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쿠바 사쿠라의 순정만화 [부탁해요 마스터] 설정 차용 AU 

하이큐 츠키시마 가족사 동인설정 및 날조 주의. 

오리주 이름있음 



 하이큐의 또 다른 세계인 이곳은 산타와 순록이 있는 세계였어. 산타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순록을 만나면 산타클로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돼. 그리고 순록은 산타를 만나는 순간 순록으로서의 새 삶을 얻지. 산타가 원하면 하늘을 날 수도, 동물 형태의 순록으로 변해서 선물을 나를 수도 있어. 산타와 순록이 만나면 서로와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만 보이는 고삐가 생겨나는데, 이 끈의 길이는 무한대이지만 고삐가 돋아난 상태에서는 산타가 순록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게 돼. (저리가! 이리와! 오지마! 앉아! 손 들어! 같은 거. 지나치게 세세한 행동제약은 할 수 없어.) 고삐를 없애려면 키스하면 됨. 입술에. 대부분의 산타와 순록은 크리스마스 전야에 작업을 끝내면 쿨하게 키스하고 빠이빠이해. 하지만 둘 사이에 신체적 접촉이 있으면 고삐는 다시 생기게 되지. 


츠키시마의 외할아버지는 순록이었어. 엄마 아빠와 형은 다 인간이었고 이제 우리 집안에 순록은 없겠구나 하고 안도하는듯 서운해하던 할아버지는 두번째 아이인 케이가 태어나자 눈물을 흘렸어. 첫째인 아키테루 때에는 그저 손주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아버지가 보인 눈물에 어머니는 직감했지. 케이가 순록이구나. 산타를 만나지 않는 한 순록은 인간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 오늘날 적지 않은 수의 산타와 순록이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자신이 산타인지 순록인지 깨닫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지. 


차라리 케이가 평생 산타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할아버지는 바랐어. 할아버지의 산타는 할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였는데 어느 사건으로 인해 순록인 할아버지를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거든. 홀로 남은 할아버지는 괴롭고 괴로운 시간을 허비해야 했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산타가 없는 순록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어. 할아버지의 고삐는 중간에서 끊어져 달랑달랑 하늘을 향해 흔들리곤 했어. 하늘의 도우심으로 겨우 만난다 해도, 운명의 고삐로 이어져있는 사이라고 해도 헤어질 수 있어. 그 아픔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가 없지. 할아버지는 케이가 이런 아픈 마음은 몰랐으면 했어. 


츠키시마 케이는 할아버지를 잘 따르는 어린이로 자라나게 돼. 케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 할아버지는 케이에게 순록과 산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어. "얘야 케이, 사실 너는 순록이란다," 하고. 물론 슬픈 부분은 싹 빼버린 후, 산타와 함께 눈 내리는 성탄 전야의 하늘을 달리며 선물을 나누어주던 신나는 추억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어. 어린 케이는 할아버지의 추억을 들으며 산타를 기다렸어. 언제 어디서 산타를 만나게 될 지 몰라. 길 가다 산타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 항상 단정한 차림으로 나섰어. 산타님에게 개구쟁이로 보이기는 싫었거든. 어른스럽고 착한 순록이 되어야지! 산타는 멍청한 순록은 싫어할거라 생각해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 그렇게 초등학생이 되고, 키가 점점 자라나고, 야마구치를 만나고, 배구를 시작하게 되고…… 케이는 점점 자라나는데 산타는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내 산타는 이미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늦어버린 건가?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고, 애정은 무관심이 되었어. 


중학교 3학년 겨울, 케이는 산타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어. 산타 따위 앞으로도 영원토록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노력은 보답받지 못해. 기다리는 사람은 바보가 되어버려. 츠키시마는 점점 매사에 냉소적으로 변해갔어. 햇살같이 웃던 미소는 입끝이 뒤틀린 비웃음이 되어 주위 모든 것에 벽을 친 것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어. 아주 특별한 예외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인 야마구치 정도였지. 케이를 "츳키-!" 라고 부르며 초등학교때부터 함께해온 야마구치는 가끔 귀찮게 굴지만 견딜만 했어. '...차라리 이 녀석이 내 산타였다면...' 앞에서 혼자 떠드는 야마구치를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하던 츠키시마는 스스로를 비웃었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나.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는 나란히 카라스노 고등학교로 진학했어.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형이 다녔던 고등학교였기도 했으니까. 배구부에 입부할까 말까로 망설였지만 결국은 입부한 츠키시마는 계절을 지나며 답지 않게 뜨거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어. 쓸데없이 뜨거운 녀석들은 싫었지만, 잘난척하는 엘리트 여러분들의 얼굴이 츠키시마의 블로킹에 네트 너머에서 흉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은 보기 좋았어. 후쿠로우다니의 시끄러운 부엉이 대장 선배의 말을 츠키시마는 이제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아침 연습에 조금 늦을지도. 생각과는 다른 느긋한 걸음이 체육관을 향하고 있었어. 그때였어. 갑자기 평온하던 츠키시마의 심장이 시끄러워졌어. 표정변화가 적은 얼굴에 확연히 열기가 내달리며 머리속까지 심장소리가 쿵쿵 울렸어. 괴로워. 귀끝까지 빨개진 얼굴로 츠키시마는 이를 악물었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 신체의 갑작스러운 변화와는 다르게 뇌는 침착하게 상황을 인지했어. 케이의 할아버지가 그의 산타를 처음 만났을 때, 할아버지는 시내 한복판에서 산타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해. "...이제서야 나타나다니, 너무하잖아!!!!" 라고. 영문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산타는 초면에 자기를 붙잡고 엉엉 우는 청년을 달래느라 쩔쩔맸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오해를 했었더라고 했지. 틀림없었어. 산타가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해. 그것도 이 학교 어딘가에. 츠키시마는 입술을 깨물었어. 


이제와서 산타라니. 차라리 평생 나타나지 말지 왜 이제서야! 주먹을 꽉 쥔 츠키시마의 팔이 뒤로 당겨졌어. 내려다 본 손목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끈이 생겨나 있었어. 할아버지의 손목에서 흔들리고 있던 얇은 가죽끈. 고삐였어. 


츠키시마는 뒤를 돌아보았어. 카라스노의 교복을 입은 소녀가 자기 손목을 들여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 키는 160이 될까 말까. 긴 머리를 솜씨좋게 말아 묶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소녀는 손목에서부터 늘어난 고삐를 따라 시선을 옮겼어. 츠키시마와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아주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어. 


 - 저기, 이 손목의 이건 뭐니? 왜 연결되어 있는 거야? 


네가 산타라서 그래. 츠키시마는 그 말만 하고는 걸음을 옮겼어. 아니, 옮기려고 했어. 소녀가 어, 잠깐만! 기다려! 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소녀의 말에 츠키시마의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듯이 움직이지 않았어. 내 산타구나. 저 애가. ......진짜 산타야. 츠키시마는 화가 치밀어올랐어. 


 - 기다리라는 말, 취소해. 


 짜증난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은 채 말을 내뱉은 츠키시마를 보며 소녀, 세이카와 소라는 당황했어. 


소라는 한국인 엄마와 일본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일본에서 살다 초, 중학교는 한국에서 보냈어.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족 모두가 일본에 정착하기로 하고 건너온 것이었지. 집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소라의 일본어는 네이티브였어. 일본의 학교는 처음인데다 전학생이라 친구도 없는 소라는 좀 막막한 느낌으로 학교 탐방을 겸해서 교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이곳저곳 둘러보던 소라는 누군가가 손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았어. 뒤에는 아무도 없었어. 이상하다. 분명히 뭔가가 손목을 잡아당겼는데. 뭔가 걸리는 느낌에 고개를 내려 손목을 들여다 본 소라는 깜짝 놀랐어. 가죽으로 된 가는 벨트같은 것이 손목에 감겨 있었거든. 벗겨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어. 지나가는 학생들이 자기 손목을 부여잡고 낑낑거리는 소라를 의아하게 쳐다보는데도 소라는 손목의 끈을 풀어내는 일에 집중했어. 


얇은 가죽끈은 하늘거리며 길게 길게 늘어져 어딘가를 향해 있었어. 풀어내는 것을 포기한 소라는 그 끈을 따라 걸음을 옮겼어. 교실들을 지나, 복도와 건물 사이를 지나, 자전거 보관소를 지나 체육관 근처의 복도를 지날때쯤 소라는 한 소년을 발견했어. 햇살이 내려앉은 듯한 보송보송한 밝은 색 머리를 한 남학생이었어. 키가 무척이나 컸어. 190가까이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남학생의 손목에도 있었어. 가죽으로 된 팔찌 형태의 끈이. 소라는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 손에 묶인 끈을 살짝 잡아당기자 등을 돌리고 걸어가던 커다란 남학생이 움찔 하고 자리에 멈춰서더니 뒤로 돌았어. 약간 붉어진 안경 너머의 눈이 차가웠어. 


 - 기다리라는 말, 취소해. 


 무표정하게 내뱉은 말에 소라는 순순히 "응! 취소할게!" 라고 외치고는 곧 "어, 산타라니, 무슨 말이야? 이 끈은 또 뭔데?" 라고 질문을 쏟아냈어. 츠키시마는 점점 기분이 더 나빠졌어. 할아버지로부터 산타는 보통 아주 평범한 인간이고 순록과 만나서 고삐가 생긴 것을 보면 매우 당황하기 때문에, 일단 진정시킨 후 순록과 산타에 대해서 설명해 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알 게 뭐야. 이제와서 나타난 주제에. 산타 실격이야. 츠키시마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술술술 말했어. 


-너는 산타고, 나는 순록이야. 크리스마스 날, 선물 나눠주는 그 산타 맞아. 이 손목의 끈은 산타와 순록이 만나면 생기게 되는 것.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이고 산타와 순록에게만 보여. 참고로 이 고삐가 생겨나 있는 동안에는 말 조심해. 고삐의 힘 중에는 순록의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도 있으니까. 방금처럼 기다려 라거나 저리 가, 라고 멋대로 말하면 내 의지따위는 무시하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돼. 


 기분나쁘게.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소라는 들어버렸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그럼, 이제 평생 이 고삐 달고 다녀야 해?" 소라의 말에 츠키시마가 코웃음을 쳤어. "설마. 고삐를 없애는 방법이 있어." 츠키시마가 성큼성큼 다가와 소라의 바로 앞에 섰어.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키였어. 소라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어. 허리를 숙여 소라와 눈을 맞춘 츠키시마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음. "키스하면 돼. 어때?" 소라는 빠르게 뒷걸음질쳐서 츠키시마와 거리를 벌렸어. "가, 가깝잖아! 뭐야, 갑자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츠키시마의 입꼬리가 삐뚤게 올라갔어. 그래. 이런 순록은 싫겠지. 아니, 넌 순록 자체를 원하지 않았겠지. 츠키시마는 그대로 휙 돌아서서 체육관을 향해 걸어갔어. 그게 소라와 츠키시마의 첫 만남이었어. 



소라는 귀신이나 도깨비나 여우같은 것에 홀린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아빠. 일본 고등학교는 전학 첫날부터 파란만장해요. 뻘쭘하게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어. 긴 팔다리, 보송해 보이는 짧고 밝은 색 머리카락, 투명한 안경알 너머의 찌푸린 얼굴. 아까의 그 남자애였어. 


 -아, 아까의 순록…….

 -츠키시마 케이. 츠키시마 라고 불러. 


 소라의 말을 잘라먹으며 츠키시마가 말했어. 뒤늦은 통성명에 소라도 제 일본 이름을 말해주었어. 난 소라. 세이카와(星川) 소라야. 세이카와… 츠키시마의 입에서 나오는 소라의 이름은 굉장히 낯설게 들렸어. 츠키시마는 혼란스러웠어. 할아버지의 산타는 남자였으니까 제 산타도 무의식중에 남자가-자신보다 약간 연상의-아닐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었거든. 여자 산타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렇게 작고 비실해 보이는 여자애가 내 고삐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산타라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 가능하면 고삐를 없애고 두 번 다시 접촉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짜고짜 고삐를 없애야 하니까, 라며 산타에게 키스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차마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어. 


결국 츠키시마는 며칠 후 손목에 고삐를 단 채로 할아버지 집에 방문하게 돼.


 할아버지는 케이의 손에 생겨난 고삐를 보고 한순간 복잡한 표정을 했어. 기쁨, 두려움, 안타까움, 슬픔,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할아버지는 입을 열었어. 


-케이. 산타를 만났니? 

-네. 

-어떤 사람이었니? 

-여자애요. 쬐그맣고 못생긴. 


사실 그렇게 못생기진 않았지만. 오히려 귀여운 편이었지. 하지만 츠키시마는 입을 꾹 다물었어. 내심 케이가 산타를 꽤나 기다려왔다는 것을 아는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었어. 여자아이인가. 어쩌면 케이는……. 할아버지는 약간 안도했어. 그리고 츠키시마에게 소라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지. 츠키시마는 엄청 싫은 표정을 했지만,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했어. 어쨌거나 츠키시마 케이는 할아버지를 아주 잘 따르는 손자였어. 


다음날 학교에서 소라를 만나자마자 츠키시마는 대뜸 우리 할아버지가 세이카와를 만나고 싶어해. 라고 말했어. 소라는 또 당황했어. 키가 큰 남자는 싱겁다더니 일본에도 통용되는 거였나. 츠키시마의 할아버지가 나를 왜? 라고 묻자 츠키시마가 시선을 돌린 채 말했어. "우리 할아버지도 순록이거든." 소라는 왠지 두근거렸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츠키시마는 평소의 심술맞은 어투도 아니었고, 표정은 여전히 기쁜지 슬픈지 알기 어려웠지만 왠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거든. 소라는 몰랐지만, 츠키시마는 중학교때부터 은근히 인기가 많았어. 하지만 그 차가운 태도가 장벽이 되어 대놓고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어. '그 츠키시마가! 여자애랑! 얼굴 한 번 안 찌푸리고! 이야기를 한대!' 츠키시마와 같은 중학교 출신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대체 세이카와상은 어떻게 그게 가능해?!?!? 라는 의문이 떠돌았어. 



- 처음 뵙겠습니다. 케이의 할아버지인 츠키시마 류지라고 합니다. 케이로부터 산타님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츠키시마에게 오랜 시간 세월을 흘려보내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았어. 훤칠한 키에 편안한 바지와 셔츠, 따뜻해보이는 베이지색 니트가디건을 걸친 할아버지는 정좌하고 앉아 소라에게 공손하게 인사했어. 소라도 자세를 바로 해 앉으며 고개를 숙였어. 


 - 처음 뵙겠습니다. 세이카와 소라라고 합니다. 


츠키시마의 할아버지 댁은 일본식 정원이 아름다운 고택이었어. 작은 집이지만 구석구석 사람 손 닿아 가꾼 아늑한 집이었음. 겨울이라 눈 쌓인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작은 연못의 얼음 아래에는 알록달록한 잉어 몇 마리쯤 잠들어 있을 것 같았어. 봄이 되어 꽃이 핀다면, 굉장히 아름다울 것 같았지. 테이블 위에는 홍차와 딸기 쇼트 케이크 한 조각이 개인접시에 예쁘게 담겨 있었어. 소라는 직접 보았는데도 믿기 어려웠어. 적당한 농도의 아쌈과 얼 그레이는 능숙한 솜씨로 츠키시마가 세팅한 거였어. 소리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오-' 하고 감탄하는 소라에게 츠키시마는 '뭐. 왜, 뭐' 라는듯이 미간에 주름을 지어 보였어. 홍차잔에 손을 뻗은 할아버지의 손목에는 중간에서 사라지듯 옅어진 고삐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어. 소라는 그것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어. 


 -...어? 죄송해요. 왜, 이러지... 


 당황한 소라가 눈을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어.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츠키시마의 할아버지로부터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슬픔이 밀려들어왔어. 놀란 듯 작게 숨을 들이킨 츠키시마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소라의 어깨를 잡았어. 그 힘에 기대어 소라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어. 


- 이 늙은이를 걱정해 주시는군요. 상냥한 산타님.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비치는 할아버지가 슬프게 미소지었어. 


소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강렬한 슬픔 사이로 떠오르는 단어들은 할아버지가 케이에게도 말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산타의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이었어. 


- 어떻게...? 이럴, 수는 없어요! 왜.. 할아버지만! 


소라는 울음 사이로 토해내듯 소리쳤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 이럴 수는 없어. 이래서는 안 되는거잖아. 할아버지도, 그의 산타에게도 잘못은 없었어. 그런데 왜!? 충분히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소라의 감정변화에 츠키시마는 소라의 어깨를 감싸안은 손에 힘을 주었어. 


- ……그는 내 산타였으니까요.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었어. 흙이며 지푸라기가 묻은 더러운 돌이 물결과 파도와 바람에 잘 닦여 투명한 수면 아래에서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것 같은 미소였어.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그 웃음에 소라도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따라 웃었어. 


그럴 수 밖에 없었어.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힌 소라는 엉망이 된 얼굴을 씻고 오겠다며 안내를 받아 자리를 비웠어.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자리를 비우는 소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말했어. 


- 케이, 좋은 산타를 만났구나.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은 훌륭한 산타의 자질이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장난스럽게 윙크해보였어. "저렇게나 귀여운 산타는 흔치 않잖니. 잘 됐구나, 케이." 그 말에 츠키시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어. 



소라가 엉망이었던 얼굴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두 사람을 지금은 쓰지 않은 별채로 안내했어. 가재도구에 흰 천이 덮인 일본식 방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 시대극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방이었어. 꽤 넓은 방 한가운데에는 아기 침대같이 생긴 물건이 마찬가지로 흰 천에 덮여 있었어.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천 끝을 잡았다가 잠시 손을 멈췄어. 소라는 걱정스러웠어. 아까처럼 격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슬픔에 갇힌 것처럼 보였거든. 걱정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소라에게 할아버지는 괜찮다는 듯이 웃어주고는 힘주어 천을 벗겨냈어. 약간의 먼지와 함께 드러난 것은 체리나무 색으로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나는 나무 썰매였어. 크리스마스 연하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이었어. 와아! 소라가 소리내어 감탄했어. 츠키시마의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썰매에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어. 할아버지는 쑥쓰럽다는 듯이 미소지었어. 썰매의 나무결을 따라 쓰다듬는 손길에서 애정이 쏟아졌어. 


-산타님. 괜찮다면 이 녀석을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늘을 날아본 지 오래된 녀석이지만 길이 잘 들어서 거칠지는 않을 겁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췄어. 그리고는 소라의 귀에 살짝 속삭였지. 케이는 저래봬도 여섯 살 때부터 순록이 되면 어떻게 날아야 멋있을지 계획을 세우며 고민했던 아이니까, 괜찮을 겁니다. 라고 말이야. 소라는 참지 못하고 그만 푸흡, 하고 뿜어버렸고, 모든 관심을 썰매에 집중하며 만지작거리던 츠키시마는 소라의 웃음소리에 손을 딱 놓고는 고개를 홱 돌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 츠키시마의 손목에 매달린 고삐만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