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야마구치 타다시 드림

 

흔들리며 피는 꽃

 

류아키 님 리퀘스트

 

 

 

얼마 전부터 카라스노 고등학교 제1체육관에 흥미로운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인터하이 이후 부활동은 은퇴, 수험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지 않던 미치미야 유이가 체육관 문틈 사이로 고개를 쏘옥 내밀고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을 때, 카라스노 고등학교 여자 배구부 1학년 윙스파이커 타치바나 아키나는 순식간에 두 눈이 그렁그렁해져서는 선배의 이름을 외치며 뛰어나가려다가 미치미야의 뒤에서 겸연쩍은 듯 웃고 있는 세 명의 남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 배구부의...아즈마네 선배, 와 니시노야 선배...?”

“에헤헤...”

“...그리고... 타다시?!”

 

안녕, 아키나! 안에 혹시 린코쨩 있을까? 아키나의 환호를 듣고 연습중이던 여자배구부원들이 문쪽으로 모였다. 배시시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던 유이가 슬쩍, 눈짓으로 뒤쪽에 나란히 선 남자 배구부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 배구부에서 말야, 개인연습을 할 공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쪽 연습이 끝나고 나면 조금 사용하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을까?”

 

아...네! 여섯 시 이후라면 괜찮아요! 유이의 후임으로 여자 배구부의 주장이 된 스도 린코가 주변을 돌아보고 동의를 얻었다. 왠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세 사람이 스도의 대답을 듣고 얼굴에서 환한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자세를 바로 하고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로 니시노야의)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란 모에를 달래던 아키나가 야마구치를 바라보았다. 같은 학교라지만 반도, 부활동도 다르다보니 자주 만나지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타다시, 어쩐지 조금...

 

‘어른스러워 진 것 같아...’

 

한 순간, 시선이 만났다. 야마구치는 아키나를 알아채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늦여름의 햇살이 쏟아지며 옅은 주근깨가 피어난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사진, 으로 찍어두고 싶다.’

 

반사적으로 져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아키나는 휴대전화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운 숨을 내쉬었다.

 

 

타고 태어나기를 예쁜 것이 좋았다. 반짝이는 것들과 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것들. 보고 있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가득해졌다. 아키나는 아름다운 것에 한해서만은 이상할 정도로 역치가 낮았다. 그러니 매사가 행복에 겨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예쁜 것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면 “...이게 예쁘다고?” 라는 반응이 나올만한 것들도 있었다. 그게 뭐가 예쁘냐는 핀잔에 아키나는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곤 했다. 왜? 예쁘잖아?

 

“...난 예쁘지 않은데...그런 말, 남자한테는 쓰는 거 아니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야마구치 타다시가 놀이터의 그네에 담겨 작게 흔들리면서 중얼거린 말에도 아키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학교의 녀석들이 불쌍하게도 어린 나이에 단체로 시각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하다. 야마구치의 엷은 색 피부에 피어난 꽃들은 광대를 중심으로 눈 밑에서 위쪽 볼까지 모여 있었다. 아키나는 가끔 야마구치가 ‘내 얼굴에 뭔가 묻었나?’ 싶어 허둥지둥할 때까지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주근깨가 옅게 내려앉은 얼굴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해바라기처럼 예뻤다. 녀석들은 “타다시의 얼굴, 좁쌀이 뿌려진 것처럼 우둘투둘해~“ 하고 놀려댔지만, 이것 봐.

 

“타다시, 그만 뚝!”

“.......”

 

작게 흔들리는 그네를 멈추어 세운 아키나가 내민 손에 와 닿은 야마구치의 얼굴은 계속되는 홍수에 반쯤 젖은 채 따끈하게 열이 올라 있었고,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보드라웠다. 그 녀석들이야말로 이마에 여드름이 하나 둘 돋아서 두꺼비처럼 우둘투둘하더니만! 조금 을러댄 것만으로도 도망쳐버리는 쫄보들 주제에. 말로만 두들겨 놓지 말고 아주 몽둥이로 두들겨 놨어야 하는 건데!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아 씨근대면서도 야마구치의 눈물을 훔쳐 내는 작은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울지 마, 타다시. 그 녀석들, 다음에도 또 그러면 그때는 반만 살려놓을 테니까.”

“...아키나, ...그러면 안 돼...”

 

코 막힌 소리로 겨우겨우 말하는 야마구치의 눈을 들여다보며 순순히 “알았어. 그냥 조금 혼내기만 할게.” 라고 대답하는 그녀, 타치바나 아키나와 저는 동갑인데 도대체 이 늠름함은 뭐란 말인가...

 

야마구치는 코먹은 소리를 내며 울음을 삼켰다. 꼴사나워, 라고 가볍게 비웃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반은 다르지만 얼굴은 알고 있었다. 중학생 형들보다도 큰 키와 쿨하고 어른스러운 태도로 유명한 남자아이. 그 애의 말이 맞았다. 기가 약하고, 누가 조금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면 금방 울어버리는 비실비실 타다시였지만, 여러 명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내던 그 애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면, 아키나가 나 때문에 곤란한 얼굴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눈을 질끈 감아서 남은 눈물을 짜낸 야마구치가 그네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럼, 아키나. 내일 봐!”

“타다시?”

 

등 뒤에서 그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야마구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꼴사납지 않아. 꼴사납지... 않아! 금방이라도 헐떡이며 튀어나올 것 같던 울음은 달리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목 뒤로 넘어가 뱃속 깊이 가라앉았다.

 

 

시작은 그 애를 닮고 싶어서였다. 츠키시마 케이. 츳키가 하는 배구를 같이 하면, 나도 츳키처럼 멋있어질 수 있을까? 로 시작된 새로운 일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코트에 들어가지 못해도 친구들과 팀을 응원하고, 츳키가 활약하면 두 배로 기뻐하며 날뛰었다. 쿨한 츳키. 꼴사납지 않은 츳키의 곁에 있으면 자신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또래보다 작았던 키는 중학 시절을 지나면서 꽤 자라서, 중학교 3학년이 될 무렵부터는 아키나와 정면으로 시선이 맞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키가 자라고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여전히 야마구치의 안에는 비실비실 타다시가 살아 있었다. 그래서 세이죠 전과 와쿠난 전, 마지막의 마지막 기회에

 

도망쳤다.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실수로 모두의 배구가 끝나버리는 것만은 죽어도 싫었다. 팀을 위한다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공포에 굴복한 끝에 타협했다. 코치님과, 팀 메이트를 실망시켰다. 다이치 선배와 엔노시타 선배도 괜찮다며 실수가 아니라고, 다음에 결정지으면 된다고 말해 주었지만 야마구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거! 프라이드 외에 뭐가 있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고작 부활동인데. 도대체 무엇이 모두를 그렇게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냐는 츳키의 말에 잘난 듯이 멱살까지 잡아 대며 말한 주제에! 정말 꼴사나워!

 

야마구치는 입술을 깨물고는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서브를 보냈다. 안정적으로 직선을 그리던 공은 서브토스의 타점이 높지 않았는지 끝내 네트를 넘지 못했다. 힘없이 툭 떨어지는 공을 따라 야마구치가 주저앉았다. 조금 더 날카롭게. 아슬아슬하게 네트 위를 넘도록. 네트를 넘을 때까지는 회전이 들어가지 않아야 궤도를 읽히지 않는다. 눈을 감고 시마다 씨의 목소리를 되짚어가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던 야마구치의 바로 옆으로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사히 선배랑 니시노야 선배가 돌아왔나? 라고 생각하며 눈을 뜨자, 이번에는 얼굴 정면으로 공이 날아들었다.

 

“으앗! 아파!”

“아...미안, 타다시!”

“...아키나?”

 

여자 쪽은 연습 끝난 것 아니었어? 야마구치의 말에 아키나가 헤헤, 하고 웃었다. 체육복과 교복과 배구부 져지가 적당히 섞인, 굉장히 실용적인 옷차림을 한 아키나가 다시 공을 올렸다. 반사적으로 일어나 리시브한 공이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키나에게로 날아갔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서브와 리시브가 이어졌다. 익숙해진 침묵을 깬 것은 아키나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올라온 공이 대화와 함께 이어졌다.

 

“있잖아, 타다시.”

“...응.”

“인터하이 때, 봤었어. 선배들이랑...”

 

우리는 1회전에서 일찌감치 떨어져서, 유이 선배는 펑펑 우는 치즈루 선배랑 우리를 위로하고 또 한참 부둥켜 울고 나서, 퉁퉁 부은 눈을 해가지고 남자 쪽을 응원하러 갔었어. 그 다음날, 아오바죠사이 전까지. 전부.

 

전부, 라는 말에 야마구치의 리시브가 흐트러졌다. 겨우겨우 공을 살려 보낸 야마구치가 뒷머리를 긁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미안.”

“왜 사과해?”

 

조금 힘이 들어간 스파이크에 가까운 공과 함께 뾰족한 말이 날아들었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 아키나는 스포츠 만능이었지만 특히 배구에 소질이 있었다. 공의 위력만 보면 히나타보다도 위일지도... 범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공을 받아낸 야마구치가 뭐라 할 말을 고르는 사이 아키나가 말을 이었다.

 

“꼴사납지 않아. 이기기 위해서였잖아? 타다시는 도망치지 않았어. 도망치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앞을 바라보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올려 넘긴 공이 스트레이트가 되어 야마구치의 왼쪽으로 내리꽃혔다. 멍하니 네트 너머를 바라보자 아키나가 활짝 웃으며 브이 사인을 그려보였다.

 

“그리고... 서브할 때의 타다시는 촬영해 두고 싶을 만큼 예쁘니까!”

 

자신을 가지라구? 자신만만한 미소에 야마구치가 무어라 입을 달싹이려는 순간

 

“오오! 타치바나! 스트레이트 잘 하네! 대단해!”

“여자 배구부 에이스의 위력인가...”

 

감동한 듯 오오- 하며 연신 박수를 치는 아사히와 큰 소리로 칭찬을 거듭하는 니시노야에게 가로막혔다. 아하하, 에이스라니... 마나미 선배가 있는데 어떻게 제가! 진심으로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웃어버리는 아키나를 향해, 야마구치는 속으로만 말을 건넸다.

 

‘그래도,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은 조금 아니라고 생각해...’

 

 

손 끝에 전해지는 떨림. 작은 숨소리에도 증폭되는 긴장. 이제는 서브를 시작하라는 호각 소리에 일일이 놀라지 않는다. 여유를 갖고 긴 숨을 내쉰 야마구치가 신중하게 서브 토스의 시점을 재기 시작했다.

 

“야-마-구치-!!! 나이스 서브 한 방!!!”

 

웜업존에서 선배들의 응원이 들려온다. 야마구치는 이마에 공을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신중하게... 서두르지 말고.

 

“타다시! 나이스 서브!”

 

야마구치는 고개를 들었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트 너머에 펼쳐져 있는 것은, 만개한 꽃밭. 야마구치는 손을 들어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꺾이지는 않는 꽃의 창을 던져 넣었다.

 

 

긴 호각 소리와 함께 아래를 향하는 붉은 깃발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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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죄송합니다. 일단 사죄하겠습니다. 소꿉친구의 묘미는 서로에게 서로가 당연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드실런지는 모르겠으나 받아 주세요8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