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스가와라 코우시 드림

봄, 마음


세련님 리퀘스트



언제나처럼, 캐붕과 날조 주의





"안녕하심까!"


부실 문을 열고 우렁차게 외친 타나카에게 부실 안에 있던 시선들이 모여들었다가 곧 흩어졌다. 어- 왔냐. 건성건성 대답하는 선배와 동기들을 향해 타나카는 "쟈잔-!" 하고 입으로 효과음을 내며 메신저백에 채 담기지 못해 툭 튀어나온 두루마리를 뽑아들었다.


"★MKU 38★의 스물 여섯번째 싱글 음반 초회 특전, 수영복 버전 포스터! 입수했습니다!"


새로운 학기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어떻습니까! 등장하자마자 부실의 온도를 3도씨쯤 올리는 타나카의 텐션에 "타나카 시끄러워." "옷이나 갈아 입어라, 빡빡이!" 등으로 응수하려던 부실 내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코웃음을 치며 두루마리를 흔드는 동작에 따라 다섯 쌍의 눈동자가 데룩데룩 구르다가 자신만만하게 종이를 펼쳐 든 타나카의 손 끝에 매달려 모였다.


"오오... 이건, 꽤..."

"훌륭하군."

"...그렇네요."


캬하하하! 어떻습니까! 전통 있는 카라스노 고교 남자 배구부실에 모시기에 한 점의 모자람도 없지 않습니까! 두 손을 옆구리에 얹고 호탕하게 웃는 타나카의 옆에서 배구부원들의 심각한 토의가 이어졌다.


"나는 이쪽일까나."

"아, 나는 이쪽이..."

"엔노시타, 생각 외로..."

"다이치 선배는 굉장히 솔직하시네요..."


빠르게 선점되기 시작한 종이 위의 그녀들을 향해 타나카가 울부짖었고, 곧 종이 위에는 [타나카 변태] 라고 써붙인 테이프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스가, 너는 어느 쪽이야?" 테이프를 들고 이쪽을 향한 다이치에게 웃음을 돌려주며 난 됐어, 라고 말하려던 스가와라는 뭐 어때, 괜찮잖아? 라는 듯한 다이치의 시선에 주먹을 턱 아래에 괴고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 막연히 아직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갈색 머리에 웃음이 자연스러운 멤버의 위에 [연상이 좋음. 스가와라] 라고 적힌 테이프를 붙였다.


"스가 선배는 누님계가 취향이십니까!"


역시! 성숙한 어른의 매력! 스가와라는 니시노야와 아사히의 정학 이후로 축 가라앉은 부활동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부러 더 밝게 행동하는 타나카의 저 기특한 밤톨머리를 아주 격하고 집요하게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손은 뇌의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스가와라의 손이 망설이지 않고 비둘기같이 보송한 타나카의 밤톨머리를 꽉 잡았다.


"스, 스가 선배!?!?!"


저...죄송합니다...아픈데요. 저. 스가와라는 타나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듬까지 타 가며 격한 후배사랑을 실천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3학기였다.



봄은 아득하게 길었다.


첫 발령지는 그녀가 고교시절을 보낸 모교였다. 작은 학교였지만 도서관은 제법 규모가 있는 곳이다. 새 학기의 첫날, 그녀는 도서관 문 앞에 서서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조심하지 않으면 여닫는 소리가 큰 낡은 문틀과 공기 사이에 떠도는 먼지와 서가 귀퉁이의 작은 낙서까지. 그녀가 카라스노의 교복으로 몸을 감쌌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오기 전에는 고문 선생님을 두고 도서부의 학생들로만 도서관을 운영했다고 했는데, 아이들끼리 운영한 것을 감안한다면 합격점을 줄 수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도서의 배열상태부터가 엉망이었다. 대분류를 제대로 찾아 넣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복본은 서가를 뛰어 넘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었고, 두꺼운 책 사이에서는 모두가 찾기를 포기했던 인기 라노베의 중간권이 나오기도 했다. 서가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돌며 분류기호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데에 꼬박 3주가 넘게 걸렸다. 덕분에 그녀의 황금연휴는 오한으로 시작해 몸살과 근육통으로 끝을 맺었다.


"선생님, 카라스노 출신이셨어요?"


눈을 빛내며 묻는 소년과 소녀에게 그녀는 웃어보였다. 그녀가 졸업하고 난 후에 카라스노 도서관에는 전자대출반납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거금을 들여 장서 전부에 대해 도난 방지 심과 바코드 작업을 진행했지만, PC와 도서 관리 프로그램의 잔고장이 잦은데다 학생들로만 운영된 기간이 길어 제대로 된 시스템은 있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난 3학기까지는 옛날 방식대로 대출표를 사용해서 대출반납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모처럼 좋은 기기가 있는데 왜 사용을 하지 않죠? 이제 막 재배열을 끝낸 그녀에게 장서점검이라는 새 퀘스트가 도착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전에 말했던 대로 전자대출반납시스템이 정상화되었기 때문에, 오늘부터 대출표를 수거하겠습니다. 보존서고의 것은 일단 두고, K군은 참고열람실의 0류 부터, I양은 일반열람실의 0류 부터 시작해 주세요."


지금은 점심시간이 다 지났으니, 방과 후부터 시작하기로 하지요. 네!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두 사람이 그녀를 향해 목례하고는 교실로 향했다.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도서부원이니 고생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녀는 9류, 문학 부분부터 내려가며 정리할 생각으로 서가를 돌았다. 책 한권 한권을 펼쳐 뒷부분의 대출표가 붙은 봉투를 떼어내고 남은 접착면에 도서관의 로고가 디자인된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서가 하나를 해치우고 나서 굳어진 몸을 펴고 어깨를 주무르던 그녀는 서가 사이를 넘어 한가롭게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의 불협화음을 들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서가와 서가 사이의 열람용 책상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세 명의 남학생이 좋을 대로 자리를 잡고 앉거나 엎드린 채로 자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채인 샤프펜슬이 조금씩 움직이며 공책 위에 바이탈 사인 비슷한 의미 불명의 선을 그었다. 아직 여름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덥지는 않았지만 많이 움직인 후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기온이다. 그리고 도서의 보존과 보관을 위해서 도서관은 밖에서 들어온 경우에는 기분 좋은 서늘함을 느끼게 될 정도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사람의 몸은 참으로 솔직한 것이어서 한껏 움직일 때는 모르지만 움직임을 멈추면 피로를 느낀다. 새카만 져지와 흰 셔츠. 검은 져지면......남자 배구부 져지가 이 색이었던가? 식사 후에 움직이고 왔으니 졸릴 만도 하네.


하지만 도서관에서 코까지 골아 대며 숙면을 취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그녀는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 후, 손을 들어 세 사람이 잠든 책상을 가볍게 노크했다. 가장 먼저 깨어난 사람은 긴 머리카락을 뒤로 꼭꼭 묶고 얼굴에는 수염까지 기른 와일드해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퍼뜩 잠에서 깨어난 남학생, 아즈마네 아사히는 그녀를 보고 눈에 띄게 당황했다.


"으허억???! 죄, 죄송합니다!"


일어난 건 다행이지만, 여기 도서관. 그녀가 미간을 모으며 손가락을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입 다물라는 유서 깊은 동작에 아사히가 놀라 제 입을 틀어막는 동안 옆의 두 사람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그녀를 향해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검은 머리의 탄탄해 보이는 남학생과,


"아사히, 시끄러워!"


딱딱하게 굳어 있는 수염 남학생에게 연신 촙을 먹이며 도서관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라고 조용히 구박하다가 고개를 돌린 남학생이었다.


먹이 한 방울 묻은, 아주 옅은 붓으로 색을 입힌 수묵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얌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는 옆에 앉은 수염 학생을 쥐 잡듯이 잡는데, 겉보기엔 꽤나 거칠게 보였던 아사히라는 학생은 사람 좋게 웃으며 그 구박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보통은 반대의 그림이 나오지 않나? 그녀가 학교 폭력의 현장을 방관하고 있자 수묵화 같던 학생이 무안한 듯 배시시 웃으며 여전히 손가락을 입 앞에 가져다 댄 채인 그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많이 시끄러우셨죠?"

"음... 자는 건 괜찮지만, 코는 골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삼중창에, 불협화음이었으니까. 그녀의 말에 세 사람의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학생들은... 배구부인가요? 부활동 만으로도 바쁠 텐데, 고생이 많네요. 그녀가 열람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에 시선을 주었다. 스가...와라. 3학년인가. 수험생이구나. 음...그런데, 학생들?


“점심시간, 이미 끝났는데요.”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던 세 사람이 식사를 하다가 오이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팔을 붕붕 휘두르며 격렬한 당황을 표현하다가 재빠르게 각자의 책과 소지품들을 챙기고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도서실을 빠져나갔다. 다이치, 라고 불린 검은 머리의 단단해 보이는 학생이 먼저, 그 뒤로 아사히가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묵화 같은 소년이 도서실 문을 잡은 채 그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네.”


웃는 얼굴이 습관인 듯 했다. 안 그러면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지. 그녀는 잘 그린 그림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맞추고 있는 사이 복도 쪽에서 다른 소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스가, 얼른 와! 다음, 이동수업이야!”

“그럼, 안녕히 계세요.”


소년이 도서실의 문을 닫고 뛰어가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 왔다. 스가 라고 불리는구나. 근래에 보기 드문 예의바른 아이네. 닫힌 문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지은 그녀가 곧 몸을 돌려 작업 중이던 서가로 향했다. 오자이 다사무와 소세키를 지나 도손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소년의 풀 네임이 스가와라 코우시 라는 것과 현대 소설보다는 근대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것을 알았다. 시마자키 도손의 소설 [봄] 의 대출표가 그녀의 손끝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스가와라 코우시 / 2012.06.04. - 2012.06.07

[대출표는 이제 사용하지 않는 건가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빙글빙글 돌리던 대출표를 떨어뜨릴 뻔 했다가 겨우 집어들었다. 뒷면에 쓰인 글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단정하고 약간 각진, 공부 잘하게 생긴 글씨체였다. 그녀는 한참동안 대출표를 들여다보고는 봉투를 떼어 버릴 듯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그리고 카디건의 주머니에서 샤프를 꺼내 스가와라의 글 밑에 화살표를 그렸다.


[→ 스가와라 군, 대출표에 낙서를 하면 곤란합니다.]


몇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에 대출표를 집어넣은 후, 다시 원래의 자리에 꽂아 두었다. 다음 날 하루는 괜히 시선이 돌아갔지만 곧 일상에 밀려 잊어버렸다.


며칠 뒤, 그녀가 서가 한쪽에 얌전히 몸을 기댄 [봄]을 다시 꺼내든 것은 단순한 변덕이었다.

 

***

 

대출반납이 전자화되면서 학생 개개인의 대출카드를 발급하느라 한동안 그녀는 정신없이 전교생의 사진과 이름, 바코드 처리된 학생번호들과 씨름을 했다. 대출표 정리작업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도서부원 두 명과 그녀. 단 세 명이서 수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정리하는 대 작업이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하지만 멍하니 780번대를 정리하다가 배구의 룰에 대한 서적을 발견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9열의 일본 문학, 그녀가 남겨둔 “봄”의 대출표가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흘러간 옛 영화라도 흉내 내고 싶었던 건가.'

 

그 뒤로 스가와라가 도서관을 찾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도서관 상주 교사라고 해도 일일이 출입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일부러 문학 쪽에는 반납도서의 배열도 하러 가지 않았다. 하지만 충동은 갑작스럽게 밀려왔다. 서가의 한 쪽에 꽂혀 있는 “봄”을 열고, 맨 뒤편의 대출표를 확인한 그녀가 손을 들어 입가를 매만졌다.

 

[→ 그래서 샤프로 쓰고 있으니까, 지워 주세요(웃음)]

[스포츠, 좋아하세요? 예를 들면... 배구라던가?]

 

배구? 그러고보니 이 아이, 배구부였지. 눈동자를 좌우로 한 번씩 돌린 그녀가 주머니에서 샤프와 지우개를 꺼내어 스가와라의 반듯하고 약간은 각진 글씨를 살살 지웠다.

 

[스포츠는 야구 정도 밖에 모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른 대출표를 봉투에 넣고, 봄을 다시 제 자리에 밀어 넣었다. 한동안 진정이 되지 않아 일없이 서가를 돌며 오배열을 찾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스가와라와 그녀의 필담이 시작되었다.

 

[1학년에 굉장한 후배들이 들어왔어요. 녀석들이라면, 전국도 노릴 수 있을 지도 모르죠.]

[왜 “녀석들이라면,” 인가요?]

[저는 주전이 아니니까요.]

[아...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코트 안에서 함께 뛸 수는 없지만, 코트 밖에서의 시간도 분명히 저와 우리 팀에게는 도움이 될 테니까요.]

 

봄의 책장이 덮이고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스가와라 코우시와 필담 아닌 필담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녀는 생각보다 자신이 스가와라와 자주 마주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집이 인근이라 다른 교사들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는 그녀가 지나는 체육관 안에서는 카라스노 남자 배구부의 아침 연습이 한창이었고, 점심시간에는 일찍 식사를 한 스가와라와 다이치, 아사히가 종종 공부를 하러 모이기도 했다.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교직원 회의 건으로 도서관을 벗어나는 그녀와 배구부원들로 보이는 무리가 엇갈려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스가와라는 중학생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남학생이나, 키가 작은 주홍빛 머리의 귀여운 남학생, 키가 크고 눈매가 무서운 남학생, 어느 때에는 윤기 있는 흑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여학생 등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즐겁게 소리 내어 웃곤 했다. 그 때에는 수묵화 같던 인상이 놀랄 만큼 다채로운 색을 띄게 되어서, 그녀는 잠시 가만히 서서는 멍하니 그 쪽을 바라보곤 했다. 가끔은 그런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그는 웃음지으며 그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네요.] 

[도서관은, 시원하니까.]

 

많이 더우면 도서관으로 피서하러 오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냉방병, 조심하세요] 

[열사병 ...조심해요.]

[누가 보아도 메리트가 없다고 말하는 일에 언제까지나 매달리고 있다면, 바보 같은 일일까요?]

 

여름의 인터하이에서 카라스노 남자 배구부가 8강에 들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말이었다. 스가와라는 최대 라이벌교와의 마지막 시합, 같은 포지션의 천재라고 했던 후배와 번갈아 뛰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이기지 못했다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샤프를 들었다.

 

[메리트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스스로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봄”의 대출표에 새로운 말이 쓰여지는 일은 없었다. 학교는 그대로름 방학을 맞았고, 새 학기가 되었으며, 계절은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이 되어 있었다. 직원실의 교사들 사이에서 남자 배구부가 이번에는 ‘봄의 고교배구’, 전국대회에 나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씩, 퇴근 전에 “봄”의 대출표를 열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남자 배구부는 봄고 1차 예선을 무난히 통과한 후, 여름의 인터하이에서 아깝게 패했던 아오바죠사이에게도 접전 끝에 복수를 성공했다고 한다. 내일의 예선 결승전 상대는 그녀가 고등학생이었을 적부터도 유명했던 시라토리자와. 스가와라에게도, 중요한 시합이겠지. 모두가 돌아간 오후의 도서관에서 근무 일지를 작성하던 그녀는 화면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대출중인 도서 목록에 도손의 ‘봄’이 떠 있었다. 대출자 명은 카게야마 토비오. 1학년이었다. 복본이 없는 책이라 이 학생이 빌려간 것이 도서관의 하나뿐인 “봄”이자, 스가와라와 그녀가 필담을 전했던 그 책이었다. 당황한 그녀는 한달음에 서가를 찾았다. 어쩌지, 메시지를 보았으면...! 허둥지둥 서가를 살피던 그녀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길게 내쉬었다.

 

‘...있다...!’

 

전산 오류인지 “봄”은 언제나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안도한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뒤쪽 끝페이지, 봉투 속에서 대출표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숨을 멈추었다.

 

[나츠메 소세키, “마음”]

 

밑에는 분류기호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대출표를 든 채로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겼다. 소세키의 마음. 책을 꺼내 들고 그녀는 잘 쉬어지지 않는 긴 호흡을 했다. 아까보다도 떨리는 손으로 가름끈이 있는 부분을 펼치자 한 장의 메모지가 책갈피처럼 끼워진 페이지가 나타났다.

 

[좋아합니다.]

 

겨우겨우 책을 들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 그녀는 그대로 책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서가의 선반에 맞고 떨어지는 “마음”에서는 팔랑팔랑, 끊임없이 메모지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좋아해요.]

[이번엔 장난치지 않겠습니다]

[정말이에요]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서가에 등을 기댄 그대로 주르르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마음”과 마음의 조각들을 보던 그녀의 얼굴에 점점 붉은 물이 들었다.

 

“괜찮으세요?”

“!!??!”

 

“...스가,와라... 군.” 서가 아래에 주저앉은 채 겨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고작인 그녀의 앞에 무릎을 구부려 앉아 시선을 맞춘 스가와라가 웃어 보였다. “죄송해요. 또 놀라게 해드렸네요.” 온통 붉어진 그녀를 들여다보던 스가와라가 살짝 그녀를 당겨 품에 안았다. 평온한 표정과는 달리 맞닿은 부분에서 심장이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뛰는 것이 느껴져 그녀는 그만 웃어버렸다.

 

“웃지 마세요. ...저는 이런 일, 처음이라구요.”

“스가와라 코우시 군.”

“....으...네, 네! ...네?”

 

풀 네임? 품 안의 그녀가 꼼지락거리며 스가와라의 품을 벗어나 거리를 벌리고는 빤히 스가와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심 그녀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불안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스가와라의 볼에,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따스한 어떤 것이 닿았다.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입술을 떼고는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붉어진 얼굴로 속삭이는 그녀에게 입맞춤을 돌려 주며 스가와라는 심장이 귓가로 옮아온 듯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늦은 가을의 짧은 햇살이 비스듬히 유리를 통과해, 두 사람의 옆에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비추고 있었다.