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스가카게

scaffolding

 

스가와라 코우시x카게야마 토비오

 

 

 

미야기 현립 카라스노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 코치이자 잡화점 사카노시타의 점장인 우카이 케이신은 슬렁슬렁 들춰 보던 신문 위에 기어이 담뱃재 구멍을 내고 말았다. 황급히 신문에 옮겨 붙은 불씨를 진화하고 입술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인 담배를 비벼 끈 다음, 아직 문간에 멀뚱하니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카게야마?”

 

안녕하십니까! 하고 고개를 숙여오는 폼이 예전과 다름 없다. 로드워크 중인지 간편한 운동복 차림이라 더욱 시간축이 헛갈렸다. 우카이 케이신은 잠시 오늘의 날짜와 방금까지 들여다 보고 있던 신문의 스포츠 코너 기사를 머릿속으로 되짚고 나서야 카게야마를 안으로 들였다.

 

피지컬 테스트 받는다고 하지 않았냐?”

 

그러던데. 내가 방금 구멍낸 신문이. 테이블 맞은편에 그림같이 단정히 앉은 카게야마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골든 위크가 끝난 다음 주부터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 이 녀석에게는 지금 이탈리아 세리에 A리그와 브라질 리그에서 러브콜이 와 있다. AD와의 계약도 끝나 FA상태라 이곳저곳에서 노리고 있다고, 에이전시에서 아주 신이 나서 대대적으로 몸값 불리기용 홍보기사를 뿌리고 있지. 그러니까 이 시골구석인 카라스노까지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겠어. 그런데 이 시기에 왜?

 

, 무슨 일 있냐?”

…….”

 

입을 꾹 다문채 죄 없는 테이블을 노려보는 카게야마에게 우카이는 일단 우유와 카레만두를 권했다. 카게야마는 감사합니다, 하고 작게 목례한 후 카레만두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일단 뭘 먹여놓고 물어봐야지. 이 녀석은 좀처럼 제 일을 먼저 입밖에 내지 않아서, 현 소속팀에서의 입단 제의도 몸이 달아 학교까지 찾아온 구단 관계자에게 듣게 했다. 에이전시가 있어서 참 다행이지.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심정으로 우카이는 속으로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번째. 구단과 트러블이 생겼다. ...이건 가능성이 낮다. 그랬다가는 우카이가 구멍을 내어 놓은 신문 스포츠란이 족히 세 면은 관련기사로 도배가 되었을 테니까. 두번째. 부상? 여기까지 뛰어온 것을 보니 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고.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3차전에서 삐끗한 발목은 이미 완치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흔들려서 타점이 제대로 맞지 않은 서브라도 위력이 무시무시해서 상대 리베로가 겨우 올려놓았는데도 찬스볼로 넘어와, 이번에야말로 에이스를 쓰려나 싶었는데 카게야마 본인이 달려와 다이렉트로 메다 꽂았을 때에는 정말 저 성질 어디 안 간다고 폭소했었지. ...그럼 남은 게 뭐가 있지? 세번째.

 

“‘노스텔지어라는 놈인가.”

“...노스...?”

 

그런 게 있어. 우카이 코치가 너 이제는 학생 아니니까라며 카게야마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발갛게 타들어가는 필터 끄트머리에서 구름 같은 연기가 느린 숨결을 따라 흩어졌다.

 

이제 해외로 나갈 거니까 정리 겸 인사라도 하러 온 거냐?”

? .... 뭐어...”

 

어정쩡한 긍정에 우카이가 코에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눈을 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단한 후 수년간 카게야마는 원정 때 외엔 센다이 쪽으로 고개도 돌려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시즌 사이사이 국가대표 차출이다 A매치 친선경기다 등으로 불려 다니는 것도 모자라 CF, 대표팀 특집 버라이어티 예능까지. 한번은 방송 일정으로 연습시간을 잡아먹기 싫다며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함께 버티기에 들어간 적도 있다고, 분함과 즐거움이 엉망진창 섞인 어조로 히나타가 전해왔었다. 그러고보면 히나타는 지금도 체육관 문 열고 인사하며 들어올 것 처럼 자주 왕래하는데 반해 이 녀석은 졸업한 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 제 앞가림은 잘 하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새하얗게 타버린 담뱃재를 가볍게 떨며 우카이가 입을 열었다. 노스텔지어 라는 건, 선생이 말해준 거긴 한데.

 

나라고 제 발로 저 2체육관에 찾아갈 일이 생길 줄 알았겠냐? 정말이지 왠만하면 다시는 찾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실로 오랜만에 먹는 사카노시타의 카레만두를 집어삼키는 데에만 집중하던 카게야마가 끊어진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어라 덧붙일 말을 찾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필터를 태운 우카이 케이신이 쓴 웃음과 함께 말을 맺었다. 왜냐하면 말이다,

 

어쩌면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거든.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미숙하기 짝이 없는 언젠가의 누군가와.”

……???”

 

, 됐다. 그보다 기왕 내려온 김에 내일 우리 애들이랑 조금 어울려 줘라. 알겠지? 하고 재차 묻는 코치에게 카게야마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 카게야마 토비오!!!”

실물?”

왜 여기에 있어요?”

 

아침 댓바람부터 체육관에 나타난 브이리그 스타 플레이어를 보고 어린 까마귀들은 그만 혼이 쏙 빠졌다. 초면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귀 끝까지 발개진 얼굴로 옆에 있는 후배인지 동기인지를 붙들고 짤짤 흔들며 이거 꿈이지? 꿈이 아닌가? 꿈이라고 하기만 해 봐! 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시끄럽게 굴었다. 선뜻 다가가지도 못한 채 둥그렇게 모여 선 아이들의 맞은편에서 멀뚱멀뚱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카게야마는 고향엘 찾아오더니 자기가 도로 고등학생이 된 줄 아는지 새벽같이 사카노시타의 문을 두드렸다.

 

...?”

죄송합니다! 체육관 열쇠가...”

그야 당연하지! 졸업생에게 줄 것 같냐!”

 

...따라와! 마침 새벽 밭일을 하러 갈 참이라 다행이었다. 우카이 케이신은 그 길로 카게야마를 싣고 할아버지의 밭을 찾았다. 해도 뜨기 전부터 밭에 매달려 있던 우카이 잇케이는 손자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늦었냐며 냅다 소리부터 질렀지만, 그 뒤에 엉거주춤 서서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독님!” 하고 외치는 애들러스의 주전 세터를 보고는 한참이나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물음표로 가득 덮이기 직전이 되어서야 눈을 뗀 우카이 전 감독은 심어 놓은 작물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뭣 하고 있어? 와서 앉아!”

!”

 

...꽤나 익숙한 듯 손을 놀려 가며 한참 밭일을 도운 카게야마는 또 노 감독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 시원한 물과 주먹밥을 양 손 가득 들고 행복하게 우카이 케이신의 차에 실려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로 어린 까마귀들에게 붙들린 것이다.

 

, 카게야마 선수! 점프 서브 보여주세요!”

, 그런거 막 부탁하면 안 돼!”

안 되는거야...?”

 

안 될 리가. 카게야마는 성큼성큼 볼카트로 다가가 공을 집어들었다. 익숙했지만 낯설어진 공기. 불어오는 바람에 낮게 흔들리는 커튼과 빛이 들어올 때마다 반짝이며 공간을 부유하는 먼지들. 서브 포지션에 서서 바라보자 언젠가 네트의 흰 선에 테이프로 표시를 해 가며 선배들에게 혼쭐이 날 때까지 서브와 토스를 연습했던 기억들이 밀려들었다. 아주 살짝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린 카게야마가 서브 토스를 올리고 그 토스를 맞이하듯 날아올랐다.

 

이 녀석들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하고 우카이 케이신은 생각했다. 침 삼키는 소리도 시끄럽다는 듯 집중한 아이들의 사이로 내리꽂힌 공이 정확히 엔드라인을 찍어눌렀다. 공은 한쪽 면이 완전히 찌그러지는 것 같은 잔상을 남기고는 튀어올라 2층 스탠드 벽에 맞았고, 그러고도 기세가 죽지 않아 통통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히이익. 등줄기로 소름이 내달리는 공포에 휩싸인 까마귀들 사이에서 소근소근 소리가 새어나갔다.

 

“...유우. , 저거 받을 수 있겠냐.”

저걸?”

 

죽어, 죽는다고! 까까머리 소년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와중에 카게야마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볼카트에 손을 뻗었다. 얌마, 여기는 네 연습장이 아니야. 우카이 케이신은 재빨리 손뼉을 쳤다.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아주 잘 아는 졸업생이 연습에 함께하게 됐다. 흔치 않은 기회니까, 알차게 써먹자!”

!”

 

까마귀는 잡식. 도시의 쓰레기장에서든 시골의 들판에서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다. 그 습성은 현직 프로 배구선수를 앞에 두어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카게야마 선수! , ... 로메로한테 보냈던 백 토스! 어떻게 하는 거예요?

... 그건

, 올려드리겠습니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위쪽에서 공이 날아왔다. 스르륵 들어와 두 손을 준비시킨 카게야마가 한 순간 뛰어들며 허리를 젖혔다. 동시에 공이 순식간에 네트를 따라 일직선으로 날아가, 기다리고 있던 어린 까마귀 스파이커의 손끝을 지났다. 우와! 순수한 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카게야마는 복잡 미묘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떻게...하냐고?

 

이렇게 공이 오면, , 하고...스파이커가 들어오는 위치에 팟, 하고 보내면 되는데.”

“......???”

 

틀렸어. 저 녀석은 은퇴해도 테크니컬 코치로는 못 써먹을 거야. 우카이 케이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어린 까마귀들에게 국가대표 세터의 토스로 스파이크를 성공시키는 쾌감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기에 바로 이어지는 스파이크와 리시브 연습에도 카게야마를 끼워넣고, 토미사카와 오가사와라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잘 봐두라는 지령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날씨가 빌어먹게도 맑았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의식적으로 발디딤에 힘을 뺐다.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고, 갓 입부한 새내기의 눈에도 그다지 의욕있게 달리는 것 같지 않은 선배들과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스가와라의 달리는 모양새가 엉성해진 것을 보고 사와무라 다이치가 슬그머니 속도를 늦추어 스가와라의 옆에 붙었다.

 

스가와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좀.”

안색이 좋지 않은데?”

 

선배들의 눈치가 보이는지 뛰는 속도를 늦추지는 못한 샷스가 아니라 아즈마네가 연신 뒤를 돌아보며 말을 얹었다. 저 녀석은 덩치가 산만해가지고 무시무시한 스파이크를 쳐 오는 주제에 새앙쥐만큼이나 담이 작다. 1학년 셋이 한데 모여 어물쩡거리고 있는 꼴을 보여봐야 좋을 일이 없으니 스가와라는 얼른 손을 내저어 두 사람을 달리게 했다.

 

러닝화를 바꿨더니 발이 조금 불편해서 그래.”

 

괜찮으니까, 먼저 가. 발을 절룩이는 시늉까지 해 보이자 사와무라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 볼 때 부터 생각했지만 이녀석들 정말 고등학교 1학년 맞나? 한 녀석은 외견이 연령미상이고 다른 녀석은 내면이 연령미상인데. 스가와라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와무라는 잠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가 이내 싱그레 웃음을 띄웠다. 그래. 웃으니까 좀 고등학생 같다.

 

그럼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와. 아니면 저쪽에서 잠시 쉬고 있어도 되고. 도서관 앞에서 반환해서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선배들에게는 내가 말해둘게.”

. 고마워.”

 

그사이 꽤 멀리 떨어진 앞쪽에서 타시로 선배의 외침이 들려 왔다. 뒤를 따라오지 않는 후배들을 발견한 선배들이 달리기를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1학년! 거기서 뭐 하는 거야?”

! 아니요! 갑니다!”

 

’, 아니오? 아즈마네의 황망한 대답에 멀리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서둘러 선배들을 뒤쫒아가는 두 사람에게 살래살래 손을 흔들어 보인 스가와라는 아직 눈에 익지 않은 검은 운동복이 작은 콩처럼 보일 때까지 지켜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러닝화를 바꾼 건 사실이다. 발이 편치 않은 것도 당연히 사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지금 잠시 걸음을 늦추기 위해서 스가와라는 발 뿐만 아니라 어떤 핑계라도 댈 작정이었다. 숨이 찰 리가 없는데도 스가와라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 쉬며 고개를 젖혔다. 역시, 여전히 빌어먹게도 맑다.

카라스노에 진학하기로 한 건 약간 홧김에 결정된 부분이 있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온, 이름만 들어 본 동네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강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나갔다. 지역 대표라는 이름은 완벽하게 낮선 팀들 사이에서 아주 큰 친밀감을 불러왔다. 스가와라는 몇번인가를 이겨 올라간 카라스노가 결국 패퇴했을 때 자신의 팀인 나가무시 중학교 배구부가 졌을 때만큼 분해서 어쩔 줄 몰라했으며, 그 화는 결국 비어있던 공립 고등학교 원서에 카라스노라는 글자를 적어 넣도록 등을 떠밀었다.

 

카라스노에 가면 자신도 그런 식으로 싸우게 될 줄 알았다.

대개의 세상 일이 그렇듯,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그 카라스노에 들어왔다는 기쁨은 입부한 지 3일 만에 날아가 버렸다. 간신히 시합이 성립될 만큼 남은 선배들에, 신입생은 자신을 포함해 단 세 명 뿐. 옛 명성을 과시하듯 다른 부에 비해 두 배는 커다란 부실에는 곰팡이가 가득한 쓰레기가 나뒹굴고 공은 관리되지 않아 낡은 티가 났으며 잡히는 것마다 약간 바람이 빠져 말랑거렸다. 한때 슬하에 사나운 까마귀들을 길렀다는 전설의 주인공 우카이 감독은 병으로 학교 배구부에서 손을 놓은 채인데다 고문 선생님도 은퇴를 코앞에 둔 노령의 교원으로 세상 모든 것에 감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체육관 곳곳에서 숨길 수 없는 쇠락의 냄새가 났다.

주장인 타시로 선배만이 애처로울 정도로 활기차게 연습을 하자, 소리 내서 가자고 외치거나 시종일관 아무러면 어떠냐는 듯한 3학년 동기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바쁜 가운데 쿠로카와 선배-우리는 왜 쿠로카와 선배가 카라스노로 진학했는지 미루어 짐작했지만 선배에게 그 화제로 대화를 청할 배짱은 없었다- 는 표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로 묵묵히 주어진 연습량을 소화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했다. 아예 명목상 부활동이라는 간판만 걸어놓는 것도 아닌 것이, 지도자가 없어도 연습은 나름대로 성실히 이루어졌고 아주 가끔이지만 근처의 고만고만한 학교들과 연습시합도 몇 번인가 했다. 그런데도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늘에 옮겨 심어진 식물이 된 것 같았다. 무언가가 터무니없이 부족한데 도무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별다를 것 없는 착실한 하루하루가 천천히 발목을 죄어 오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른 물음표에 답하지 못한 순간 하늘이 빌어먹게도 맑았다. 그늘에 심긴 사람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할 정도로. 스가와라는 달리기를 포기하고 강둑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도서관에서 반환해 이쪽까지 돌아오려면 족히 십분은 넘게 걸린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눈치채이지 않도록 기분을 전환해야 한다. 샷스라면 몰라도 사와무라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게 통하는 녀석이 아니니까. 스가와라는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아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손끝이 여전히 차갑고 호흡은 깊어지지 않았다. 꼼짝없이 앉아서 강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한 차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때, 낮고 시원한 목소리가 망설이며 스가와라를 불렀다.

 

……스가와라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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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서라도 올려두지 않으면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