분명히 지난 어느 시점에서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열려 있었는데. 언제 닫혀버린 걸까.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정말 그녀를 카라스노에 가지 못하게 했었어야 했을까. 카게야마 토비오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열린 채로 있지 않았을까. 테이블의 맞은편에서 침몰해버린 오이카와에게 의미없는 가정을 몇번쯤 던지던 이와이즈미가 마지막 남은 잔을 털어넣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창문은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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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제와의 연관성은 없습니다. 미국갔어요.(151107_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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