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엔노 짧은 글
엔노시타 치카라의 짝사랑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성정이 불 같은 타나카나 시합 중에만 고요한 니시노야, 뭐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는 1학년들의 고삐를 틀어잡을 수 있을만한 인물이 2학년 중에는 단 한명 뿐이었다. 엔노시타 치카라. 지금쯤 본인만 반대하는 주장 지명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후배를 생각하며 다이치는 오랜만에 체육관으로 향했다. 배구 투성이인 고교 생활이었다. 코트 위에서 숨쉬는 순간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았으나 세상의 끝에 걸린 무지개를 찾는 소년처럼 코트 위를 달려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침내...... 다이치는 헛웃음을 지었다. 뭐야. 벌써 좋은 추억으로 넘겨 버렸나?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교사를 돌아 부실 쪽으로 향하는 다이치의 앞에 여느때보다 훨씬 곤란해 보이는 얼굴을 한 후배가 나타났다.
***
사실 정말로, 꿈에도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냐고 물으면 엔노시타 치카라는 할 말이 없었다. 봄고 예선이 시작되기 전, 우카이 코치님은 2학년들에게 "너희도 슬슬 차기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봐라" 라고 말했었고, 자연히 모일 때마다 차기 주장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 때마다 상쾌할 정도로 단호하게 "그럼 치카라네!" 라고 외치고는 캬캬캬캬 웃어버리는 단세포 듀오 때문에 치카라는 몇번인가 얼굴을 구겼다. 이건 낙제 위기에 빠진 바보 4인방에게 속성 과외를 해 주거나 할 의지를 상실한 방학 숙제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란 말이야! 나는, 도망쳤던 사람이잖아. 이를테면, 배신자라고? 물론 뒷말은 입 밖에 내어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연계가 중요한 배구에, 게다가 그 연계의 중심이 되어 모두를 이끌어야 하는 주장 자리에 연습이 힘들다고 해서 꼴사납게 도망쳤던 자신이 거론된다는 상황 자체가 어쩐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큼큼, 헛기침을 해 보인 타나카 류노스케가 곧은 눈으로 치카라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치카라는 말이야, 분명히 '양쪽 다'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나나 노얏상은,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서도, 그거잖아? 배구 외에는 없다, 라는 느낌! 하지만 치카라는 알고 있어. 배구뿐만이 아닌, 다른 것도. 생각이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 뭐 괜찮잖아?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쪽도 확실히 해 줄 것 같고 말이야!
"그러니까 잘 부탁해, 차기 주장!"
팡팡 어깨를 두드리는 차기 에이스의 매운 손끝에 치카라는 왈칵 성을 내고 말았다. 너, 손! 아프다고 타나카!
엔노시타 치카라에게 주장은 태산 같고 대지 같은 사람이었다. 1학년 때의 주장인 쿠로카와는 태산 같았다. 무섭고 엄격한 선배는 다독여주기보다는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카라스노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의 주장직을 맡았던 남자는 달랐다. 우선 운동부라면 으레 있는 상하관계의 날선 분위기가 사라졌다. 선배들도 졸업하고 우카이 감독님이 다시 없어져버린, 겨우 시합 가능 인원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게 된 팀을 사와무라 다이치는 그 넓은 그릇으로 끌어안았다. 기술 지도자가 없어도 꼼꼼히 업웜을 하고, 스파이크와 리시브 연습을 했고, 3:3으로 연습 게임도 했다.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들여서 쿨다운을 한 다음에는 학년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모여서 뒷정리를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종종 "야! 다이치 선배가 고기만두 쏜대!!" 하는 외침을 따라 환호성이 울리곤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하지만 3월의 현민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때, 다른 운동부에 체육관 사용 시간을 넘기라는 압박을 받았다. 다이치는 수업 도중에 뛰어나가 이미 한시간 전부터 타케다 선생님이 도게자를 하고 있던 교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부활동 시간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열리지 않는 교감실 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이 녀석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다이치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연습하러 가자."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엔노시타 치카라는 사랑에 빠졌다.
***
다이치 선배. 이름을 부르자 웃음 띈 얼굴이 치카라를 향한다. "부탁한다. 엔노시타." 다이치의 말에 뭐라 말할 듯 달싹이던 엔노시타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발 밑의 땅이 흔들리는 기분이다. 나는 당신을 대신할 수 없어요. ......나는, 선배와. 조금 더, 조금이라도 더.......
"엔노시타?"
놀란 듯 부르는 다이치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엔노시타 치카라는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도 없는 눈물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오른 마음과 같이 흘러내렸다.
......선배, 다이.....치 선배. 선...배!
주장을 맡긴 게 많이 부담스러우냐며, 엔노시타라면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토닥이는 다정한 팔을 구원처럼 붙든 채 엔노시타 치카라는 길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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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에서 엔노시타가 다이치 짝사랑하는거 보고싶다는 썰 보고 두드림.
엔노시타가 다이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을 리가 없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리 생각해도 치카라만큼 짝사랑이 잘 어울리는 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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