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번째 주제 : 슬픔의 끝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





"너 말야... 오이카와씨도 토비오쨩만큼 바쁜 사람이라고?"


그런데 불러내놓고 왜 말을 안 해? 장난스럽고 약간은 높은 톤으로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면서 '아직 이런 건 조금 괴롭다'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눈 앞의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고개를 숙인 채 음료가 담긴 잔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시끄러워, 바보카와! 가 세번쯤 등장했을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오이카와의 시선이 자연히 그녀에게 머물렀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멋있었고, 이와쨩과 셋이 어울리게 되면서부터는 지켜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와이즈미나 오이카와에게 여동생은 없지만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없이 안쓰럽고, 때로는 기대어 쉬고 싶었고. 어쨌든 그녀가 웃고 있으면 좋았다. 소중했지만 '여자'로써는 아니었다고, 정의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교 이후로 심심치 않게 여자친구들을 만나왔던 과거가 몹쓸 것이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오이카와 선배는 ...선배와 무슨 사이입니까?"


토비오의 한 마디가 몹시 거슬려 견딜 수 없었던 순간 오이카와는 깨달았다. 그녀를 정말 여동생처럼 생각했다고? 

그럼 지금 당장 토비오의 멱살을 틀어잡고 싶어지는 이 마음의 이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오이카와는 죽일 듯 카게야마를 노려보던 눈을 거두어 고개를 들었다. 허탈한 한숨이 실소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의문으로 가득하던 카게야마의 눈이 가늘어졌고, 오이카와는 눈가에 얹어두었던 손을 내리며 카게야마를 향해 말했다. 


"글쎄, 토비오쨩. ...무슨 사이일까?"

"...질문은 제가 드렸습니다."

"그럼, 토비오쨩은?"

"...?"

"토비오쨩은 그 애랑 무슨 관계인데?"


크윽, 하고 말문이 막힌 듯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더욱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1:1이야. 토비오쨩. 스스로의 실책을 알아채고 분함을 참지 못하는 카게야마를 오이카와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어차피 토비오쨩을 놀리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렇게 본인들도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세트가 시작되었다. 


"오이카와?"


응? 그녀의 부름에 기억의 저장고에서 끌려나온 의식이 깜박거리며 현실을 비추었다. 결국 두 사람은 그녀를 공전축으로 둔 채 빙글빙글 돌며 인력의 증가를 기다렸다. 오이카와와 그녀가 고교 졸업을 하고 각자 대학에 진학하는 동안, 홀로 카라스노에 남은 카게야마는 아마 조금 속이 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지역의 여대에 진학하고 오이카와는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것을 듣고 온 카게야마는 드물게도 웃으며 깍듯한 인사를 건넸다. 


"오이카와 선배! 합격 축하드립니다!"

"우와... 토비오쨩, 지금 굉장히 기분나쁜 얼굴로 좋아하고 있거든?" 

"A대라면 대학리그 1,2위를 다투는 명문이지 않습니까!"


오이카와가 질색을 하고 '너 표정좀 어떻게 하라'고 말하거나 말거나 토비오는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워했다. 자신만 의도와 생각이 불순했던건가 하고 오이카와는 스스로의 태도를 반성했지만, 얼마 후 그녀에게서 "요즘 연합동아리에 가입했는데 동아리 술자리 모임에서 마시고 나면 어째서인지 매번 카게야마가 데리러 와 주고 있다"며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역시 토비오쨩 진짜 싫어!!!!!" 하고 폭발했다. 


"...그래서 말이야. 토비오가 요즘 연락이 안 되는데. 바보카와,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결국 그녀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곁을 선택했다. 인공위성처럼 돌며 말하지 못했던 마음은 접어두기로 했다. 무서웠다. 이와쨩을 붙들고 꼴사납게 통곡했지만 그날 이와쨩은 "멍청카와!" 소리 한 번 없이 그저 괜찮다며 다독여주기만 했다. 괜히 서러워져서 두 배쯤 더 울었다. 


"그 바보, 훈련 나가면 충전기 챙기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맛층한테 얘기해줄까? 토비오쨩 전화 좀 하라고?"

"아 정말? 그래줄래?"


오이카와의 말에 햇살이 비춘 듯 웃는 그녀가 낯선 여자처럼 보인다. 아. 안되겠다. 아직은 마주 웃어줄 수가 없다. "잠깐만, 실례." 하고 일어서는 오이카와에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 다녀와." 하고 웃음을 띄운 채로 창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그대로 카페를 나가고 싶다는 충동과 싸우며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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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의 연관성, 이라는 거 혹시 못 보셨나요...먹는 건데.  

+혹시나하여 말씀드리지만 제 최애는 카게야마, 차애는 오이카와입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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