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번째 주제 : 마음의 문
하이큐 카게야마 토비오 드림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
두꺼운 철제 현관문이 닫히며 나는 전자음이 사형선고의 의사봉 소리처럼 울렸다. '오해가 있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현관문이 닫히기 전, 케잌 한 조각 정도의 틈을 두고 마주친 그녀의 원망어린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꽁꽁 묶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래?' 눈빛과 함께 쏟아진 비난에 카게야마는 답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하는 카게야마를 향해 짧고 허탈한, 단어가 되지 못한 감정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소속 팀의 정규리그 및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카게야마의 MVP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에이전시에서는 이 참에 슬슬 카게야마의 이적을 고려하고 있었고, 그 파티에는 구단 관계자들과 스카우터, 그리고 방송계의 화려한 꽃들과 그 꽃들로 정원을 채울 만한 부자들이 넘실거렸다. 곤혹스러웠지만 매니저와 전담 통역사가 찰떡같이 붙어 퇴로를 차단했기에 카게야마는 파도를 타듯이 이 사람 저 사람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를 나누고, 어설프게 웃어보인 후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에 각도와 인물 배치가 절묘한 사진이 한 장,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었고 그것은 그 다음날 일간지의 화려한 스캔들이 되었다.
에이전시에서는 다 따놓은 판돈 거두어들이듯 느긋하게 기사를 내렸다. 카게야마를 한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들은 기사를 보며 박장대소했다. 히나타나 츠키시마는 아예 전화와 메일로 번갈아가며 놀려대기 바빴다. 유명인이구나, 카게야마! 그 여자, 실물로 봐도 예뻤냐며 묻기 바쁜 동료들에게 건성으로 대답해주던 카게야마는 곧 이어진 올스타전과 자선경기, 세계대회 차출 등으로 일간지의 기사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배구에 충실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 수개월 동안, 그녀는 카게야마에게 그 어떤 해명도 듣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닫힌 문 저편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부딫히는 소리와 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대로 무엇이든 던져 버리는 습관 때문인지 그녀의 집에는 물건이 적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무언가를 제 안에 들여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식기도, 수건도, 실내화도 한 사람 분의 것. 찻잔조차도 같은 짝이 없어 여럿이 모이면 서로 다른 무늬의 찻잔들이 미모를 겨루었다. 홀로 남거나 남겨지게 되는 것이 무섭기 때문에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울면서도 애완동물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들여놓은 '사람'이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둘 다 지독하게도 서툰 사람들이었고, 그 덕분인지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았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이 문이 쉽게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무리 사람 맘 헤아릴 줄 모르는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해도 방금의 꺼지란 말에 진짜 꺼졌다가는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장기전에 대비하며 카게야마는 현관문 앞에 앉아 예상 답안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리가 잦아들고 이윽고 조용해지더니 철문 너머에 인기척이 났다.
"......토비오."
착 가라앉아 들릴듯 말듯 한 작은 소리였지만 카게야마에게는 충분했다. 응, 하고 대답하자 문 너머의 움직임이 한층 더 부산해졌다.
"네가 나쁜 거야...."
"...응."
"얼른 미안하다고 해."
"미안해."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서. "
"...미안해. 내가 나빴어."
"......"
"저기...있잖아."
"......"
"...정말 미안하지만, ...보고 싶은데."
대답 대신 짧게 끊어지는 숨소리와, 무언가를 참는 듯한 소리가 났다. 카게야마는 문을 두드렸다. 몇 번이고 이름을 불러 가며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하던 끝에 짧은 전자음이 이 전쟁의 끝을 알렸다. 손잡이를 잡고 당기려는데 조금 열리려던 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잠깐, 잠깐만...! 나 얼굴, 얼굴이 엉망이라!"
고개를 푹 숙인 채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녀를 보며 카게야마는 불쑥 한쪽 무릎을 문 사이에 끼워넣었다. 잔뜩 힘주어 다시 문을 닫으려던 그녀가 깜짝 놀라며 손을 놓았다. 결국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카게야마에게 약했다. 문은 활짝 열렸다.
카게야마는 그제서야 미안한 마음 가득 담아 사랑스러운 연인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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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5. 약간의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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